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산하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예산 중 국고로 반납해야 할 예산 일부를 원래 목적과는 다른 용도에 투입해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에는 정책연수원의 노래방 테이블이나 당구장 장비 구입 비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직사회 안팎에서는 예산을 가장 정확하게 사용해야 할 기재부가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이러한 장비들을 구입해야 했을 만큼 시급했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반납해야 할 예산이 기재부가 지분을 70%나 갖고 있는 준정부기관인 캠코의 예산이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갑질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2024년도 기획재정위원회 소관 결산 및 예비비 지출 승인 검토보고’에 따르면, 기재부는 국유재산관리기금으로 사용돼야 할 지출 품목에 캠코로 하여금 자체 재원을 지출하도록 떠넘겼다. 문제가 된 사업은 정책연수원 신축 프로젝트 내 예약관리시스템 구축 분야다.
정부 부처가 공동으로 이용하는 교육연수시설을 마련하기 위해 2024년 자산취득비 16억6700만원이 편성됐고, 이 가운데 4억200만원은 온라인 예약시스템 구축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실제 집행 과정에서 예약시스템 구축비는 국유재산관리기금이 아닌 캠코의 자체 계정에서 충당됐다. 보고서는 “캠코의 자체 재원 4876만원이 예약시스템 구축에 사용됐다”고 명시했다. 국유기금이 아닌 캠코의 재산이 사용된 이유나 경위에 대한 기재부 측의 입장은 보고서상에는 없었다.
규정대로라면 사용되지 않은 4억200만원은 불용(집행되지 않고 반납) 처리해야 했다. 또한 해당 사업은 캠코가 기재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하는 사업으로, 기재부 위탁업무에 대해서는 국유기금으로만 진행되어야 했다. ‘국유재산 위탁에 관한 규칙’ 제11조에 따라, 기재부 소관의 위탁업무와 캠코의 자체 업무에 대해 각각 사용되어야 할 예산이 구분돼 있던 것이다.
보고서는 해당 상황에 대해 “불가피한 사유로 국유재산관리기금에 편성된 예약시스템 구축 예산 집행이 불가하여 캠코의 자체 재원을 활용한 경우, 해당 예산은 원칙적으로 불용되었음이 타당하다”면서 “하지만 4억200만원에 이르는 예산은 당초 계획과 무관한 자산취득을 위해 집행되었다”고 설명했다.
노래방·당구장에2400만원 지출
여기에 더해 기재부는 반납해야 할 예산 일부를 정책연수원 내 노래방·당구장 시설 장비 구입에 사용했다. 보고서에 첨부된 관련 물품구매 내역을 보면, 기재부는 노래방 테이블 3개, 노래방 인포 의자 1개, 당구장 의자 8개, 당구장 테이블 2개, 당구대 1개, 노래방 반주기 3대를 구입했다. 여기에 총 2408만원이 쓰였다. 세금으로 이루어진 국유 재산이 정부 기관의 노래방과 당구장 등 오락시설에 사용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해당 시설들이 정부 기관에 설치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보고서는 이와 관련해 “정책연수원은 본래 정부부처가 공동으로 이용 가능한 교육연수원의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방, 당구장 등을 부대시설로 설치하는 것은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기재위 측은 이와 관련해 기재부의 규정 위반 소지가 명확하다는 입장이다. 해당 건 조사를 담당한 기재위 소속 조사관 A씨는 “사용되어야 할 국비가 사용되지 않은 점, 캠코가 사용할 필요 없는 자체 재원을 사용한 점, 사용되지 말아야 할 국비로 노래방과 당구장 시설을 구매한 점은 모두 사실”이라며 “회계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 취지가 위반된 것에는 이견이 없다”고 평했다. ‘국유재산관리기금 운용지침’ 제20조는 기금의 자산취득비는 시설의 본래 목적에 맞는 물품과 장비 구입에만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기재위 측에 따르면 노래방이나 당구장은 해당 목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는 예산에 있어서 슈퍼갑이나 다름없는 기재부의 전형적인 갑질이란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는 예산을 쥐락펴락하는 부처인 만큼 모든 부처의 ‘갑’으로 통한다. 따라서 이번 사안은 기재부가 필요에 따라서는 예산을 언제든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A씨는 “사전에 기재부와 캠코 양측이 합의를 했더라도, 현실적으로 기재부 산하 공기업이 기재부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봤다.
기재부 “환급 조치 약속”
A씨에 따르면, 기재부는 해당 상황에 대해 “먼저 캠코 측에 재원을 사용하도록 요청한 후, 4~10년에 걸쳐 환급해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반면 캠코 측은 기재위 조사실 측에 “답변을 드리기 곤란하다. 기재부를 통해 의견을 물어봐주시면 안 되나”라고 답했다고 한다. 주간조선 역시 당시 재원 활용에 대한 경위와 이유를 물었으나 캠코 측은 “현재로서는 본사에서 답변하기 어렵고 기재부 측에 문의해달라”고 밝혔다. 현실적으로 기재부의 요구를 산하기관이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일방적 압박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기재부는 해당 사안에 문제가 있었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재부 측은 주간조선에 “돈이 부족해서 당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며 “잘못에 대해 국회 기재위로부터 지적을 받았고 이에 대한 시정조치로 환급 등을 약속했다”고 답했다. 캠코 측의 재원 사용 과정에 대해서는 “캠코 측과 처음부터 캠코 재원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합의를 했고 이후 상환하는 방식으로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국회 기재위 측에 따르면, 기재부는기재위 측에 문제가 되는 비용에 대한 ‘환급’ 수용 의사를 전달했고, 실무자들의 책임을 우려해 ‘책임 규명’ 삭제를 요청했다. 국회 기재위 소속 의원들도 해당 문제에 대한 제도 개선과 시정조치를 강조했다. 현 기재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측은 국회 서면질의를 통해 “기획재정부는 당초 계획과 무관하게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자체 계정으로 부담하도록 한 것에 대해 책임 규명이 필요하다”며 “자체 계정으로 지출된 비용을 환급해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동 위원회 소속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 측 역시 동일한 취지의 서면질의를 통해 제도 개선과 시정 조치 필요성을 언급했다. 천 의원은 “기재부가 법규까지 위반하며 공기업 자금을 건드리고 노래방, 당구장을 설치하는 등 슈퍼 갑질을 저질렀다”며, “공직사회에 만연한 기재부의 슈퍼 갑질을 차단할 수 있는 재발방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 분야에서의 예산 활용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며 “행정 편의주의와 규정 위반에 대한 경각심이 만연하기 때문에 근원적인 공직 기강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갑질 여부에 대해서는 “단언할 수는 없으나 기재부·캠코 간의 구조를 고려했을 때 일방적인 행정 처리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며 “협의를 통한 부탁이라도 수직적인 체계 속 금전 관련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