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초대 주중(駐中)대사 인선에 외교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른 장관급 ‘4강(미국·중국·일본·러시아) 대사’와 달리 주중대사는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의 여파로 인한 공백사태가 장기화되면서다. 특히 지난 윤석열 정부 때 정재호 전 대사 후임으로 내정된 김대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아그레망(주재국 동의)’까지 받았음에도 비상계엄 사태로 윤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베이징에 부임조차 해보지 못하고 임명절차가 중단됐다.
결국 정재호 전 대사는 한 차례 이임식을 취소하고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지난 1월 27일까지 베이징에 주재했고, 이임한 이후 주중대사관은 2인자인 김한규 정무공사 체제로 거의 반년 가까이 굴러가는 실정이다. 주중대사관이 중국 및 북한 관련 동향파악에 있어 핵심 공관인 점을 감안하면 파행운영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셈이다.
공산주의 국가의 특성상 권부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힘든 중국에 파견하는 대사는 대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나 중량급 정치인들이 선호됐다.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교류가 급증한 2001년 이후부터는 주미대사 못지않게 중량급 인사들이 주중대사로 파견됐다.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류우익 전 대사, 박근혜 정부 때 국방부 장관과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장수 전 대사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정부 때 노영민 전 대사는 주중대사를 지낸 후 대통령 비서실장에 발탁됐고, 후임인 장하성 전 대사는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있다가 주중대사로 나갔다. 아그레망 절차까지 진행된 김대기 전 실장 역시 윤석열 정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고 주중대사로 낙점된 경우다. 아울러 이재명 정부 초대 주중대사는 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첫 정상회담을 성사시켜야 하는 막중한 과제도 안고 있다.
초대 주중대사 이광재 하마평
현재 중량급 여권 정치인 중 주중대사 1순위에 거론되는 인사는 이광재 전 강원지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광재 전 지사는 강원지사와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지난 총선 때 경기도 성남 분당갑에 출마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 맞붙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특히 2011년 불법정치자금 수수로 인해 강원지사에서 물러나 야인(野人)으로 있을 때는 베이징 칭화대 공공관리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1년여 동안 머물기도 했다. 이 전 지사는 이후 베이징대 중문과 박사 출신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와 함께 ‘중국에게 묻다’란 책을 집필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외교안보라인을 독식한 ‘연정라인’ 좌장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직접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다만 집권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에는 중국 관련 경력을 갖춘 인사가 적지 않아 초대 주중대사 인선을 두고 신경전이 치열하다는 후문도 들린다.
일단 김민석 국무총리(4선)가 칭화대 법학석사 출신이고, 민주당 박선원 의원(초선)은 문재인 정부 때 특임공관장인 주상하이 총영사를 지냈다. 이 밖에 김영호 의원(3선)은 베이징대 국제학부 출신이고, 박정 의원(3선)은 중국 우한대에서 역사학 박사를 받았다. 홍기원 의원(재선)은 주중대사관 참사관과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경무대)에서 방문학자를 지냈고, 오기형 의원(재선)은 법무법인 태평양 상하이사무소 대표 변호사, 이병진 의원(초선)도 베이징대 법학 박사 출신으로 평택대 중국학과 교수를 지냈다.
중량급 정치인 출신 무용론도
중량급 정치인을 주중대사로 파견하는 데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북한 문제나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이 크다고는 하지만, 정치인 출신 주중대사들이 이름값에 걸맞은 성과는 냈는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정부 때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장수 전 대사를 중국에 보낸 이후에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로 한·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고, 문재인 정부 때도 3선 의원 출신 노영민 전 대사,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의 장하성 전 대사 등 중량급 인사를 연이어 주중대사에 임명했으나 되레 중국에 저자세로 끌려다녔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노영민 전 대사는 부임 초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임장 제정식 때 역사적 맥락에서 ‘중국 황제에 영원히 충성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절필동(萬折必東)’이란 사자성어를 방명록에 한자로 써서 임기 초부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었다. 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방중(3차) 때 자리를 비우고 지역구 행사를 찾는 등 잦은 구설에 올랐다.
노영민 전 대사의 후임으로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고 중국으로 부임한 장하성 전 대사 역시 코로나19 초창기 한·중 관계를 의식해 ‘중국인 입국금지’ 등의 선제적 조치를 단행하지 못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지난 윤석열 정부에서는 윤 전 대통령과 충암고 동기동창인 학자 출신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를 주중대사로 파견했으나, 베이징 부임길부터 ‘공군 2호기’를 내어달라는 요청으로 역시 논란을 초래했고, 비(非)외교부 출신 주재관 상대 ‘갑질’ 논란이 벌어지는 등 공관 장악에도 문제를 드러냈다. 특히 윤 전 대통령 탄핵사태 와중에 후임 대사가 정해지기도 전에 베이징을 떠난 것은 책임감 문제로 지적된다.
이에 정통 외교관 출신으로 주중대사 물망에 오르는 사람은 문재인 정부 때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노규덕 전 본부장(외시 21회)과 김승호 전 상하이 총영사(외시 18회) 등이 꼽힌다. 이들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 국익중심 실용외교위원회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진아 외교부 2차관 등과 함께 손발을 맞춘 경력이 있다.
임성남 전 외교부 1차관(외시 14회), 신봉길 한국외교협회장(외시 12회)도 주중대사 물망에 거론된다. 조병제 국립외교원장(외시 15회)과 함께 주미대사로도 거론되는 임성남 전 외교부 1차관은 주중대사관 공사를 거쳐,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주영대사를 지냈고, 2022년 대선 때 이재명 캠프에 몸을 담았다. 신봉길 외교협회장은 한·중·일 협력사무국 초대 사무총장으로 문재인 정부 때 주(駐)인도대사를 지냈다. 특히 신봉길 외교협회장은 황병태 전 주중대사의 사위인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재명 정부의 전례없는 외교부 기수 파괴 인사도 정통 외교관 주중대사론에 힘을 싣는다. 이재명 정부 초대 외교부 1차관에 대사 경력이 없는 박윤주 전 주아세안대표부 공사(외시 29회)를 기용하면서다. 외교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조현 후보자는 조태열 현 외교부 장관,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같은 외시 13회인데, 장관과 1차관 사이에 무려 16회의 기수 공백이 발생한 것. 심지어 다자외교를 주관하는 외교부 2차관에는 1979년생인 학자 출신의 김진아 한국외대 교수를 임명했다. 전직 주중 공관의 한 관계자는 “외교부는 태생적으로 보수적인 조직”이라며 “기수파괴 인사로 재외공관장으로 나가기를 희망하는 외교관들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