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HAP PHOTO-1891> 질문 듣는 정세균 전 총리 (서울=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정세균 전 총리가 2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2021.4.21 srbaek@yna.co.kr/2021-04-21 07:01:02/ <저작권자 ⓒ 1980-2021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코로나 백신 수급 차질 등 방역 행정 난맥상이 드러나자, 여권(與圈)에서 백신 제조사와 미국에 책임을 돌리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때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여론이 악화하자 미국과 해외 제약사를 탓한다는 지적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23일 라디오에서 미국의 코로나 백신 수출 금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우리가 미국한테 원조를 받는 것도 아니고,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사오는 것으로 제약회사들과 계약이 다 돼 있다”며 “만약 미국이 금수 조치를 취한다면 그걸 가로채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이건 깡패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가 이미 백신 판권을 쥔 미국 다국적 기업들과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미 정부가 이를 중간에서 막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미국이 백신 수출을 금지한다는 가정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한 것이지만, 전직 총리가 백신 협력의 키를 쥔 미국에 ‘깡패’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두고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선 백신 제조사의 ‘갑질’과 ‘불공정 계약’을 비난하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당 당 대표 후보인 홍영표 의원은 전날 “(우리 정부가) 백신을 충분히 확보했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백신 이기주의가 많이 생기다 보니 제때 공급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정 전 총리는 “우리 정부가 (해외 제약사에) 선금까지 줬다. 사실 그 계약이 상당히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것이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 계약을 제때제때 했다”고 했다. 민주당 홍익표 정책위의장도 지난 20일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요구가 매우 무리하다”며 “공개한다면 ‘그렇게 하면서까지 협상을 해야 했느냐’고 야당과 언론의 공격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해외 제약사들이 협상 때 백신 부작용이나 납기일이 늦어지는 것에 책임지지 않는 조항 등 납득할 수 없는 요구 조건을 내세운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하지만 방역 당국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백신의 제조사가 한정돼 일반적인 백신 계약과 다르게 제조사에 유리한 조항들이 공통적으로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백신 제조사들이 한국에만 불공정한 조건을 제시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정부와 모더나는 오는 5~6월 5만여명분을 공급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더나 물량 대부분은 하반기에 들어올 예정으로, 5월부터 물량을 공급하기로 한 계약 조항을 위반하지 않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전문가와 야당은 정부가 제때 백신 도입을 못 해 놓고 이제 와서 미 정부와 제조사 탓으로 책임을 미룬다고 비판했다. 작년 11월만 해도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화이자와 모더나가 먼저 계약하자고 재촉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백신 계약을 제때 하지 못해 상반기 수급난을 부른 것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고 되레 미국과 제약사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라며 “정 전 총리가 대권을 의식해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정부가 유리한 조건에서 계약할 시기를 놓치고서는 지금 와서 불공정한 계약을 맺었다고 한 것은 스스로 실책을 인정한 것 아니냐”고 했다. 정의당 이동영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백신 수급의 골든 타임을 놓친 것은 정부의 명백한 실책”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