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3일 인천 강화제일풍물시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photo 뉴스1

한·미 관세협상과 정상회담은 정부와 여당이 어떻게 ‘말의 기술’을 활용해 여론을 움직였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였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메시지가 제시되는 순간 여론은 반응했다. 많은 정치인이 성과 부풀리기와 말 바꾸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7월 31일 이재명 대통령은 “드디어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타결했다”며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앴다”고 발표했다. 이어 8월 25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도 대통령실은 “합의문이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고 자평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국회 연설에서 “역대급 성공”이라며 “대통령은 뛰어난 전략가이며 협상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치켜세웠다. 국민은 협상의 구체적 내막을 알 수 없었지만, 정부와 여당이 전하는 ‘굿뉴스’에 박수를 보냈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8월 1주 전국지표조사에서 관세협상에 대한 긍정 평가는 62%로 부정 평가의 두 배를 넘었다. 대통령 지지율은 취임 후 최고치인 65%에 달했다. 8월 4주 한국갤럽 조사도 한·미 정상회담이 ‘국익에 도움이 됐다’(58%)가 ‘도움이 되지 않았다’(23%)를 압도했다. 8·15 특별사면으로 떨어졌던 지지율이 다시 60%대를 회복했다. 지지 이유 항목에서 9위에 머물던 ‘외교’가 1위로 치솟으며 반등의 핵심 동력이 됐다.

관세협상 두고 달라진 말

하지만 정상회담 보름 뒤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관세협상이) 상당히 교착 상태”라며 “현재 상태로는 절대 사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도 7월 관세협정 직후에는 “큰 고비를 넘었다”고 했지만, 9월 기자회견에선 “작은 고개를 넘었다”로 표현 수위를 낮췄다.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7월에는 보증과 대출, 투자 등을 합쳐 3500억달러에 협상했는데 미국이 전액 현금으로 내라고 입장을 바꿨다”고 했다.

관세협상 관련 정보공개 청구를 정부가 ‘협상 중인 사안’이라며 거부했기 때문에 정확한 실상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미국이 입장을 바꿨다 해도, 정부의 초기 발표가 합의문도 없는 불확실한 협상 결과를 성급히 성과로 포장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와 여당은 확정되지도 않은 협상을 왜 ‘성공’으로 부풀렸는지 해명해야 한다. 국회 연설에서 “예측과 협상이 까다롭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달성한 쾌거”라며 칭송했던 정청래 대표도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선 안 된다. “100점 만점에 120점” “외교 천재”라는 아부성 발언을 쏟아냈던 민주당 의원들 역시 어떤 설명이라도 내놓아야 한다.

관세협상이 난항에 빠지자 이번에는 “무도한 미국에 맞서는 강단 있는 지도자”로 포장해 지지율 누수를 막으려는 시도가 보인다. 이 대통령은 8월 한·미 정상회담 직후에는 “서로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했지만, 9월 타임지 인터뷰에선 “미국의 요구대로 합의해줬으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민주당 친명계에선 “미국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미국 제품과 주식 불매운동까지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선 “날강도식 압박” “깡패와 다를 바 없다”는 험한 말이 나왔다. 반미 선동은 지지층 결집을 노린 정치적 계산일 뿐, 국민에게는 불안과 혼란을 안겼다.

대북 정책에서도 오락가락 행보가 논란이 됐다. 후보 시절 내세운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8월 26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연설에서는 “철저히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9월 22일 BBC 인터뷰에선 입장을 달리했다. “궁극적 목표(비핵화)를 향해 헛된 노력을 계속할지 아니면 현실적인 목표(북핵 동결)를 세워 일부라도 성취할지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비핵화 원칙을 지킬 것인지,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것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입장 번복은 국내 현안에서도 반복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배임죄 폐지 논란이다. 성남시장이던 2012년에는 “기업과 주주에 손해를 입히고 특정인에 이익을 주는 배임죄 처벌이 사법권 남용이란 건 해괴한 소리”라고 했다. 최근에는 정반대의 주장을 펼쳤다. 지난 9월 “외국인들이 투자할 때 결정을 잘못하면 배임죄로 감옥에 간다”며 “대대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올해 정기국회 안에 배임죄를 폐지하겠다”며 호응했다. 이에 대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배임죄로 유죄받을 게 확실하니 배임죄를 없애 ‘면소 판결’을 노리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받고 있는 재판 5건 중 2건은 배임 혐의와 직접 연관돼 있다.

야당 대표 시절 발언과 지금의 언행을 비교해도 같은 패턴이 드러난다. 민주당 대표였던 2023년 11월 행정망 마비 사태 때는 “잘못했으면 미안하다 해야지 그저 남 탓, 전 정부 탓하면 책임지는 자세라고 할 수 있느냐”고 질타했다. 하지만 9월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이 중단되자, 이번에는 “2년이 지나도록 국가 전산망 보호를 게을리해 막심한 장애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전 정부 책임론을 꺼냈다.

지지율 버팀목 되는 화술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는 저서 ‘정치 전쟁’에서 이 대통령 화법의 특징으로 ‘안면몰수’를 꼽았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를 흐리는 이 화법은 지지층을 결집시켜 지지율의 버팀목이 된다. 지지자들은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의 말 바꾸기는 사회를 불신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 대통령에게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일부에선 “급하게 출범한 정부 치고는 대체로 무난하게 국정을 이끌며 정상화의 길을 열었다”고 한다. 비상계엄 사태로 멈췄던 외교 시계가 다시 움직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시험대는 지금부터다. 성과 부풀리기와 말 바꾸기가 반복된다면 정부의 발표와 약속은 설득력을 잃게 된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미 정상회담 직후 63%까지 치솟았던 대통령 지지율이 최근엔 취임 후 최저치인 55%로 떨어졌다. 지지율 반등을 이끌었던 ‘말의 기술’은 불과 한 달 만에 한계를 드러냈다. 포장술의 착시가 완전히 걷히면 성과처럼 보였던 지지율은 더 하락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퇴임 때 지지율”이라고 참모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지율은 잠시 부풀릴 수 있어도 오래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에게 올린 ‘시무 7조’로 주목받은 논객 조은산은 “역사는 군왕의 업적을 논할 뿐 당대의 지지율은 논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통령과 정권은 시간이 드러내는 진실 앞에서 냉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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