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들이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예우법)’ 제정안을 또다시 발의했다.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뿐 아니라 유신 반대 투쟁, 6월 항쟁 등에 나섰던 이들도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지정해 배우자·자녀 등에게 교육·취업·의료·대출 등을 지원해주는 내용이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이 작년 9월 같은 이름의 법안을 발의한 뒤 ‘운동권 셀프 특혜’ 논란이 일었다. 그런데 이번엔 법 적용 대상에 민주화 운동 관련 사망·부상자뿐 아니라 관련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 등까지 포함했다.

전국민주화운동동지회 출범선포식에서 격려사 중인 설훈 민주당 의원

민주당 설훈 의원은 지난 26일 범여권 의원 72명과 민주유공자예우법을 공동 발의했다. 지난해 의원 20명이 참여한 우원식 의원 법안 발의 때보다 발의 참여 의원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법안은 민주화 운동 유공자 자녀 등에게 중·고교·대학 수업료, 직업 훈련·의료 비용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20년 분할 상환이 가능한 주택 구입·임차 대부도 지원하도록 했다. 특히 우원식 의원 법안에선 지원 대상을 ‘민주화 운동 부상자·사망자·행방불명자’로 규정했지만, 설훈 의원안(案)은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유죄 판결·해직·퇴학 처분’을 받은 이른바 ‘민주화 운동 희생자’를 추가했다.

여당 찾은 정의당 대표 - 정의당 여영국(오른쪽) 대표가 29일 취임인사차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당대표 직무대행을 찾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설훈 의원이 발의한 민주유공자예우법 제정안에는 기동민·김남국·김두관·김민기·김민석·도종환·박홍근·안민석·양이원영·유기홍·이수진·이탄희·조정식·황운하 등 민주당 의원 68명, 배진교(정의당)·강민정(열린민주당)·김홍걸(무소속) 의원 등 72명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설 의원은 지난 26일 법안을 발의하면서 제안 이유로 “민주화 운동 중 4·19 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만 관련자를 국가·민주유공자로 예우하고 있어 그 외 민주화 운동 관련자 예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했다. 유신 반대 투쟁, 6월 민주항쟁 등에 연관된 사람들도 민주유공자로 예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 의원 법안엔 ‘민주유공자와 유족·가족에 대한 교육·취업·의료 지원, 주택 대출, 양로·양육 지원 등을 실시한다’ ‘국가와 지자체는 각종 기념·추모 사업을 실시하고 민주화 운동 관련 시설물 등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다’는 조항이 담겼다.

교육 지원은 유가족의 중·고교와 대학 수업료를 면제해주도록 했다. 사립대 등이 수업료를 면제해주면 국가가 절반을 보조한다. 직업 훈련 비용, 취업 지원 장려금도 지급하고, 주택 구입·신축·개량·임차 등과 관련한 대부(최대 만기 20년 상환 저금리 대출)도 지원하도록 했다. 농토 구입 대부, 생활 안정 대부도 지원하게 했고, 국가보훈처장이 주택을 지어 대부 대상자들에게 분양·임대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밖에 국가의 의료 지원과 양육·양로·요양 지원 등도 포함된다. 국가유공자나 순국선열, 애국지사의 유족에게만 제공됐던 혜택을 민주화 운동 유공자 가족에게도 똑같이 주겠다는 것이다.

다만 작년 우원식 의원 발의 법안에 포함돼 논란이 됐던 유가족 입학·취업 혜택은 포함되지 않았다. 우 의원 안은 민주화 운동 유공자 가족·유족 등이 정부나 공공 기관, 민간 기업에 취직을 원할 경우 최대 10% 가산점을 주고 일정 비율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했다. 또 중·고교 입학 의사를 밝히면 학교가 입학 정원의 일정 범위 내에서 이들을 입학시키도록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이 민감해하는 입시·취업 관련 내용은 상당 부분 완화했다”고 했다.

그러나 설훈 의원은 법안에서 수혜 대상을 대폭 넓혔다. 민주화 운동 관련 심의위에서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한 이들과 그 가족을 지원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우원식 의원안엔 없었던 ‘민주화 운동 희생자’라는 항목을 신설했다. 민주화 운동 관련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이유로 유죄 판결·해직 또는 퇴학 처분을 받은 사람’까지 포함한 것이다.

설 의원 법안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 등에선 민주화 운동권 출신 정치권 인사들을 향해 “민주화는 모든 국민이 함께 이뤄낸 것이지 운동권이 이룬 것이 아니다” “대학 때 몇 년 학생 운동 한 경력으로 국회의원 된 자들이 특혜까지 세습하겠다니 말이 안 나온다” 같은 비판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자기들 특혜 주는 법을 자기 손으로 만드는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은 “선정 과정도 불투명한데 자식에게까지 특혜를 주자는 주장은 또 다른 불공정 논란으로, 젊은이들의 기회를 뺏는 짓”이라고 했다. 인터넷에선 또 “당신들만 유신 반대하고 6월 항쟁 한 것 아니다. 사이비 민주 세력 빼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행동이 아니다”라는 반응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