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기여했던 독립운동가 이석영(1855~1934) 선생은 한동안 직계 후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선생의 장남인 독립운동가 이규준(1897∼1928) 선생이 31세 나이로 중국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규준 선생의 세 딸도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1년 이들의 직계 후손이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만에서 부친이 ‘이규준’으로 기재된 호적등기부가 발견된 것이다. 국가보훈부는 2022년 독립 유공자 후손 확인위원회를 열고 이석영 선생의 증손녀 등 직계 후손 10명을 공식 확인했다. 이석영 선생이 서거한 지 88년 만에 서훈이 후손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반면 만주 지역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대한의군부 총재 채상덕(1862~1925) 선생의 건국훈장 대통령장은 정부가 보관 중이다. 서거 100년째인 올해까지 후손을 찾지 못해서다. 이처럼 ‘후손 미확인’ 등의 사유로 훈장증을 전달하지 못한 독립 유공자가 7000명이 넘는다.
15일 국회 예산정책처의 광복 80주년 합동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독립 유공 포상자 1만7915명 가운데 40%가량인 7161명의 훈·포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훈·포장의 종류별로는 건국훈장 5109명, 대통령표창 1559명, 건국포장 493명 등이다.
독립 유공자 가운데 후손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후손이 있더라도 행방이 묘연하고 관계를 증명할 기록도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현재 독립 유공자 후손의 평균 연령은 80세로 추산된다. 지금까지 전달되지 않은 독립 유공자의 훈장이 영원히 전달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일제 감시 벗어나려 후손들 ‘뿌리’ 숨겨… 못 전한 훈장 7000개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많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일제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숨어살다시피 했고 자신의 뿌리에 대해 함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광복 80주년인 올해 생존해 있는 독립 유공자는 이하전(105), 오성규(103), 김영관(102), 강태선(102), 이석규(100) 선생 등 5명이다. 생존 독립 유공자 평균연령이 100세를 웃돌고, 이들의 자녀 세대 역시 고령화(평균연령 80세)되면서 유공자 발굴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독립 유공자 신규 발굴·포상 실적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국회예정처 보고서를 보면 독립 유공자 신규 포상은 2019년 648건, 2020년 585건, 2021년 657건, 2022년 598건이었다. 하지만 2023년에는 271건으로 대폭 줄었고 지난해에도 257건에 그쳤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독립 유공자를 발굴하기 시작하고 대상도 확대하면서 일시적으로 포상 건수가 늘었지만 최근 들어서 그 규모가 원래대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현재 독립 유공 보훈 대상자를 비롯한 보훈 대상 중 고독사 고위험군은 1211명, 위험군 3049명, 의심군 1만1639명으로 나타났다. 고령인 데다 1인 가족도 많은 독립 유공 보훈 대상자는 고독사 위험도 높다.
현재 국회에는 독립 유공자법 개정안이 여러 건 올라와 있다. 독립 유공자 후손이 국가·지자체 의료 기관 등 공공 의료 기관에서도 의료비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또 고령인 독립 유공자 유족의 경제적 부담을 고려해 의료비 감면율(60%)을 높이는 내용의 개정안도 계류 중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은 “적극적으로 독립 유공자를 발굴하고 선정 기준도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며 “독립 유공자 후손의 고령화 추세까지 고려해서 의료·양로 분야의 복지 혜택부터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광복절 경축사에서 “생존 애국지사 분들께 각별한 예우를 다하고 독립 유공자 유족의 보상 범위도 더 넓히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