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해병대원 특검법을 강행 처리했다. 지난 29일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첫 양자 회담을 한 후 양측에서 협치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사흘 만에 다시 얼어붙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 앞에서 민주당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고, 대통령실은 정진석 비서실장이 나서 유감의 뜻과 함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 방침을 내비쳤다. 윤 대통령 취임 후 9차례 발동된 거부권이 다시 행사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여야 간 대치는 20여 일 남은 21대 국회는 물론 6월 출범하는 22대 국회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이날 여야가 본회의에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로 처리할 때까지는 윤석열·이재명 회담 이후 조성된 협치 분위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태원특별법 처리 뒤 윤재옥(국민의힘)·홍익표(민주당) 원내대표를 단상으로 부르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민주당이 애초 의사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해병대원 특검법을 본회의에 올려 표결하자고 요구하면서 김 의장이 일정 협의에 나선 것이다. 윤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가 되지 않았다”며 상정에 반대했다. 그러나 김 의장은 “이 법률안은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됐는데 (이번 달) 21대 국회 임기 내 마무리가 돼야 해서 오늘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그 순간 민주당 의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결국 김웅 의원을 제외한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은 표결 전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해병대원 특검법은 재석 168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됐다.
윤 원내대표는 본회의장 앞에서 “국회의장이 민주당의 입법 폭주에 가담하고 의사 일정을 독단으로 운영했다”며 “서로 기만하고 불신이 팽배된 상황에서 (향후) 협의는 어렵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박주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텅 빈 본회의장 국민의힘 의석을 바라보며 “총선 민심을 똑바로 새기길 바란다”고 했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즉각 브리핑을 열고 “민주당의 특검법 강행 처리는 채 상병의 죽음을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엄중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거부권 행사 방침을 강력 시사한 것이다.
국회를 통과해 정부로 이송된 법안은 15일 이내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오는 28일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고 재의(再議) 표결할 방침이다.
재의 표결은 재적 의원(현재 296명)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가결된다. 구속 수감 중인 민주당 출신 무소속 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295명이 출석한다고 가정할 경우, 국민의힘(113석)과 국민의힘 출신 자유통일당(1석)·무소속(1석) 의석이 115석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 가운데 17표가 찬성표를 던지면 의결 정족수(197석)를 채울 수 있다. 국회의장이 통상 투표를 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여권에서 18표가 이탈해야 가결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 정도 이탈표는 안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재의 표결을 해도 해병대원 특검법이 부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2월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비롯해 윤 대통령이 앞서 9차례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되돌아온 법안도 모두 재의 표결에서 부결돼 폐기됐었다.
다만 곧 출범할 22대 국회 양상은 다를 수 있다. 민주당은 해병대원 특검법이 폐기되더라도 22대 국회에서 김 여사 특검법과 함께 재발의할 방침이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전체 300석 가운데 108석을 확보했다. 8표만 이탈해도 대통령 거부권은 무력화할 수 있다. 이미 조경태·안철수 의원, 김재섭·한지아 당선자 등이 해병대원 특검 찬성 의견을 밝혔다. 일부 조사에서 특검 찬성이 반대보다 많은 여론도 여권에 부담이다.
☞대통령 거부권
국회에서 통과한 법률안에 대해 대통령이 국회에 다시 심사해달라고 재의(再議)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으로 헌법 제53조에 규정돼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국회가 다시 통과시키려면 재적 의원 과반이 출석하고 출석 의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