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 3년 뒤 치러진 총선에서 대패했다. 코로나19 같은 변수도 작용했지만, 자유한국당 내부부터가 탄핵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공천파동을 겪고 대패했다. 2017년 탄핵의 여파가 3년 뒤 총선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무방한 셈이다. 2028년 총선도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후 정확히 3년 후 치러진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후 최순실 특검과 적폐청산 수사 등이 이어졌는데, 지금의 상황은 그때보다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하지 않다. 무엇보다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3개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각 특검 수사의 휘발성도 최순실 특검이나 적폐청산보다 크다. 먼 얘기 같지만 지금의 상황이 3년 뒤 총선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단 얘기다. 조만간 치러질 국민의힘 전당대회나 내년의 지방선거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후폭풍의 사정권 안에 깊이 들어와 있다. 이 후폭풍이 총선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적·사법적으로 리스크를 털어내야 하는 것이 야권의 지상과제지만 상황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윤 전 대통령이 사법 절차에 사사건건 문제를 삼으며 불복으로 비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야권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으로는 찬탄과 반탄으로 나뉘어 내부총질을 해댈 가능성이 크며, 사법적으로는 수사 그리고 재판이 끝도 없이 늘어지면서 계속해서 여론에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계엄 이후 벌써 12번이나 수사기관의 출석, 조사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가장 최근 그를 소환했던 건 김건희특검이다. 정치브로커 명태균씨의 공천개입 의혹 수사의 일환이었지만, 윤 전 대통령은 건강상 이유를 내세우며 끝내 서울구치소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앞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경찰 수사 때는 불법수사를 이유로, 내란특검 때는 일신상의 이유를 들어 수사 과정마다 문제제기를 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이틀 연속 불출석한 그에게 김건희특검은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같은날 출범한 민주당 3대 특검 TF는 구치소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의 수사 불응을 막기에는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 반응이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 관련 재판이 수년간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윤 전 대통령 관련해서는 내란특검과 김건희특검, 채해병특검 등 총 3개의 특검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검법에 따라 내란특검과 김건희특검은 2차례 연장수사를 포함해 최대 120일(준비기간 20일 제외)간 수사를 할 수 있다. 채해병특검은 1회만 연장이 가능해, 준비기간을 제외하고 총 90일간 수사가 가능하다. 윤 전 대통령이 수사에 계속 불응할 경우 특검은 수사기간 연장을 할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기소 자체가 늦어지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 사건 수사는 물론이고 재판이 초장기전으로 흘러 ‘전직 대통령의 1심 재판 중 가장 길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5월 재판부는 연말까지 28차례의 공판기일을 지정했다. 8월부터는 25부(본안)와 35부(체포방해·직권남용 추가 사건)가 병행 심리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윤 전 대통령은 ‘월 3~4회’ 공판으로 오는 12월 기소 331일째를 맞을 예정이다. “올해 안에 결심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게 재판부의 공식 방침이었지만, 과거 재판 상황과 견주어보면 공판일자가 턱없이 모자라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주 4회’ 심리로 1년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8년 ‘주 1~2회’ 심리로 5개월 만에 1심 선고를 받았다. 게다가 최근 법원이 3주간 하계 휴정기를 가지면서 윤 전 대통령 재판도 ‘멈춤’ 상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 속도로는)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2026년 상반기까지 결론이 미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여기에 내란특검이 증인 72명을 추가 신청하면서 변수가 급증했다. 검찰이 기존에 신청한 38명을 합치면 증인만 110명에 달한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여전히 수사기관 조서의 증거 채택 여부에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증거 인부(認否)에 불응할 경우 관련 조서 작성자를 모두 증인으로 불러 신문해야 해, 공판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방대한 증거 목록과 최근 늘어난 증인신문 일정을 고려하면 재판 일정이 더 지체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피고인의 장기 불출석이 이어져 ‘궐석 재판’으로 전환되거나, 건강 사유가 인정될 경우 기일표 자체가 재조정될 수 있다. 특검이 ‘외환 혐의’를 추가해 수사 범위를 넓힌 것도 장기화 가능성을 높인다.
앞서의 법조계 관계자는 “결국 증인신문을 몇 명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증인이 110명에 달한다면 2년은 넘게 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사건도 1심 판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경우, 불구속 상태로 기소된 지 2년2개월 만에야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이른바 ‘대장동 본류’ 격인 김만배, 유동규, 남욱 등 개발 사업 민간업자들에 대한 재판의 경우에는 무려 4년 만에 1심 결론이 나왔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법원은 정당한 사유 없이 소환에 응하지 않는 피고인을 강제로 법원에 데려올 수 있다. 그러나 실제 물리력 행사는 일반 피고인에게도 어려운 형국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그동안 (구인하려는 물리적)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방안에 앉아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는 안 나가’가 끝이었다고 들었다”며 그 이유에 대해 “책임질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구인 시도를) 한다. 윤 전 대통령이 전례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억지로 끌어내면)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가만있겠나. 이번 강제구인 명령도 효력 없을 듯하다”고 했다.
