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당선인의 오찬 회동이 무산된 16일 청와대와 윤석열 당선인의 집무실이 있는 종로구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아래)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오찬 회동을 막판에 연기하면서 양측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대선 일주일 만에 두 사람이 오찬 회동을 하기로 해 순조로운 정권 이양이 예상됐지만 신구(新舊) 권력 간 갈등이 조기에 노출된 것이다. 양측은 회동 일정에는 쉽게 합의했으나 의제를 두고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당선인 측에서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 동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요구했으나 문 대통령 측에서 수용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회동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하루 만인 지난 10일 윤 당선인에게 회동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승리가 확정된 윤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 인사와 함께 “정권 인수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어 유영민 비서실장과 이철희 정무수석을 윤 당선인에게 보냈다. 이 자리에서 윤 당선인은 “대통령께서 시간을 내서 보자고 하시더라”고 했다. 이에 유 실장은 “대통령께선 당선인이 편한 날을 정해주면 거기에 맞추겠다고 했다”고 했다. 이후 양측은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과 이철희 수석을 소통 창구로 지정하고 회동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회동은 순조로울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청와대도 처음엔 정권 이양에 협조하겠다는 분위기였다.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후임자 지명에 대해서 청와대 관계자들은 처음엔 “윤 당선인과 협의하겠다”고 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서도 “윤 당선인이 요구한다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오전 청와대에서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뉴스1

하지만 장 실장과 이 수석이 회동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이견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와대의 임기 말 공공기관 인사를 두고 윤 당선인 측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긴장이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서 “인사권과 사면권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 “우리도 법대로 할 테니 윤 당선인도 임기 말에 법대로 하라”는 격한 반응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윤 당선인 측에서 지난 11일 문 대통령 측에 “새 정부 출범 때까지 공기업 등 공공기관 인사를 무리하게 진행하지 말고 우리와 협의해달라”는 뜻을 전했다. 윤 당선인 측 인사는 “한국성장금융 등 공공기관 공석 자리에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조만간 임명될 것이란 제보 등이 이어졌다”며 “현 정권이 무리하게 임기 말 ‘낙하산 인사’를 하려 한다고 보고 청와대 측에 이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인사나 사면은 현직 대통령의 권한이라며 불쾌한 반응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윤 당선인 측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청와대를 향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행태가 만남을 무산시킨 배경”이라고 했다. 인사 문제 외에도 국민의힘 인사들이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이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사면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게 회동 무산에 영향을 줬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 여권 관계자는 “윤 당선인 측에서 문 대통령이 사면을 통해 정치적 거래를 하려 한다는 인상을 풍긴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인수위 멤버들, 김치찌개로 점심식사 - 윤석열(왼쪽) 대통령 당선인이 16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한 김치찌개 식당에서 권영세(오른쪽) 인수위 부위원장 등 인수위 관계자들과 점심을 하고 있다. 이날은 윤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의 오찬이 예정된 날이었지만 실무 협의 부족으로 연기됐다. /국민의힘

양측은 이번 회동에 부여한 의미도 전혀 달랐다. 윤 당선인 측은 회동 조율 과정에서 몇 가지 의제를 정해 문 대통령 입장을 사전에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 측 인사는 “16일 아침까지 청와대의 답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만남은 덕담을 나누면서 국민 통합 메시지를 내는 자리인데 윤 당선인 측에서 만남의 결과를 합의문 쓰듯이 하자고 하니 답을 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만 양측은 이날 회동 무산이 신구 권력 간 충돌로 악화되면 안 된다며 수습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철희 수석과 장제원 실장은 실무협의를 이어가며 회동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 윤 당선인 측 인사는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만남이 새 정부 출범과 국민 통합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회동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현 여권의 한 인사는 “권력 이양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