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도자기 밀수 의혹으로 부적격 논란이 제기됐던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자진 사퇴했다. 임명 강행 의사가 강했던 청와대가 “민심에 반응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의견을 받아들인 셈이다. 임기 말 당·청(黨靑) 간 역학 관계의 역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라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각종 의혹이 동시에 불거지면서 ‘여자 조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선 청와대가 ‘엄호’ 의지를 분명히 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박준영 해양수산부·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박 후보자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오늘 해수부 장관 후보자로서의 짐을 내려놓고자 한다”며 “공직 후보자의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했다. 주영국 한국대사관에 근무할 때 아내가 산 도자기 1250여점을 관세를 내지 않고 국내로 반입했다고 인정하며 장관 지명 27일 만에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박 후보자가 물러나면서 청와대도 정치적 부담을 덜었다. 박 후보자 사퇴 직후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이 인사권자로서 국회 의견을 구하고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며 “국무총리 이하 후보자들에 대해 국회가 신속하게 마무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의 중도 낙마는 없다는 뜻이다.

인사문제 놓고 민주·정의당 충돌 - 더불어민주당 문정복(아랫줄 맨 왼쪽) 의원이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참사를 지적한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의 의사 진행 발언에 항의하자,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손가락질을 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덕훈 기자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는 박 후보자 사퇴 여부를 놓고 물밑에서 논쟁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이 ‘부적격’이라며 사퇴를 요구한 박 후보자와 임혜숙 후보자,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검증 실패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뒤인 12일 민주당 초선 의원 40여명이 “최소 1명은 정리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민주당 지도부도 “3명을 모두 안고 가기엔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계속 전달했다. 이런 상황을 무겁게 여긴 청와대가 박 후보자에게 자진 사퇴를 권고하며 한발 물러선 것이다.

전날까지 긴장 수위를 높였던 당·청은 박 후보자 사퇴 후 결속하는 양상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박 후보자가 여러 어려움 끝에 사퇴했고 문 대통령도 고심 속에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박 후보자 사퇴 발표 직전, 민주당 안에선 “1명을 지킨다면 임 후보자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내각 30% 여성 장관 할당제’를 지키기 위해서 청와대가 임 후보자를 어렵게 설득했다는 점을 당에서도 감안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강훈식 의원은 “여성 후보자를 찾기가 참 어렵다는 점에서 지켰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문정복(맨 오른쪽) 의원과 정의당 류호정(맨 왼쪽) 의원이 설전을 주고 받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나랏돈 외유, 위장 전입, 아파트 다운 계약, 논문 내조 등의 의혹이 불거진 임 후보자에 대한 민심이 더 좋지 않다는 목소리도 당내에서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현 정권이 만들어놓은 인사 기준을 감안하면 임 후보자가 더 문제 아니냐”고 했다. 다른 여성 초선 의원은 “임 후보자가 결국 임명되면 ‘여자라서 됐다’는 말이 나올 텐데 이건 여성들 앞길을 더 막는 것”이라고 했다.

야권은 계속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박 후보자뿐 아니라 임혜숙·노형욱 후보자에 대해서도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특히 임 후보자에 대해 화력을 집중하면서 민심에 호소할 방침이다. 배준영 대변인은 “임·노 후보자의 부적절한 행위는 박 후보자의 것보다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다”고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앞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 강행 처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날 저녁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임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 채택했다. 박 후보자 사퇴로 ‘민심 수용’이라는 명분을 어느 정도 확보한 만큼 나머지 후보자 임명은 밀어붙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14일까지 임·노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를 재송부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해 놓았다. 여야가 두 후보자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더라도 15일을 기해서 두 사람의 임기는 자동으로 시작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임기 4년간 재송부를 요청한 후보자에 대해서 지명을 철회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