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광역의회 의석의 13%를 청년당선인이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30세대가 처음으로 ‘세력화’라고 불릴 만한 규모로 시·도의회에 입성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오랜 기간 주류로 군림해 온 86그룹(80년대 학번·60년대생)의 독점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일대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년정치인 돌풍이 가장 거센 곳은 서울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전체 112명 가운데 16명(14.2%)의 청년당선인이 서울시의회에 입성할 예정이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이 4명, 국민의힘은 12명의 청년당선인을 배출했다.
청년 서울시의원 가운데 12명은 지역구에서 당선됐다. 당에서 안배한 것이 아니라 자력(自力)으로 유권자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다.
1994년생인 민주당 이소라·박강산, 국민의힘 김규남 당선인은 최연소 서울시의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은 이소라·박강산 후보를 각각 비례대표 1, 2번으로 공천했다. 김규남 국민의힘 후보는 서울 송파구 제1선거구에서 61.8%의 득표율로 시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청년 약진은 수도권에서 두드러진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2030세대 당선인은 서울시의회 9%(10명), 경기도의회 6.3%(9명), 인천시의회 5.4%(2명)에 불과했다. 4년 만에 치러진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서울(14.2%)뿐만 아니라 경기도의원 12.8%(20명), 인천시의원 10%(4명) 등으로 청년당선인 비율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국 광역의원 당선인 872명 가운데 2030세대 비율은 9.5%(83명)였다.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은 이념지향적인 86그룹이 장악해왔다는 평가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실용지향적인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가 대거 정치권으로 진출했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한다. 정치주도권이 새로운 세대로 전환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우리 정치에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며 “머리 좋은 젊은 정치인들은 ‘5년 내에 86그룹들이 밀려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앙선관위 자료를 보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20~30대(18·19세 포함) 유권자 비율은 32.1%였다.
이들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지난해 4·7재보궐선거에선 국민의힘 후보들에게 더 많은 표를 주는 ‘스윙 보터’ 성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소셜미디어(SNS), 온라인 커뮤니티에 기반한 2030세대의 여론 주도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당 입장에서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청년 표심(票心)에 밀착할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입시 비리 암행어사제, 노조의 고용 세습 차단, 성범죄 양형 기준 강화, 학점 비례 등록금제와 같은 ‘청년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국민의힘은 가산점 부여, 공천 비율 할당 등으로 청년후보들의 출마를 독려했다. “공천 단계부터 젊은 세대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 양당 관계자들 얘기다. 선거 과정에서는 2030세대인 민주당 박지현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586 용퇴론’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출생)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닿은 실질적인 문제에 민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청년정치인들이 수도권 광역의원 13%라는 유의미한 규모로 지방자치에 참여하면서, 정치권에선 “이념보다는 2030세대의 이익을 대변하는 ‘실용정치’가 싹을 틔울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는 2030세대들이 중앙정치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지방자치에서 훈련받은 이들이 향후 국회에서 세(勢)를 형성하면 질적인 정치 변화도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다수결·정당논리로 움직이는 의회에서 청년정치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란 지적도 있다. 실제 연령별로 수도권 광역의원 당선인을 분류하면 50대가 39.6%(122명)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60대 25.3%(78명), 40대 20.4%(63명) 순이었다. 2030세대 당선인 13%는 여전히 ‘소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천하람(36)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청년정치인들이 세세한 지역 현안에서는 정당의 벽을 넘어서 연대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권력자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평가로 공천받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이들이 ‘당의 지배’에서 벗어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