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6000만원의 뇌물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노웅래 의원에 대한 체포 동의안을 다수 의석으로 부결했다. 21대 국회 들어 현역 의원 체포 동의안이 부결된 건 처음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본격화한 상황에서 민주당이 ‘방탄 국회’ 논란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 의원 체포 동의안은 여야 의원 271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01표, 반대 161표, 기권 9표로 부결됐다. 현재 169석을 가진 민주당에서 반대표가 대부분 나온 것으로 보인다. 국회 회기 중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 특권이 있는 현역 의원을 구속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을 받아야 한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후보로 나선 지난 3월 대선과 6월 지방·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의원총회에서 “정치 검찰을 동원한 야당 파괴, 정적 제거 수사를 강력 규탄한다”고 했다. 한 중진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헌법상 불체포 특권은 지금처럼 야당에 대한 검찰의 ‘총기 난사 수사’를 ‘방탄’할 때 쓰라고 보장돼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국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대장동 및 성남FC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 대표의 향후 체포 동의안 부결을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대표와 노 의원이 같이 ‘야당 탄압’ ‘정치 보복’ 수사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만 부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국회의 체포 동의안 부결로 검찰은 조만간 노 의원을 불구속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노 의원이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 비용 명목 등으로 사업가 박모씨에게 태양광발전 사업 및 인사 관련 청탁과 함께 6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서 한동훈 법무장관은 “노 의원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는 현장이 고스란히 녹음돼 있는 파일이 있다”며 “구체적인 청탁을 주고받은 뒤 돈을 받으면서 ‘저번에 주셨는데 뭘 또 주냐, 저번에 그거 제가 잘 쓰고 있는데’라는 목소리,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도 그대로 녹음돼 있다”며 체포 동의 요청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는 지난 20여 년간 중요한 부정부패 수사 다수를 직접 담당해 왔지만 부정한 돈을 주고받는 현장이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녹음된 사건은 본 적이 없다”며 “뇌물 사건에서 이런 정도로 확실한 증거들이 나오는 경우를 저는 보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김건희는 수사 안 하냐” “편파 수사 당장 그만두라”고 소리를 질렀다. 노웅래 의원은 신상 발언을 통해 “부정한 돈을 받지 않았다. 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범법자로 몰아 정말 억울하다”며 “검찰이 만든 작품이다. 누구든 이렇게 엮이면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했다.

앞서 2020년 이후 21대 국회에 제출된 민주당 정정순, 무소속 이상직,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 체포 동의안은 모두 가결됐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검찰이 야당만 표적으로 삼아 먼지 털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의원은 본지 통화에서 “12월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는 1월 9일 이후에는 국회 동의 필요 없이 영장 청구가 가능하다”며 “그런데도 검찰은 굳이 야당의 ‘방탄 논란’을 염두에 두고 과도한 정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노 의원이 이미 검찰 소환에 충실히 응했고 검찰은 본회의 하루 전까지 압수 수색을 하며 증거를 확보했다. 도주 우려도 없는데 구속이 필요하냐”고 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는 “자택 장롱에서 현금 3억원 다발이 나왔는데 국민이 어떻게 볼지 의문”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노 의원은 부의금과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모아둔 현금이라고 주장한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때문에 당의 도덕 수준이 땅에 떨어져 창피해 죽겠다”며 “살인을 저질러도 부결될 판”이라고 했다. 한 재선 의원은 “검찰이 전방위적으로 야당 수사를 펼치다 보니 ‘이러다 내 차례가 올지도 모른다’는 공통의 두려움도 있다”고 했다.

본회의 직후 한동훈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국민들이 오늘의 결정을 오래도록 기억하실 것”이라며 “이게 잘못된 결정이라는 건 국민들도 그렇고 (기자) 여러분도 동의하실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국민의힘도 논평을 내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에게 다가올지 모를 그날을 위해 부결 예행 연습이라도 한 모양”이라고 했다. 소속 의원 6명 전원이 사전에 찬성 의견을 밝힌 정의당은 “가재는 게 편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는다. 노 의원은 양심 문제도, 사상 문제도 아닌 뇌물 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며 “(민주당은) 방탄 정당의 오명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본회의에서는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 회사채 발행 한도를 각각 종전 2배에서 6배, 4배에서 5배로 확대하는 ‘한전법·한국가스공사법 개정안’과 반도체 공장의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 등이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