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가 19일 일간지 4곳에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는 익명 광고를 실은 시민 A씨에게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국민으로서 의견을 개진한 것일 뿐인데 선거법 위반이라니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A씨는 이날 발간된 조간 신문 3곳과 석간 신문 1곳 등 일간지 4곳에 ‘김종인·오세훈·안철수님에게 고합니다’란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오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선관위 측은 이날 오후 A씨에게 전화로 “광고 게재가 공직선거법에 위반된다”며 출석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A씨는 본지 통화에서 “선관위 측에서 광고에 후보자 이름이 들어갔다며 광고 경위, 광고 문구의 목적, 광고비 출처 등에 대해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했다.
선관위가 A씨 광고를 문제 삼으면서 근거로 든 법 조항은 공직선거법 93조 1항이다. ‘선거 180일 전부터는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거나 정당 명칭, 후보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A씨는 “인터넷 등에서 정당·정치인을 지지·반대하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 집권당에 대한 실망과 야권 후보 단일화에 대한 개인 의견을 표출한 게 잘못이냐”고 했다. 정부·여당을 비판하고 야권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어서 선관위가 더 엄격하게 나오는 것 아니냐는 취지다. 서울시선관위 관계자는 “선거가 임박한 상황이라 광고 게재 경위를 확인해 선거에 잘못된 영향을 미치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야당에선 최근 선관위가 여당에 편향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례가 적잖다고 반발하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부산을 방문해 “신공항 예정지(가덕도)를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 등의 발언을 한 것이 “선거 개입”이라는 야당 주장에 최근 “직무 수행 활동의 일환”이라며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또 서울 지역 택시 150대에 붙인 투표 독려 홍보물 색상이 파란색 계열에 가까워 더불어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야당 지적에 중앙선관위는 “빛·각도 등에 따른 인식 차이가 생길 수 있다”며 수정 불가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선관위가 19일 조사에 나선 A씨의 신문 광고는 이날 자(字) 조간 신문 3곳과 석간 신문 1곳에 게재됐다. 광고 게재 당일 곧바로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서울시선관위 측은 특정 정당이나 후보 이름을 언급하며 지지·반대 의사를 밝히는 광고를 게재한 만큼 선거법 93조 1항 위반 소지가 크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A씨는 “과도한 규제 아니냐”라고 했다.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이 담긴 광고라 선관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타냈다.
선관위가 문제 삼은 A씨 광고는 ‘김종인·오세훈·안철수님에게 고합니다’란 제목으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A씨는 광고에서 ‘문재인 정권이 말로만 공정을 외치면서 자식들을 편법으로 호강시키고, 자신들은 특권으로 재산을 불리고, 하면 될 수 있다는 국민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고 주장했다.
60대 중반의 기업인이라는A씨는 통화에서 “LH 사태로 국민이 상실감에 빠져 있고 나라 미래가 암울한 상황에서 야권 정치인들이 자기희생의 자세를 보여달라는 취지로 광고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오세훈·안철수 후보가 TV토론에서 이런저런 조건을 걸며 선거 때 도와줄 수 있느니 없느니 하는 걸 보고 화가 났다”고 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해서는 “단일화 상대인 안 대표와 어떤 앙금이 있는지 모르지만 상처 주는 말을 해선 안 된다”고 했다.
40여년간 사업을 했다는 그는 “나는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견을 개진한 것인데 선거법 위반이라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인터넷 댓글이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한 정당·정치인에 대한 지지·반대 의견 개진이 일반화된 마당에, 일종의 ‘의견 광고’를 문제 삼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그는 “추가로 광고할 계획이 없다”며 “조사를 안 받겠다는 것도 아닌데 서울시선관위에선 주말에라도 조사를 받을 수 있느냐고 하니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야권에선 선관위가 편파 논란을 부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 선관위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TBS의 “일(1)합시다” 캠페인이 기호 1번 정당인 민주당을 홍보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면서도 “현시점에서 선거법에 위반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별다른 처분 없이 종결 처리했다. 지난해 총선 때는 ’100년 친일 청산 투표로 심판하자'는 투표 독려 문구는 허용하면서 ‘민생 파탄 투표로 막아주세요’란 문구는 ‘현 정권을 연상시킨다’는 이유 등으로 불허해 야당에서 반발하는 등 논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