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2일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계승해 더 주체적인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며 대북 구상을 밝혔다. 이 지사는 이날 서울 동교동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에서 ‘통일·외교 정책 구상’ 기자회견을 열고 “김대중 정부의 햇볕 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 번영 정책,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승 발전시킬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지사가 밝힌 구상은 큰 틀에서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전면적 비핵화보다는 단계적 비핵화와 제재 완화 등 주요 내용이 문재인 정부와 다르지 않았다. 이 지사는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도록 하거나 일괄 타결하는 ‘빅딜’ 방식은 성공 가능성이 작다”며 “비핵화에 대한 합의와 이행을 단계적으로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북미 양국에도 실용적”이라고 했다. 이 지사는 “조건부 제재 완화와 단계적 동시 행동 방안을 구체화해 북한과 미국에 제안하겠다”며 “바이든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 문제를 풀겠다”고 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에 속임수를 쓴다면 제재를 스냅백(위반 행위 시 복원) 형식으로 다시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 지사는 개성공단 재개도 주장했다. 현 정부는 북한이 작년 6월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후 개성공단 재개를 공개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지사는 “남북이 이미 합의했지만 제재 대상으로 묶여 있는 개성공단 재가동과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등의 이행을 위해 유엔에 포괄적·상시적 제재 면제를 신청·설득하겠다”고 했다. 이 지사는 또 “이산가족 수시 상봉뿐만 아니라 고향 방문과 북측 여행을 추진하겠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의 장묘 이장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 5월 고양 킨텍스에서 개막한 ‘2021 DMZ 포럼’ 연설에서 “개성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하기로 한 2013년 남북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한 이후 거듭 개성공단 재개를 주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지사는 “북한이 잘못하면 잘못한다고 분명하게 우리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북에 할 말은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는 북의 도발에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야권에선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두둔해온 문재인 정부와 다를 게 없다”며 “위장 평화쇼 시즌2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 지사 외교안보팀에도 노무현·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이 주로 포진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이 지사의 정책 자문 그룹 ‘세상을 바꾸는 정책 2022’ 공동 대표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천해성 전 통일부 차관이 참석했다. 이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 핵심이었고, 천 전 차관은 문재인 정부에서 2년 가까이 차관직을 맡았다. 지난 21일 캠프에 합류한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도 현장을 찾았다. 한동대 교수 출신인 김 전 원장은 2012년과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캠프에 참여했고,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을 주축으로 한 ‘연정(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 라인’의 멤버로 꼽힌다. 외교관 교육·양성을 책임지는 국립외교원장이 대선 캠프로 직행한 것에 대해 일각에선 차세대 외교관들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문정인 이사장은 경기도의 외교·통일 싱크탱크 역할을 할 ‘국제평화교류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아 이 지사를 돕고 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도 외곽에서 이 지사에게 조언하는 인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