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국민의힘 서울 강서구청장 후보가 11일 밤 개표 결과를 지켜보다 패배를 인정하는 입장을 밝힌 뒤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1일 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개표에서 당락이 드러나자 국민의힘 김태우 후보 캠프 상황실에 나왔던 이철규 사무총장과 김 후보는 금방 자리를 떴다. 문전성시인 더불어민주당 진교훈 후보 캠프 상황실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이날 국민의힘 김 후보가 예상을 뛰어넘는 격차로 참패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왔다. 지더라도 한 자릿수 격차 패배를 목표로 이번 선거를 “졌지만 잘 싸웠다”는 일신의 계기로 삼으려던 지도부 역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강서는 전통적 야권 강세 지역이었지만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김 후보는 51.3%를 득표해 민주당 후보를 2.6%p 차이로 이기고 강서구청장에 당선됐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참패에 대해 “정부의 국정 기조에 대한 민심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불과 1년 만에 이렇게 지지율이 역전된 것은 결국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미워서 여당을 심판한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의 국민의힘 한 의원도 “국정 운영에서 민생 경제보다 이념이 전면에 강조되다 보니 민심으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는 민생을 강조했지만 국민 입장에선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적극적 대안 제시와 노력이 미흡한 것으로 인식됐다.

‘보궐선거 원인 제공 시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국민의힘 당규를 위배하면서까지 공천을 밀어붙인 대통령실과 여당 지도부 결정이 공감대를 얻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당 핵심 관계자는 “’조국 비리’ 관련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유죄를 받은 김 후보를 ‘공익제보자’라며 사면을 해줄 명분은 충분히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 사면 이후 공천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면과 공천에 대한 국민적 설명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명분을 잃다 보니 선거 전략도 부재했다. 총선을 앞두고 있더라도 하나의 구청장 선거인데, 민주당의 정권 심판 전략에 말려 국민의힘까지 당력을 총동원하면서 판이 커졌다는 것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까지 판을 키울 선거는 아니었다”라고 했다. 김재원 최고위원 역시 “후보 인지도로 선거운동 하는 게 나았을 텐데 초기부터 중앙당이 개입을 하니까 당 대 당 투표로 가버렸다”고 했다. 한 비윤계 의원은 “구청장 선거에 지나치게 중앙 정치 논리를 끌어들여 패배를 자초했다”고 했다.

김 후보의 ‘화곡을 마곡으로, 빌라를 아파트로’ 선거 구호에 대해서도 한 선거 전문가는 “화곡동은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은 지방민들이 상경해 세입자로 집단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며 “세입자들이 ‘우릴 쫓아내려는 것이냐’며 화가 나 심판 선거를 하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는 “여당이 지역 특성과 민심에 대해 제대로 된 분석도 하지 않고 선거에 임했다는 걸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했다.

진교훈 더불어민주당 강서구청장 후보 부부가 11일 밤 서울 강서구 마곡동 선거 사무소에서 당선 확정 뒤 꽃목걸이를 걸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만 기댄 정무적 판단 실패도 패인으로 거론된다. 지도부 한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이 대표의 영장 기각은 선거 기간 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주요 분수령이었다”며 “이 대표가 구속될 것으로 믿고 우리 예상대로만 흘러갈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당내 비주류에 대한 통합에도 실패하면서 조직력도 부족했다. 김 후보 캠프 관계자는 “내부 화학적 결합이 부족했다”며 “강서갑·을·병이 모두 현역 의원인 민주당에 비해 우리 바닥 조직은 전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김기현 지도부에 대해 책임론이 불가피하다”며 “총선까지 변화를 시도하는 쪽과 현재에 안주하는 쪽의 희비가 엇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보궐선거를 토대로 여야 모두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는 “야당이 주장하는 정권 심판론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여당 지지층과 중도층 역시 현재 김기현 지도부로는 총선을 치를 수 없다는 의사를 표현한 선거”라고 했다. 한양대 김성수 교수는 “지금 같은 당과 대통령실의 수직적 관계로는 총선이 어렵지 않겠느냐”며 “치열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그동안 총선 민심은 변화를 택하는 쪽을 선택해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