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이해충돌방지법안 관련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에 앞서 배진교(왼쪽부터) 정의당 의원, 박용진 민주당 의원과 이건리 권익위원회 부위원장, 한삼석 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이 대화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여야는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열고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를 계기로 만들어진 이 법은 공직자가 자신의 지위나 직무 관련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했다. 여야 합의로 처리된 만큼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통과 가능성이 높다. 법이 공표되면 1년 뒤 바로 시행된다. 적용을 받는 공직자는 공무원과 공공 기관 임직원, 지방의회 의원, 국공립 학교장 등 약 190만명이다. 정무위 여야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병욱·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이날 법안을 의결한 뒤 “공직자가 국민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직무 중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걸 금지하고, 직무와 관련된 거래를 할 경우 사전에 이해관계를 신고하거나 회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뿐 아니라 직계 가족도 직무 관련자와 거래한 경우 이를 신고해야 한다.

또 고위 공직자나 채용 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의 가족은 해당 공공 기관과 산하 기관, 자회사 등에 채용될 수 없도록 했다. 이 법을 그대로 적용하면, 공공 기관 사장 또는 고위 공직자 자녀, 채용 담당자 자녀는 해당 기관뿐 아니라 산하 기관, 자회사 등에도 채용 될 수 없다. 이에 일각에서는 취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단,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공개 경쟁을 통해 채용된 경우에는 가족 채용 제한 규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공직자와 생계를 같이하는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은 해당 공공 기관 및 산하 기관과 수의 계약도 체결할 수 없다. 공직자가 직무상 정보를 이용해 재산상 이득을 취했을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7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등 형사처벌에 처해질 수 있다. 이는 퇴직 후에도 3년 동안 동일하게 적용된다. 퇴직한 지 2년이 지나지 않은 공직자가 현직에 있는 공직자와 골프, 여행, 사행성 오락을 같이할 경우 소속 기관장에게도 신고해야 한다.

또 LH나 국토부처럼 부동산 관련 업무를 직접 취급하는 기관에서 일을 하는 모든 공직자와 그 가족은 업무 관련 부동산 거래 시 14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하는 조항도 담겼다.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 2000만원에 처해진다.

이 법의 적용 대상은 모든 공무원과 공공 기관 임직원, 지방의회 의원, 국공립 학교장 등이다. 이들의 직계 가족까지 포함하면 최소 500만명가량이 이 법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방송공사(KBS)와 한국교육방송공사(EBS)는 공공 기관으로 분류돼 이 법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공공 기관 임시직과 계약직 직원, 사립학교 교원 등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특히 고위 공직자는 임용 전 3년간 민간 부문 업무 활동 내역을 제출해야 한다. 다만, 내역 공개 여부는 각 소속 기관장이 판단하게 했다. 본인이 맡게 될 업무와 이해 충돌 사례가 발견될 경우 위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공직자는 아니지만 공직자에게서 미공개 정보를 제공받아 재산상의 이익을 본 사람 역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재산상 이익을 얻지 않더라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공직자와 다른 사람에게 정보를 준 공직자는 최대 징역 3년, 벌금 3000만원에 처한다.

이런 가운데 여야 정치권에서 이해 충돌 사례가 불거져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은 2015년 1월 용산구 한남뉴타운 4구역 조합 설립을 인가한 지 6개월 만에 재개발 지역 다가구주택을 매입해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민주당 소속 김영종 서울 종로구청장은 가족 회사가 소유한 건물 주변에서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제명된 정현복 전남 광양시장도 본인과 자녀가 소유하고 있던 땅에 도로를 개설하고, 배우자 소유 땅 인근을 개발하는 등 이해 충돌 논란을 빚어 경찰이 수사 중이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도 본인과 가족들이 개발 예정지 땅을 사들여 시세 차익을 얻으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