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30일 당내 인사들에게 언론중재법 처리 문제를 “대선, 정권 재창출 도움 여부로 판단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강경파’를 중심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지만, 이를 강행할 경우 중도층 반발로 내년 3월 대선에서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여야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 언론법을 상정하는 문제를 놓고 협의를 이어갔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해 밤늦게까지 대치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 강경파와 강성 지지층에서 언론법 처리를 압박하고 있어 조만간 법안 처리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송 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민주당은 절대 독단적으로 뭘 하지 않는다. 충분히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민주당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선 “언론중재법을 포함한 모든 결정은 내년 대선에, 또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회 각계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반발이 이어지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여야 합의 없는 강행 처리는 민주당 지지층에선 환영할지 몰라도 중도층 확장에는 도움될 게 별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선 분위기가 달랐다. 의총이 시작되자 언론중재법 개정 작업을 주도해온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김용민, 김승원 의원이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며 분위기를 잡았다. 이어 의원 20여 명이 발언에 나섰는데 “시간을 더 끌어 좋을 게 없다”며 강행 처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설훈 의원은 “시간을 좀 더 두고 해야 한다”고 했고, 허종식 의원은 “1~3개월 정도 언론계를 설득하고, 여야가 협의하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철민 의원은 법안 찬성을 전제로 “공영방송 문제 등을 함께 처리하자”고 했다고 한다. 송 대표 측은 “강행 처리 시 중도층 이탈 문제가 있지만, 반대로 시간을 너무 끌면 되레 대선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대표가 고민하는 지점”이라고 했다.
이후 여야 원내대표는 국회의장 주재로 수차례 만났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오후 5시로 예정됐던 본회의는 연기됐다.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에게 논란이 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삭제한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오늘 본회의를 열어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이 조항은 보복·반복적인 허위·조작 기사 등을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이라고 추정하도록 해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문턱을 낮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반면 김기현 원내대표는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과 열람차단청구권 등 독소 조항이 그대로 남아 있다며 “주요 조항을 철회하지 않으면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언론중재법안이 상정되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당 회의에서 “무리하게 강행하면 (송 대표와 하기로 한) TV 토론은 무산되고 전적으로 그 책임은 민주당”이라고 경고했다. 김 원내대표도 “문재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촉구한다”며 여권을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회를 찾아 윤호중 원내대표와 법안 처리와 관련해 의견을 나눴다.
여권에선 여전히 법안 처리 강행 기류가 강하다. 다만 김원기·문희상·유인태·임채정 상임고문은 이날 송 대표를 만나 “언론개혁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꾸준히 노력했던 사항”이라면서도 “길은 지혜롭고 현명하게 갔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송 대표에게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뭐냐.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심판받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한 방송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4월 7일 밤을 잊지 말라”며 “법안 하나 처리하는 데 일주일 늦어지고, 한 달 늦어진다고 세상이 뒤집히느냐”고 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쥐 잡다가 독을 깬다. 소를 고치려다 소가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 대표는 이날 오전부터 민변⋅민언련⋅정의당 관계자를 잇따라 면담했다. 민변·민언련은 “일부 논란 여지가 있는 부분은 수정해야 한다”고 했고,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공영방송 문제 등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