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6·25 참전용사의 외손녀인 캐서린 레이퍼(Catherine Raper) 주한 호주대사를 접견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28일 국민의힘이 법사위 권한을 축소하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으면 21대 국회 후반기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넘기기로 한 여야(與野) 합의를 파기하겠다고 밝혔다. 강성 친문(親文) 지지층이 합의 파기를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우리는 이미 국회법 개정을 준비 중”이라며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 반발을 의식해 여야 합의를 깨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송 대표는 이날 라디오에서 후반기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에 넘기기로 한 것과 관련해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 갑질을 못 하도록 하는 개혁 입법을 전제로 넘기는 것”이라며 “8월 25일 상임위원장 선출 전에 이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법사위를 넘길 수 없다”고 했다.

여야는 지난 23일 국회 상임위원장 재배분 협상에서 법사위원장 자리는 내년 대선 이후인 21개 국회 후반기(내년 6월)부터 국민의힘이 맡는 대신, ‘체계·자구 심사권’은 축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민주당 내 강경파는 “국민의힘이 법사위원장을 맡게 되면, 체계·자구 심사권을 확대 적용해 법안 처리를 지연하는 데 악용할 것”이라며 합의 파기를 주장하고 있다. 강성 지지층도 ‘문자 폭탄’을 보내며 합의 원천 무효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송 대표가 강성 지지층의 반발을 고려해 ‘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주자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합의 파기를 요구하고 있어 당 지도부도 압박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여야 합의를 주도한 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도 융단 폭격 대상이 됐다. 그는 반발이 심해지자 지난 26일 의원들에게 친전을 보내 “법사위 기능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부터 8월 국회에서 즉시 처리하겠다”며 “이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합의가 파기되는 것이고 우리는 법사위원장 자리를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8월 국회 본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민주당이 국민의힘에 넘기기로 한 7개 상임위원장 자리도 없던 일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모든 여야 합의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야당은 “민주당이 지지층 반발에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전주혜 원내대변인은 본지 통화에서 “우리는 여야 합의에 따라 법사위 기능과 권한을 축소하는 국회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오히려 민주당이 지지층 반발을 의식해 합의를 깨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법사위 권한을 합의한 것보다 늘려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데, 민주당이 나서서 합의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 자체가 당내 정치용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만약 국회법 처리 협의가 잘 안 되더라도 여당이 숫자로 밀어붙여 통과시킬 수 있는데, 국회법 통과를 전제로 합의 파기 가능성을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회법 처리가 안 됐는데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주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항의가 당내에서 거세기 때문에 국회법 처리가 전제가 된 합의라는 점을 강조한 것일 뿐”이라며 “현 상황에서 합의 파기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