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한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었다. 김 대표가 “야당 대표라는 분이 어떻게 중국 대사 앞에서 조아리고 훈계 듣고 오느냐”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비판을 계속하고 있을 때였다. 야당 의석 맨 뒤에 앉아 있던 정청래 최고위원이 “땅땅땅”이라고 외쳤다. 정 최고위원은 김 대표보다 큰 목소리로 김 대표 연설을 계속 방해했다. 김 대표가 야당과 전(前) 정권을 비판할 때마다 “울산 땅” “땅 대표” “땅 파세요” 등 발언을 이어갔다. 김 대표의 울산 땅 투기 의혹을 겨냥한 것이다.

정청래(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교섭단체 연설을 하는 동안 “울산 땅” “땅 파세요” “땅땅땅” 등 소리를 지르고 있다. /연합뉴스

정 최고위원은 김 대표가 조세 개혁을 언급하는 대목에선 “김건희나 수사하라”고 수차례 외쳤고, “변화가 필요한 분야는 정치”라고 하자 “땅입니다”라고 받아쳤다. 본회의장의 여야 설전은 일상적이지만 이날의 소동은 방식이나 내용 모두 수준 이하였다. 방청석의 초등학생들에게도 날것 그대로 전달됐다. 한 교육자는 “영화로 치면 학생 관람 불가 수준”이라고 했다.

정 최고위원의 연설 방해가 계속되는데도 야당 의원들은 재미있다는 듯 소리 내 웃기만 했다. 정 최고위원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이재명 대표는 내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야당 지도부 누구도 정 최고위원을 제지하지 않자 야당 의원들이 대거 연설 방해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은 김 대표에게 “아들 코인 파세요”라고 외쳤고 고민정·김병주 의원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연설 내내 “거짓말 말라” “일본 대변인이냐” “후쿠시마 오염수나 마시라” 등 고함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장내 분위기가 엉망이 됐는데도 야당 의원들은 정 최고위원과 웃으며 악수를 나눴다.

여당 의원들이 야당을 향해 소리를 질러대며 본회의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의석에서 일어나 “야! 정청래” “혼자서 말이야. 본회의장이야 당신!”이라고 반말로 외쳤다. 정 최고위원은 “왜? 왜 그래!”라고 대꾸했다. 박대출 의원은 김 의장에게 “의장님, 주의 안 주시고 뭐 하십니까”라고 했다.

이날 본회의장 현장엔 경북 울진남부초등학교 학생 30여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방청석에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봤다. 일부는 재미있는 듯 웃기도 했다. 한 학생은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데 저렇게 소리를 질러도 되느냐”고 했다. 모교 선배 자격으로 학생들을 국회에 초청한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은 “후배들 보기 부끄럽다”고 했다. 일부 여당 의원이 야당을 향해 “우리 학생들이 보고 있다” “제발 자중하시라”고 만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재명 대표가 연설을 한 19일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 대표가 현 정부를 집중 비판하자 여당석에선 “대장동 수사로 몇 명이나 죽었나” “국정 발목 잡지 말라” 같은 야유가 나왔다. 야당 의원들이 “너희들이 죽였다” “여기가 일본 국회냐”고 맞받으면서 장내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 이 난장판도 120명 가까운 강원 홍천초, 경북 구미 도봉초 학생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한 인솔 교사는 본지 통화에서 “지금 6학년생들에게 대화와 타협, 삼권분립 같은 초보적인 정치 원리를 가르치고 있는데 국회 현장이 학교 교육과 전혀 들어맞지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교사는 “교과서에서 배우는 정치와 국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말 그대로 체험시키는 교육 현장이었다”며 씁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