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혐의 피소’ 관련 사실을 박 전 시장 측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5일 “나는 피소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고 유출한 바 없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은 서울시 젠더특보를 통해 남 의원 연락을 받은 다음 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남 의원은 이 사건과 관련성을 부인한 것이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은 “위선적이고 군색한 변명”이라며 남 의원 사퇴를 요구했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달 30일 ‘박원순 피소 유출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내용이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박 전 시장 측에 흘러들어 간 과정의 핵심 인물로 남 의원을 지목했다. 이 사건 피해자의 변호인 측에서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전달받은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가 남 의원에게 관련 사실을 전달했고, 남 의원이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에게 전화로 ‘박 시장 관련 불미스러운 얘기가 도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느냐’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남 의원은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를 지냈고, 임 특보는 남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임 특보에게서 남 의원이 전한 이야기를 전달받은 박 전 시장은 당일 늦은 밤 대책회의를 열었고, 다음 날 임 특보에게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는 메시지를 남긴 뒤 숨진 채 발견됐다.
남 의원은 작년 7월 박 전 시장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여성 단체 출신 국회의원이 피해자 보호를 외면하고 사건 내용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하지만 남 의원은 당시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이번 검찰 발표 이후에도 침묵하다가 6일 만인 이날 입장문을 통해 “피소 사실을 유출했다는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남 의원은 “검찰 발표에서도 박 전 시장이 특보를 통해 최초 정보를 취득한 시점은 피해자의 고소장 접수 이전”이라며 “다만 나는 특보에게 ‘무슨 일 있느냐’고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남 의원은 그러면서도 박 전 시장 사건을 누구에게서 들었고, 어떤 내용을 전달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남 의원은 민주당 젠더폭력대책TF 위원장도 맡고 있다.
검찰 수사로 남 의원이 박 전 시장 사건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났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아직 추가적인 팩트 확인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하지만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으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당 차원에서도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이 사건 초기 피해자를 ‘피해 호소 여성’으로 불렀고, 남 의원이 이 호칭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시민단체 출신 인사의 비위 의혹에 지나치게 관대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작년 5월 정의기억연대 출신 윤미향 의원의 위안부 기부금 횡령 의혹이 불거졌을 때 당시 이해찬 대표가 “굴복해선 안 된다”고 감쌌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출신 신미숙 전 청와대 비서관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됐을 때는 “검찰이 대통령 인사권을 트집 잡는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시민단체는 민주당의 전통적 우군(友軍) 세력이어서, 이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불거져도 당의 비판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민주당엔 시민단체 출신 의원만 20여 명이 포진하고 있다.
남 의원에 대해 국민의힘 배준영 대변인은 “민주당의 ‘N차 가해’ 끝은 어디인가”라며 “남 의원은 석고대죄하고 의원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질문과 유출이 무엇이 다르냐, 도움을 요청한 사람을 짓밟은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안혜진 대변인은 “윤미향의 향기가 풍긴다”며 “남 의원은 윤 의원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빌붙어 출세와 부 축적에 몰입한 정치꾼의 모습”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