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창 선 (시사평론가)

결국 김건희씨가 생중계 카메라 앞에서 사과했다. 진작 했어야 할 사과였는데 너무 늦었다. 물론 18년 전의 김명신이 대선 후보의 배우자가 되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정해진 곳에 제출한 이력들이었기에, 무거운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제기된 의혹들 가운데는 근거없는 것들도 적지 않았으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풀리기’였는지 ‘허위’였는지를 굳이 따지지 말고 진작에 사과를 하는 것이 유력 대선 후보의 배우자에게 지워진 책임이었다.

배우자의 이력 논란이 후보의 지지율까지 하락시키는 상황을 낳았던데는 윤석열 후보 부부의 책임이 컸다.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던 것은 잘못의 ‘내용’ 보다는,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의 문제였을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을 자초했던 셈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지난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김건희씨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그간의 논란에서 우리가 되짚어 봐야할 것이 그 쪽만은 아니다. 후보 배우자에 대한 의혹의 추궁이 이렇게까지 강도높게 진행된 일은 우리 선거 역사에서 없었다. 물론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후보 가족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검증은 필요하다. 하지만 후보가 아닌 배우자에 대한 의혹 제기에 이렇게까지 올인하는 광경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합리적이고 근거있는 의혹 제기야 마땅히 당사자들이 소명해야 할 일이지만, 친여 유튜브 방송과 매체들, 지지자들, 그리고 일부 여당 정치인들이 유포하고 부추긴 마타도어들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여론을 왜곡하는 행위였다. 터무니없는 ‘쥴리’ 찾기로 김건희씨에 대한 공격을 일찌감치 개시했던 친여 유튜버들은 그녀의 유산 사실에 대해서까지 조작 의혹을 제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보게 되고야 말았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증거와 문서가 필요하다”는 괴벨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자신이 ‘쥴리’가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일은 오롯이 김건희의 몫이 되어버렸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악의 세력이니,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들의 집권은 막아야 한다는 신념의 세력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한 여성을 마녀로 만드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한 인간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과 그가 마녀라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이다. 상대를 악마라고 믿고 몰아붙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는 공존과 경쟁의 민주주의가 설 곳이 없다.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이유의 장미』에는 프랑스대혁명 당시 재판에 넘겨진 왕비를 어떻게 ‘악녀’(惡女)로 만들었던가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당시 심문을 맡은 위원회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어린 아들을 성적(性的)으로 유혹했던 색정광으로 몰고 간다. 아홉 살도 되지 않은 소년에게서 강압적으로 받아낸 터무니없는 진술을 이성적인 인간, 정상적인 시대라면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지만, 당시의 혁명적 상황 속에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츠바이크의 설명이다. 혁명의 성공을 위해 왕비는 반드시 기요틴 위에서 처형당해야 하는 악인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상대를 악마로 만드는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광신의 정치는 우리 공동체가 지켜야할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야당 후보의 배우자는 논문 표절은 물론 오역까지도 혹독한 검증을 받고 있다. 그런데 정작 여당 후보는 ‘대장동’ 때문에 두 사람이 죽어도, 논문 표절 의혹이 있었어도 태연하게 지나갈 수 있는 광경이 계속되고 있다. 이토록 비대칭적인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성의 줄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음이 사실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