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는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 전체회의에서 회사채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의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에서 비슷한 법안을 부결한 지 일주일 만에 재상정한 것이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 반대로 국회에 수개월 걸려 있던 반도체특별법, 가스공사법도 이날 산자위 문턱을 넘었다. 각종 경제 지표가 악화하는 가운데 “정쟁에 몰두하는 국회가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쏟아지자, 여야가 뒤늦게 수습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15일 오전 국회의장실에서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 회동을 갖고 난항 중인 예산안 협상을 가졌다. /2022.12.15 이덕훈 기자

한전법 개정안은 한국전력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현재 ‘자본금과 적립금 합(合)의 2배’에서 최대 6배로 높이는 법안이다. 지난 8일 본회의에서 부결됐던 원안과 달라진 부분은 한전채 한도 증액을 2027년 12월 31일까지만 유지하는 ‘5년 일몰’ 부분이다. 민주당 요구로 추가됐다. 앞서 이 법안은 지난달 24일 여야 합의로 국회 산자위를 통과했는데, 정작 8일 본회의에선 재석 203명 중 찬성 89명, 반대 61명, 기권 53명으로 부결됐다. 당시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반대 토론에서 “한전이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것은 미봉책일 뿐이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에 불과하다”고 했고, 상당수 민주당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국정 운영에 책임이 있는 여당에서도 57명이나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이날 산자위에서 산업통상자원부의 안일한 대응으로 부결됐다고 비판하면서도 “재상정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민주당 정일영 의원은 “산업부 차관은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설득하고 전화하고 설명하는 등 노력해야 했는데 그동안 뭐했냐”고 했다. 그러면서 “다만 큰 흐름이나 여러 가지 문제를 종합적으로 볼 때 오늘 처리를 결론을 내서 의결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산자부 박일준 2차관은 본회의 부결로 ‘한전 신용도에 영향을 끼친 것이 없느냐’는 국민의힘 이철규 의원 질의에 “신용 등급에 당장 변화는 없었지만, 한전의 유동성이나 정부 지원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검토가 좀 필요하다는 신용 평가회사의 코멘트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날 산자위를 통과한 가스공사법은 자기자본의 4배인 한국가스공사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5배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그동안 야당이 한전법과 가스공사법의 연계 처리를 주장하면서 증시에 상장된 국내 양대 에너지 공기업이 이자도 내기 어려운 재무 위기에 처해 ‘블랙 아웃(대정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기도 했다. 가스공사법도 지난 9월에 발의됐지만 야당 반대로 두 차례 보류 결정이 내려지며 지연됐다. 지난달 29일 산자위 법안심사소위에선 통과 직전까지 갔다가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반대하면서 소위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반대 논리는 한전법 개정안 반대 토론 때와 비슷한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도 회사채 발행 한도를 확대한 뒤 향후 요금 인상을 비롯한 체질 개선에 나서는 방법 외에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도체특별법안은 공장 인허가 간소화를 골자로 하는 ‘첨단산업특별법’이다. 민주당은 최근 첨단산업특별법을 처리하려면 풍력발전법도 함께 처리하자며 제동을 건 바 있다. 하지만 수산업계가 풍력발전법 연계 처리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키우면서 야당은 이날 첨단산업특별법만 처리하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반도체특별법안의 핵심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계류 중이어서 ‘반쪽 처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조세특례제한법에 대해선 ‘재벌 특혜’라고 반대하고 있다. 여야의 쟁점은 대기업, 중견기업에 대한 법인세 공제율이다. 여당은 2030년까지 반도체 등 국가첨단전략산업 시설에 투자하는 경우 대기업 20%, 중견기업 25% 금액을 법인세에서 공제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 법안은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를 각각 10%, 15%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야의 입장 차가 아직 좁혀지지 않았다.

한전법, 가스공사법, 반도체법 등이 조만간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면 12월 임시국회 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한전법의 경우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이날 산자위서도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빚을 늘리는 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제대로 일하지 않는 정부를 방치하는 국회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