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수사-기소 완전 분리를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 공청회'에서 축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에 넘기는 내용의 ‘수사청법’ 등 검찰 수사권 박탈 관련 법안을 이르면 다음 주 발의하겠다고 25일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관련 법안에 ‘신중론'을 취하고 있지만, 민주당은 ‘3월 발의 후 6월 처리’ 방침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검찰개혁특위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청법과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다음 주부터 의원총회 등을 거쳐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박범계 법무장관에게 속도 조절을 당부하는 취지로 말했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특위의 오기형 대변인은 이날 “속도 조절은 고민해본 적 없고 논의도 한 적 없다”고 했다. 특위에 참여한 민형배 의원은 “그런 말(속도 조절)은 나온 적도 없고 있지도 않은 말”이라며 “무슨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이냐, 속도를 냈어야 조절하지”라고 했다. 대통령 메시지를 여당이 공개적으로 부정한 셈이 됐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언론 인터뷰에서 “당 기구의 결론은 당의 입장이며, 그 결정은 따라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당론(黨論)으로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이 수사청법 등을 밀어붙이자, 검찰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민주당이 수사청법 추진을 공식화할 경우 직(職)을 걸고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법조인은 “여권이 계속 밀어붙일 경우 윤 총장이 올 7월까지인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총장직을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검 내부적으로도 발표 시기와 내용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럴 경우 임기 말에 접어든 현 정부와 검찰의 갈등이 또다시 격화될 전망이다.

윤석열, ‘수사청 충돌’ 전면에 나설 시점 고민

윤석열 검찰총장이 더불어민주당의 중대범죄수사청(가칭 수사청) 추진에 대해 직접 전면에 나서 반대할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이날 대검에선 “윤 총장이 지켜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라는 말과 함께, 대검 참모들이 이 사안과 관련된 각종 법리 검토와 내부 논의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윤 총장 주변에서는 “총장이 입장 표명 시기와 내용을 고민하고 있다. 민주당이 수사청 법안을 당론으로 정하는 시점이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윤 총장이 “직(職)을 걸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있다. 윤 총장은 더불어민주당의 중대범죄수사청 추진을 사실상‘검찰청법 폐지안’으로 보고 상황이 가시화할 경우 직접 전면에 나서 반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윤 총장은 지난해 정권의 노골적인 찍어내기 압박에도 직접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거듭되는 수사지휘권 박탈 때나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 정지 및 징계 청구를 당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의 대검 국정감사에서 다른 현안을 놓고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설전을 벌인 게 유일했다.

그런데 윤 총장은 이번 수사청 문제는 총장직을 걸어야 하는 사안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그만큼 수사청 문제가 검찰 존립과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라며 “윤 총장은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이 ‘수사청’이라고 포장만 해놨을 뿐 사실상의 ‘검찰청법 폐지안’이라고 보는 것 같다”고 했다.

윤 총장은 형사소송법 측면에서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것이 애초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 재판의 종국적인 목표가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아 형을 집행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라면, 재판 절차를 준비하는 과정은 각종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검찰 간부는 “대기업 사건을 예로 들면 검사들이 1년 넘게 매달려 수사 기록만 수십만 쪽에 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복잡하고 중대한 사건에 대해 기록만 읽어보고 재판에 나서 유죄를 받아내겠다는 것은 대형 로펌과 전관을 선임할 수 있는 돈 많은 피고인들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 체계의 비효율적 퇴행”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검사장들의 경우 수사청 반대의 표시로 사표를 내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장은 “결국 정권에 칼을 겨눈 검찰을 아예 없애버리겠다는 여권의 공적(公的) 보복 아니냐”고 했다. 일선 검사들도 수사와 기소 권한을 아예 나눠 수사청과 공소청을 따로 두겠다는 여당 주장에 대해 “검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선 지청의 한 검사는 “수사청 체제에서 검사는 아예 필요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 검·경 수사권 조정 때보다 문제의 심각성을 더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대부분 경찰로 넘어갔지만, 검찰은 기존의 수사 지휘권과 보완 수사 요구 등의 절차를 통해 어느 정도 부패 방지 역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 수사 지휘를 철저하게 하면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아도 수사 과정을 파악해 공소 유지가 가능하다”면서도 “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증권 범죄나 대형 금융 사건, 중대한 권력 비리 사건의 경우 수사 과정을 모르면 재판 대응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검찰 안팎에선 “민주당이 수사청을 계획대로 밀어붙인다면 작년 말 윤 총장 징계 국면에서 벌어진 전국적 검란(檢亂)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