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은 2일 “전(全) 당원 투표에서 86.64%가 찬성했다”며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 당헌(黨憲)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한 잘못’으로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치러진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날 “당원 주권(主權) 원칙에 따른 결정” “후보를 내는 것이 공당으로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가운데) 대표와 김태년(오른쪽) 원내대표, 김종민 최고위원이 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앞서‘2020 코리아세일페스타’성공을 기원하는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이 대표는 회의에서 내년 서울시장, 부산시장 공천 확정에 대해“시민과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민주당은 이날 전 당원 투표 결과를 발표하면서 “압도적 찬성” “이낙연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전폭적 지지”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투표에 참여한 당원이 전체의 2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효력 논란이 제기됐다. 민주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전 당원 투표는 ‘투표권자 총수 3분의 1 이상(33%)의 투표와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 민주당 측은 “이번 투표는 의결 절차가 아니라 (당원의) 의지를 물은 것”이라고 했다. 이낙연 대표가 지난달 29일 “전 당원 투표에 부치겠다"는 방침을 밝힌 데 대해서도 민주당은 “당원 투표의 상징적 의미를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투표 참여자가 전체 당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서 ‘전 당원 투표’를 내세워 대국민 약속을 뒤집는 책임 회피를 합리화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투표 성립 요건을 못 채웠는데 현대판 사사오입 개헌 시도인가”라고 했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도 “책임 정치를 스스로 폐기 처분하더니 절차적 정당성마저 폐기 처분한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말 바꾸기’사례

민주당은 이번 당헌 개정을 두고 ‘책임 정치 구현’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제의 당헌 조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정치 개혁’이라며 국민 앞에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로 있었던 2015년 당 혁신위원회가 이 당헌 조항을 만들자 “재·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정치 발전의 출발점”이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 혁신안에 대해 당내에서 반대 움직임이 일자 “혁신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해 통과시켰다. 문 대통령은 그해 새누리당 소속 군수의 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치러진 경남 고성군수 재선거 유세 때는 “새누리당은 책임지고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민주당이 집권한 후 당 소속 후보 잘못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되자, 민주당 지도부는 혁신안을 뒤집고 문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선 이날, 문 대통령이 주도했던 혁신안을 5년 만에 폐기하면서 “김상곤 혁신안”이라고 불렀다. 당시 민주당 혁신위원장이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이었다는 점을 강조해 문 대통령이나 이 대표 책임을 희석하려는 의도란 해석이 나왔다. 신동근 최고위원은 당 회의에서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못하게 한 당헌 규정은) 투표권을 막은 과잉 금지 조치”라고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의 조변석개(朝變夕改) 흑역사에 한 줄이 더해졌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때 자신들이 강행한 선거법 개정에 맞서 야당이 비례당을 만들자 강력 비판했다. 그러나 결국엔 민주당도 비례 위성정당을 창당했다. 또 야당 때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야당이 맡아야 한다’고 했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도 21대 국회에서 압승하자 여당 몫으로 돌렸다.

민주당은 3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당헌 개정을 마무리지을 방침이다. 민주당에선 당 소속 전임 시장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만큼 “여성 후보를 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