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비대위 비대위원들. 사진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민경우, 김경률, 구자룡, 장서정, 김예지, 한지아, 윤도현, 박은식./조선일보DB

28일 발표된 ‘한동훈 비상대책위’는 기존 지도부보다 한층 젊어졌고, 비정치인·전문가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당연직 비대위원인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제외하고, 지명직 비대위원 8명 중 정치인은 김예지 의원 1명밖에 없었다. 지명직 비대위원들의 성별은 남성 5명, 여성이 3명이었다.

이날 국민의힘 비대위원으로 지명된 인사 중 유일한 정치인인 김예지(43) 의원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출신이다. 지난 6월 대정부 질문에서 김 의원이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 위원장을 부르자, 한 위원장이 김 의원이 알아차리도록 “의원님,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나와 있습니다”라고 답해 화제가 됐다.

김 의원은 그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문제 등으로 여야가 고성을 주고받는 가운데, 장애인 정책을 차분히 언급해 여야 의원들에게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당시 법무부 관계자들에게 “김 의원은 의원 한 번만 하긴 아까운 인재”라고 칭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명직 비대위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민경우(58) 시민 단체 길 상임대표는 과거 이적(利敵) 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 본부 사무처장을 지내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차례 구속된 운동권 출신이다. 민 대표는 2008년 한미 FTA 반대 운동본부 정책팀장으로 광우병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랬던 민 대표는 올여름 야권의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에 “광우병 괴담과 판박이”라며 “광우병 시위 당시 팩트엔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 8월엔 서울대 삼민투 위원장 출신인 함운경씨, 인명진 목사 등과 함께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겠다”며 86 운동권 청산을 주장했다. 당 관계자는 “‘운동권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강조한 한 위원장의 생각이 그대로 담긴 인선”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조국 흑서’의 공동 저자인 김경율(54) 경제민주주의21 대표(회계사) 역시 민주당 내 86 세력과 선명한 대비가 되는 인물이다. 전남 해남 출생으로 광주광역시에서 자란 그는 학생·노동운동을 했다. 참여연대에서 경제 민주화·재벌 개혁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2019년 9월 ‘조국 사건’이 터지자, 참여연대를 탈퇴했다. 조국 사건에 침묵하는 진보 진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진보 진영의 ‘내로남불’을 ‘팩트’로 저격하기 시작했다. 무소속 윤미향 의원이 연루된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대선 국면부터 지금까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발목을 잡은 대장동 비리 의혹 등을 파헤쳤다.

광주광역시 출신 내과 의사인 박은식(39) 호남대안포럼 대표도 ‘조국 사태’ 전후로 페이스북에 글을 쓰며 호남 보수 논객으로 유명해졌다. 이재명 대표가 단식 투쟁을 벌이던 지난 9월, 박 대표는 이 대표가 맞는 수액에 대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전해질, 심지어 비타민까지 다 들어 있는 혈관 뷔페”라고 비판했다. 광주시가 6·25 대남 침략 전쟁에 참전한 정율성을 기리는 기념 공원을 만들려고 하자 반대 시위도 벌였다. 최근엔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으로서 당 인재 발굴 활동도 하고 있다.

1978년생 동갑내기 비대위원도 3명 포진했다. 구자룡(45) 변호사는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을 심층 분석해 방송 등에서 설명한 이른바 ‘이재명 저격수’로 불린다. 돌봄·교육 플랫폼 ‘자란다’의 장서정(45) 대표는 보육·워킹맘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당관 출신으로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위원인 한지아(45) 의정부을지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도 비대위원으로 참여한다. 한 교수는 동교동계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의 조카이기도 하다.

가장 어린 비대위원은 2002년생인 윤도현(21) SOL 대표이다. 태어난 지 사흘 만에 보육원에 들어가 18년간 있다 자립했다. 자신과 비슷한 상황인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021년에는 자립 활동가 13명과 자신들의 경험을 담은 ‘우리가 마주한 세상에는 지도가 없었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당 관계자는 “20대와 사회적 약자를 동시에 대변하는 인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