교정당국, 尹 수감시설에 발도 못 들여
해당 구치소장과 교도관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또 다른 법무부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법 집행에 임하고,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인치에 협조하고 있을 입장으로서는 참 안타깝다”며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성실한 공무원들이 아픔을 겪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검사 등이 직접 해당 구치소로 간다고 해도 대면, 강제 인치 지휘 단계까지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법무부 장관 출신의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미결수이면서 동시에 수사까지 받은 피의자인데 일단 개호책임은 이제 교정 당국, 즉 교도관에게 있는 건 맞다. 그러나 형집행법상 자해를 한다든지 난동을 부린다든지 하는 경우만 강제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교도관들이 강제로 끌고 나와라 하는 요구는 맞지 않고 지난번 내란특검 때 안 나오고 세 번을 버텼지 않았나? 최근 구치소 측에서 ‘검사가 지휘를 해서 와서 설득을 하거나 여러 등등의 강제인치 조치를 한번 해봐라’는 공문을 보낸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검사 1명과 수사관 1명이 가려고 했는데 구속적부심을 청구하면서 무산이 됐었고 전격 기소로 갔었다. 그래서 본인이 버틴다면 현실적으로 몇 사람이 달라붙어서 들어서 끌고 온다는 것은 가상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는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소환 요구에 끝내 응하지 않는 배경에, 이미 크게 좁아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스스로 절감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특검 조사를 받은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측근들이 180도 입장을 바꾸면서, 각종 혐의를 부정해 온 윤 전 대통령의 논리가 무너졌다. 최근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이 특검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것에 대해 “내란특검이 됐든 김건희특검이 됐든 채해병특검이 됐든 수사에 응하지 않겠다고 이미 작심을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른바 문고리들 그리고 측근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다 입장을 180도 바꾸고 있다”며 “윤상현 의원도 전화 통화 한 적 없다고 했지만 다 인정을 하고 있고, 용산 대통령실에 있던 참모들도 채해병 사건 ‘VIP격노설’을 다 인정하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란특검에 가서도 어떻게 그걸 숨길 수가 있겠나”라며 “이런 상황에서 (특검에) 나가서 수사받아봤자 어떻게 변명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이 혐의에 대해 더 이상 방어 불가능한 상황이 된 만큼, 지지층 결집을 통한 ‘정치적 해법’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힘을 얻고 있다. 특검이 강제구인에 나설 경우 ‘끌려 나가는’ 모습을 연출하고자 버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법률위원장인 이용우 의원은 최근 이런 분석을 내놨다. “소위 말하는 ‘피해자 코스프레’이런 부분들을 지지층 등에게 보여주고 싶은 면이 있는 거 아닌가. 그거 말고는 설명되는 게 없다.” “특검이라는 게 제한된 시간 범위 내에서 수사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정치적 해결)까지 고려한 거 아닌가 싶다.” 한민수 의원 또한 “그나마 알량한 ‘윤 어게인’을 외치는 정말 소수의 극렬 지지층을 향해서 ‘나는 끝까지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알리바이를 남기려고 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국힘 내 친윤의 그늘
이런 상황들은 당장 국민의힘 전당대회와 2026년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2028년 총선까지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과 그 지지 세력과의 절연에 여전히 실패한 상태다. 국민의힘에 입당한 전한길씨는 최근 당대표 후보들에게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여기에 김문수·장동혁 후보가 “당연히 응하겠다”고 밝히자, 국민의힘 지도부는 사실상 친윤 충성 경쟁 국면에 들어갔다. 장 후보는 전씨를 포함해 보수 유튜버들이 주관하는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에게 듣는다’ 연합토론회에도 출연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김 후보도 출연을 고민 중이다.
지난 7월 14일에는 김건희특검의 수사선상에 오른 윤상현 의원이 주최한 행사에 송언석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와 현역의원 여럿이 참석했다. 이 행사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하며 ‘윤 어게인’을 외치고 있는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축사를 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당 지도부가 방향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에 비해 국민의힘은 내부 정보가 너무 없다. 국힘은 내부 당원 중 세력이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오히려 민주당이 더 잘 알고 있더라. 그러니 (윤 전 대통령의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책당협(책임당원협의회) 등은 당대표 후보들 중 ‘찐윤심’을 찾고 지지하려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언더찐윤’이라는 단어도 등장했다. 언더찐윤은 TK·PK·강원 지역에 집중된 20~30명의 중진 의원들로, 윤재옥·이만희·윤한홍·정점식 등 3선 이상 의원이면서도 대중들은 잘 모르는 인물을 뜻한다. 공식 석상보다는 지역구 활동에 주력하며 언론 노출은 피하고 있으나, 이들이 당내 주요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당내 ‘현역·의총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는 여전히 당내 친윤이 장악하고 있다. 대선 패배 직후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에서도 친윤 송언석 후보가 전체 107표 중 과반이 넘는 60표를 얻어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대선 전 열린 의총에서 대선후보 교체 절차 착수에 찬성한 표 역시 60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