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20일 국회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방선거 투표권을 가진 중국인이 10만명이라고 지적하며 “우리 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이 공정하다”고 했다./뉴스1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20일 “왜 우리만 빗장을 열어줘야 하느냐”며 한국 내 중국인의 투표권 폐지를 주장한 것은 한중 관계에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중국인 선거권 문제’가 다뤄진 것은 외국인 투표가 허용된 2006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여당 관계자는 “최근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쏟아낸 무례한 발언의 영향도 있었다”고 했다. 싱 대사는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관저로 초청한 자리에 “미국의 승리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됐다.

우리나라는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 영주권을 취득하고 3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투표권을 주고 있다. 당시도 반대가 거셌지만 열린우리당(민주당 전신) 등이 밀어붙였다. 지방세를 내는 외국인이 늘고, 한국이 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주면 일본 내 재일동포 참정권의 요구가 힘을 받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았다. 일본에선 얻지 못하고 중국인에게 투표권을 내준 셈이다. 중국인 유권자는 지난해 기준 약 10만명으로 전체 외국인 유권자의 79%를 차지했다.

그래픽=박상훈

과거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당시 대중(對中) 여론이 악화되며 중국인 투표권 제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문재인 청와대는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주는 뉴질랜드·벨기에 등을 예로 들며 “(외국인도) 기초적인 정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해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구현하려는 취지”라고 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투표한 외국인은 1만6847명(투표율 13%)으로 전체 투표율(50.9%)과 비교해 참여가 저조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수십 수백 표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지방선거에서 중국인 유권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여당 관계자는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중국인 단체, 조직은 대체로 친민주당 성향”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중국인들에게 적극 투표를 호소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여론 수렴을 거쳐 내년 총선 이후 공직선거법을 개정할 계획이다. 권성동·홍석준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해 거주 자격을 5년 이상으로 높이고 한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국가 국민에 대해서만 선거권을 주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여당 관계자는 “대만 국적 화교 등 거주 기간이 긴 경우 예외 조항을 둘 수 있다”고 했다.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반중 정서에 기댄 인기 영합적 발언”이라고 했다. 공직선거법을 다루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통화에서 “상호주의를 이유로 들었는데, 같은 이유로 오래전부터 제기된 재일교포 참정권 문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중국 이야기만 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야당에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국회의원의 무노동 무임금 제도 도입, 불체포특권 포기 등 정치 쇄신 3대 과제도 제안했다. 그는 “의원 숫자가 10% 줄어도, 국회는 잘 돌아간다”고 했다. 또 “김남국 의원처럼 무단결근, 연락 두절에 칩거까지 해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그런 직장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했다. 전날 자신에 대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해 “불체포특권 포기를 약속해놓고 손바닥 뒤집듯 그 약속을 어겨 국민을 속였다. 정중한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라고 했다.

김 대표는 “거대 야당의 국정 발목 잡기, 반대를 위한 반대를 매섭게 꾸짖어 달라”며 내년 4월 총선에서 거야 심판을 강조했다. 민주당을 “사돈남말(사법 리스크, 돈 봉투 비리, 남 탓 전문, 말로만 특권 포기) 정당”이라고 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과중한 조세는 경제 쇄국 정책”이라며 법인세·상속세 개편 필요성도 언급했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협치 의지, 공감 능력, 책임 의식을 찾을 수 없는 여당 대표의 내로남불 연설”이라고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