문재인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9일 본지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게 많은 대통령 입장에선 의회가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그런 대통령에 대해 제동을 걸고 가드레일 역할을 하는 게 여당”이라고 했다. /조인원 기자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철희(58) 전 의원은 29일 본지 인터뷰에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한동훈 당대표가 선출된 것과 관련해 “정부는 임기 5년을 보지만 여당은 5년 이후를 봐야 한다”며 “국민의힘은 미래의 가치와 정책, 인재를 담아내야 하고 그러려면 용산 대통령실에 끌려 다녀선 안 된다”고 했다. 최근 시사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 전 의원은 “기후, 환경, 노동, 에너지 등 그간 진보의 전유물로 여겨진 이슈에 대해 이제 보수가 치고 나가는 ‘이슈 오너십’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총선 후 국민의힘의 움직임을 어떻게 평가하나.

“미국에선 선거에서 패하면 검시(postmortem) 과정을 거친다. 시체를 해부하듯 가혹하게 원인을 진단한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선거에서 대패한 정당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고통스러운 과정은 회피하고 여전히 용산 눈치를 보고 야당 기세에 눌려 전전긍긍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그렇지만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체제가 들어섰는데.

“국민의힘은 차떼기(불법 정치자금 사건), 탄핵 등 존망의 위기를 겪고도 결국 살아난 회복력(resilience) 있는 정당이다. 다만 한 대표 체제가 정치를 주도하지 못하고 또 용산에 끌려 다닌다면 그때는 정말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절벽에 내몰릴지 모른다. 새 지도부가 정치 현안에 대한 패키지 해법을 제시하고 용산을 설득해 야당과 소통하는 발상의 대전환을 해야 한다.”

-친윤이 지원하지 않은 한 대표 당선의 의미를 뭐로 보나.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자들이 미래를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대통령이나 용산(대통령실)은 검찰이나 여당에 대한 그립을 내려놓고 겸손해져야 한다.”

-한 대표가 입당 7개월 만에 정치인이 됐다고 보나.

“한 대표는 옳고 그름, 선과 악의 이분법 마인드를 버리고 빨리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국민의힘이 정부를 리드해 나가야 한다. 용산에 대해서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한다.”

-대통령 측과 여당 지도부의 관계는 늘 어렵지 않았나.

“정부는 임기 5년을 마치면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결국 이념이나 (그 이념을 구현할) 세력은 정당이 담아내야 한다. 국민의힘이 가치와 정책, 사람을 담아내려면 용산에 끌려 다니면 안 되고 자율성을 가져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문재인 청와대 때는 어땠나.

“청와대에 있어보면 하고 싶은 게 많은 대통령 입장에선 의회나 야당이 반대만 하니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대통령에 대해 제동을 걸고 탈선하지 않게끔 가드레일 역할을 하는 게 여당이다. 그래야 대통령의 일방통행을 제어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에 대한 견제 기능을 못 했다.”

-총선 압승 후 민주당은 어때 보이나.

“민주당은 박스 안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총선 승리에도 당 지지율, 대선 후보 지지율 모두 너무 낮다. 정치 복원에 앞장을 서야 한다. 힘 자랑, 밀어붙이기만으로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소수 여당이 거대 야당을 상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이슈를 두고 찬반 투쟁으로 가면 여당이 불리하다. 여당은 누가 더 잘하느냐, 잘할 수 있느냐 문제로 가야 해볼 만하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면.

“‘이슈 오너십’이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해 누가 소유권을 갖고 있느냐다. 예를 들어 환경, 노동, 여성, 기후 등 그간 진보의 전유물이라고 평가받았던 이슈에 대해서도 보수가 더 전향적으로 가야 한다. 민주당의 독점적 이슈라고 내버려두면 국민의힘이 운신할 폭은 더욱 좁아진다. 미래에 가야 할 방향에 적응하지 않고 버티면 도태된다.”

-집권당이 소수당이라서 국정 이슈를 주도하지 못한 게 아니란 뜻인가.

“국민의힘을 보면 탈정책(post-policy) 정당을 보는 것 같다. 권력 의지만 있지 정책이 없다. 보수 정당으로서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려 하는지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본다. 지금 세계는 무시무시한 AI(인공지능) 시대로 들어가면서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는데 국민의힘이 미래 어젠다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나.”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 국민의힘이 키웠다기보다 영입한 인사들인데.

“특정 이슈나 정책 영역에는 지지 기반이라는 게 있다. 이를 잘 조직화하고 당내 세력으로 만들어 집권하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외부 사람을 데려다 선거에 이기는 식으로만 가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결국 인재와 정책인데 인구, 복지, 환경 관련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당에 포진시켜야 한다.

-인재·정책 측면에서 국민의힘을 민주당과 비교한다면.

“민주당은 태생적으로 진보를 지향하다 보니 미래 지향적 이슈에 친화성이 있다. 이런 이슈를 잘 다루느냐와는 별개로 이슈 자체를 거부하거나 배제하지 않으니 적어도 시대에 뒤떨어진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 반면 국민의힘은 미래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일 때가 잦다. 이걸 교정하지 않고 야당이 실수하는 틈만 노리는 건 너무 전술적인 대응이다. 과거 민주당이 이슈 오너십을 잘 담아냈느냐? 꼭 그렇지도 않다. 어떻게 보면 지금이 보수에 기회다. 보수는 더 넓게 대응하고 크게 크게 바뀌어야 한다.”

-야당의 대통령 탄핵 공세에 여당이 타협에 나서기 어렵지 않을까.

“여야가 서로 대치하면서 존재감을 가지려 하면 어느 한 정파가 이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망하는 길이다. 여당이 먼저 진영 간 ‘텐션(긴장)’을 풀고 여당답게 보수답게 ‘우리는 국가 미래를 고민하겠다’고 나아가면 된다. 그러면 탄핵이니 뭐니 (하는 공세도) 좀 약화할 거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긴장을 높이는 쪽으로 움직이니 야당 기세가 더 사는 것 아닌가.”

☞이철희

1966년생으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9년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서 정책기획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했고 민주당 전략기획본부장 등을 지냈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국회의원 시절 정권 주류 ‘친문’에게 쓴소리를 하는 ‘비문’으로 평가받았다. 2021년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임명됐다. 그는 당시 “민심을 잘 헤아려 대통령에게 ‘노(no)’라고 할 수 있는 참모가 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