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5월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에 착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은 20일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내용 등이 담긴 ‘사법 개혁안’을 발표했다. “사건 수가 많아 격무에 시달리니 대법관을 늘려 제 기능을 다하게 하겠다”는 게 민주당 측 설명이다. 그러나 법조계와 야권에서 “사법부를 여권 입맛에 맞는 인사로 채우고 대통령 사법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여당 안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임기 동안 대법관 총 22명을 임명하게 된다. 차진아 고려대 교수는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정권이 대법관을 12명 증원한 뒤 노골적으로 코드 인사를 했고, 그 결과 사법부가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한 통제 권한을 상실했다”며 “대법원의 정치적 편향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했다.

◇李 임기 내 대법관 26명 중 22명 임명

민주당이 이날 발표한 대법관 증원안은 법 공포 1년 후부터 매년 4명의 대법관을 순차 증원하는 방식이다. 올해 안에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경우 내년 말부터 3년간 매년 4명씩 총 12명의 대법관이 늘어나는 방안이다.

이 경우 이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2030년 6월) 중, 증원된 대법관 12명과 함께 정년(70세)·임기(6년) 종료로 퇴임하는 기존 대법관 10명 등 총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하게 된다. 여권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조희대 대법원장은 2027년 6월 퇴임할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 코드 인사가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황도수 건국대 교수는 “대법관 성향을 정부와 민주당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바꾸겠다는 위험하고 독재적인 발상”이라며 “다른 구조적 개혁 없이 대법원 사건 적체를 단순히 대법관 증원만으로 해결하려면 대법관을 100명 이상으로 늘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는 “‘김명수 사법부’ 때 대법관 후보군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없애면서 법원 엘리트들이 다수 옷을 벗어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했다.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과 위원들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 사법개혁안 관련 법안을 제출하고 있다./남강호 기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법 개혁안이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고, 사법부를 장악하고, 삼권분립 헌정 질서를 파괴하여 독재 체제로 나아가는 ‘사법 장악안’”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백혜련 민주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장은 “일부에선 대법관 증원이 특정 정권의 사법부 장악을 위한 것이라 우려한다”며 “그러나 이재명 정부에서 임명되는 대법관이 22명이고, 다음 대통령도 똑같이 22명을 임명한다. 현 정권과 차기 정권이 똑같은 수를 임명하는 구조”라고 했다.

개혁안에 따르면 인원이 늘어난 대법원은 소부 6개와 전원합의체 역할을 하는 연합부 2개로 운영된다. 국가적 중요 사건의 경우 연합부 대법관 과반수가 동의하면 대법관 3분의 2 이상이 참여하는 일종의 ‘확대 전원합의체’를 구성해 판결하게 된다.

그래픽=양진경

◇대법관 추천위 구성 ‘코드’ 우려

민주당 안에 따르면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도 달라진다. 현재 10명인 추천 위원이 12명으로 늘어난다. 기존엔 선임 대법관,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법무부 장관, 대한변협 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이상 당연직 6명)과 변호사 자격이 없는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 경험이 풍부한 외부 인사 3명,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법관 1명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민주당 안에 따르면 법원행정처장을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으로 바꾸는 것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대법원장이 지명한 법원행정처장을 빼서 대법원장 권한을 약화시키고 헌법재판소 위상을 더 높여주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법관도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한다. 여기에 지방변호사회 회장의 과반수가 추천하는 변호사 1명도 추천위에 추가했다. 한 법조인은 “대법관 추천위가 진보 성향의 외부 인사나 법관들이 더 늘어나, 코드 추천을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현재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법관 3명으로 구성하는 법관인사위원회도 대법원장·전국법원장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각 1명씩 추천하게 했다. 법관 평가엔 대한변협이 취합한 각 지방변호사회의 법관 평가가 포함되게 했다. 민주당은 사건 하급심(1·2심) 판결문의 열람·복사도 전면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현재는 확정된 사건 판결문만 열람·복사하는 게 가능하게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발표한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시스

◇압수 수색 영장 발부 전 심문도 추진

민주당은 이날 ‘압수 수색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법원이 사전 대면 심문 절차를 할 수 있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인 이건태 의원은 “법원이 필요한 사람을 심문할 수 있게 하되, 수사 보안과 신속성을 위해 영장을 신청·청구한 수사기관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대법원이 과거에 추진했고, 대검찰청이 반대했던 사안이다. 대법원은 2023년 2월 압수 수색 영장 발부 전 판사의 필요에 따라 수사기관과 피의자·변호인을 불러 심문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러자 대검찰청은 “압수 수색 영장 청구는 수사 초기 착수 단계인데, 압수 수색 영장 발부 전 심문 절차를 진행하면 사건 관계인들에게 수사 기밀이 유출돼 증거 인멸 등의 우려가 있다”고 했다.

차장검사 출신 김종민 변호사는 “보통 수사는 압수 수색을 통해 말단부터 시작해서 증거와 진술을 확보하고, 윗선으로 올라간다”며 “그런데 수사 초기부터 수사 기밀이 유출되면 범죄 단체의 중간 책임자, 주범까지 다 순식간에 증거 인멸을 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반면, 판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과도한 압수 수색을 벌여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법원이 사전에 수사 밀행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