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與野)는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법안 세부 내용에 대부분 합의했다. 기업에서 사망 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경영 책임자’와 법인(회사) 등을 처벌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법안을 7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거쳐 8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법이 시행되면 기업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재해 발생 시 안전 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경영 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이날 여야 합의안에 따르면 ‘경영 책임자’는 사업을 실질적으로 지배·총괄하는 대표 이사 또는 안전 보건 담당 이사로 정해졌다.
여야는 합의 과정에서 애초 여당 측이 발의한 법안과 정부안에 비해 처벌 수위와 범위를 완화했다. 애초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 발의안은 ‘2년 이상 징역 또는 5억원 이상 벌금’, 정부안은 ‘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이었다.
여야는 또 이날 상시 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은 ‘중대산업재해’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음식점, 노래방, PC방, 목욕탕 등 다중이용업소도 바닥 면적이 1000㎡ 미만이면 세월호 참사 같은 ‘중대시민재해’로 보지 않고 중대재해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 소상공인과 학교 시설도 처벌 대상에서 제외했다.
여야는 사고 발생 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을 처벌하는 규정도 공무원의 인·허가 감독 행위와 중대 재해 발생 사이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삭제하기로 했다. 이에 정의당은 “법안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내용이 훼손됐다”며 강력 반발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거대 양당이 논의한 법은 처벌법이 아니라 기업살인방조법”이라고 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도 사망 사고 발생 시 사업주 등에게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을 무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사업주는 안전 보건 규정을 직접 위반한 경우에 적용돼 실제 처벌받은 사례가 드물었고, 주로 현장 관리자가 처벌을 받아왔다. 민주당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대표이사 등 사업주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취지”라고 했다.
중대재해법은 법인 처벌도 규정했다. 사망 사고 시 50억원 이하(부상·질병은 10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당초 민주당안과 정부안은 ‘1억원 이상 20억원 이하’였지만, 하한을 없애면서 ’50억원 이하’로 올린 것이다. 또 중대 재해가 발생한 기업은 피해자가 입은 손해액의 최대 5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 배상’ 책임도 지도록 했다. 이에 사업주가 경영과 안전을 동시에 책임지는 경우가 많은 중소·중견기업이 경영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경영계에선 처벌 수위는 강화되는데, 처벌 근거가 되는 ‘안전 보건 확보 의무 조치’가 너무 포괄적이거나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책임 의무 범위는 ‘재해 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 등 안전 보건 경영 체계 수립’ ‘안전 보건에 관한 관계 법령 준수에 필요한 조치’ ‘재해 발생 시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등으로 규정돼 있다.
또 중대재해법 정부안은 사업주가 제3자에게 용역이나 도급, 위탁을 한 경우에도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제3자와 공동 부담하고, 하도급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하면 원청도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정부는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2년간,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 후 4년간 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입장인데, 이 기간 내에 하도급 업체에서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간접 당사자인 원청 회사만 처벌받는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 노웅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법이 통과되면 첫 번째 대상은 ‘산재 왕국’ 포스코가 돼야 한다”며 특정 기업을 거론하기도 했다.
한편 여야는 장관·지자체장 등도 기관의 ‘경영 책임자’로 보고 처벌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지만, 지자체는 반발하고 있다. 장관 등 처벌 규정이 빠질 경우, 예컨대 ‘중대시민재해’로 분류될 수 있는 이번 서울 동부구치소 코로나 집단감염 같은 사태가 벌어져도 법무부 장관은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