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초과 세수를 이용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을 요구하면서 여당이 딜레마에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초과 세수와 관련, “일부는 채무 상환에 활용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정연설은 대통령의 예산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연설이다. 민주당으로선 ‘지는 권력’인 문 대통령의 ‘채무 상환’이냐, ‘미래 권력’인 이 후보의 ‘재난지원금’이냐를 놓고 양자택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 후보는 2일 선대위 출범식에서 “이번 정기 국회를 ‘이재명표 민생개혁국회’로 만들어 달라”며 ‘대선 후보’ 주도권을 강조했다.

지난 10월 26일 문재인(왼쪽)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 상춘재 회동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지도부는 이 후보의 재난지원금 추가 지급 요구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송영길 대표는 이날 기자들의 재난지원금 관련 물음에 “그건 나중에(이야기하겠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박완주 정책위의장도 이날 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 “(선대위) 정책본부에서 법, 규모, 절차 등에 대한 검토를 시작하기로 했다”면서도 “어떤 방식으로 할지는 재정 당국과 논의하고 야당과도 협의해야 한다. 좀 고차원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답변) 자판기가 아니다”라고도 했다. 예산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러나 이날 오후 선대위 회의 후엔 “되든 안 되든 일단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여당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문 대통령의 지난 25일 시정연설이 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올해 세수 규모는 예상보다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추가 확보된 세수를 활용해 국민의 어려움을 덜어드리면서 일부를 국가 채무 상환에 활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국가재정법도 초과 세수는 나랏빚을 갚는 데 우선적으로 쓰도록 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초과 세수는 10조~15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이 후보의 말대로 1인당 30만~50만원의 재난지원금을 5000만 국민에게 추가 지급하려면 15조~25조원이 든다. 소상공인 손실 보상 확대, 지역 화폐 예산 증액 등 여당이 추가 지급을 약속한 공약을 처리하는 데도 수조 원대의 자금이 더 들어가야 한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604조원에 달하지만 이 중 절반은 복지 등 의무 지출 예산이어서, 남는 예산을 찾기가 만만치 않다. 여기에 재량 예산의 상당 부분이 ‘한국판 뉴딜(33조7000억원)’ 사업 등 문 대통령의 역점 사업에 투자됐다는 평가다.

익명을 요구한 예산 전문가는 “실제 정권 차원에서 역점 사업에 쓸 수 있는 돈은 전체 예산의 10% 정도”라며 “‘이재명표 예산’을 만들기 위해선 대규모로 빚을 내지 않는다면, 문 대통령의 역점 사업에 손을 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일단 이 후보의 제안을 최대한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한준호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초과 세수분을 반영해서 예산안 증액 이슈가 이번 (정기국회) 예산 정국에서 핵심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 후보 측 관계자도 “대선 후보가 한다면 해야 한다”며 “다만 이번 정기 국회에서 할지, 내년 추경을 통해 할지 등의 문제는 당에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의 재난지원금 지급 요구에 대해 민주당 지지 세력 내에서도 불편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멘토이자 이낙연 전 대표의 후원회장을 맡았던 송기인 신부는 이날 “후보가 지금 상황에서 생각 안 했던 걸 크게 (해서) 일을 벌이는데, 그건 당 안에서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며 “이제 (이 후보는) 민주당의 기본적인 정강이나 방향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