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무 나가지 않았나? 손해배상소송을 금지한다든지 하청직원들의 원청업체와의 직접 교섭은 몰라도 계약조건을 뒤집는 걸 허용하는 법안은 신뢰 자체를 무너뜨리는 일인데, 일단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그럼에도 우리 목소리가 반영되기 힘든 구조니까….”(민주노총 소속 공기업 전직 노조위원장)
“민주당 내에서도 해당 법안과 관련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있는 상황이다. 간사님을 포함해 당내에서는 양측의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모두 듣고 결정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실 관계자)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을 포함한 43인은 지난 6월 23일 이른바 노동조합법 개정안으로 불리는 노란봉투법의 새로운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과거에 비해 수위를 크게 높였다. 개정안은 △사용자 범위 확장 △쟁의행위 대상 확대 △손해배상청구를 골자로 한다. 강력해진 만큼 여기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을 여당이나 민주노총 내부에서도 우려하고 있다. 여권 내에서 노란봉투법 속도조절론을 제기하는 이유다. 민주노총은 이에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2003년 노동계의 지지를 등에 업고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첫해 화물노조 파업으로 참여정부의 국정동력이 떨어진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쟁의행위 입구 넓혀줘
흔히 노란봉투법은 쟁의행위를 하는 노동자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금지하는 법으로 알려져 있다. 하청업체 직원들이 원청업체와 직접 교섭하게끔 하는 내용도 낯설지 않다. 한 단계 깊이 들어가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근로조건의 결정’과 관련한 사항이 대표적이다. 현행법은 근로조건 결정에 대해 차이가 발생할 시 쟁의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는데, 이번 개정안에 ‘결정’이라는 단어를 제외시켰다. 향후 결정해야 할 근로조건이 아닌 기존에 합의된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쟁의가 가능하게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바꿔 말하면 이미 노사가 합의한 근로조건에 대해서도 노조가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법률적 근거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이런 근거는 노동자 쟁의의 명분과 범위가 넓어졌음을 뜻한다. 임금협상과 같은 문제 외에도 이미 합의돼서 시행하고 있는 근로 여건이나 개인적인 사유로도 쟁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법무법인 주원의 정재욱 파트너변호사는 이에 대해 “단순 근로 조건에 대해서도 파업 등 행위가 가능해지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역풍을 우려하는 이유다.
노란봉투법이 나온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노동시장 특유의 상황 때문이다. 정규직 근로자의 해고가 법적으로 까다롭게 규정되어 있는 탓에, 기업들은 직접 고용보다는 하청이나 도급 형태로 인력을 충원하는 전략을 자주 활용해왔다. 이로 인해 생산 현장에서는 파견법이 금지하는 생산직 직접 파견을 우회하기 위한 ‘위장 도급’이 만연해졌고, 이는 불법 파견으로 간주돼 법적 책임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로 발전했다. 이런 구조적 문제 속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실질적 협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하청업체 노조는 원청 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개념을 확장할 것을 요구하게 됐고, 이 같은 요구가 법적 개정을 촉구하는 노란봉투법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노란봉투법의 핵심 중 하나는 기업이 노동조합에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이미 노동조합에 회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판례가 나와 있다. 2023년 현대차 파업 사태에 대해 대법원은 기업이 입은 손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노조가 아니라 각 조합원 개인에 대해 묻도록 최종 판결을 내렸다. 현행 법 체계에서도 이미 노조 전체가 아니라 불법파업에 참여한 조합원 각 개인이 행위의 수위와 기여도에 따라 차별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使 “노조의 불법 파업이 정당화될 것”
기존 판례가 손해배상에 대한 노동자들의 출구를 열어준 상황이라면 노란봉투법은 쟁의행위에 대한 입구를 넓힌다고 볼 수 있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기업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원청 기업 입장에서는 불법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부터 행위자별로 개별화해야 하고, 배상 청구 과정이 길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폭력사태가 발생할 시 기업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개인의 행위를 일일이 입증해야 하는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대기업 노조 등이 인원을 동원해 물리력을 행사할 경우 사측이 별도의 인력을 동원해 이를 처음부터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 이 때문에 경제단체와 기업들은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한 사실상의 면죄부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이는 쟁의행위를 사실상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법조계에서도 쟁의 과정에서 개별 노동자들 각각의 책임 입증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업의 교섭력과 대응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킬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하청업체의 파업을 겪은 한 기업 임원은 “파업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파손했는지 일일이 입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기업은 불법 파업에 대응할 방법 자체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노조의 사업장 불법 점거 행위가 정당화될 가능성까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발의된 새 노조법 개정안은 기존의 발의안들보다 요구의 수위가 올라갔다. ‘노조를 조직하거나 노조에 가입한 자도 근로자로 추정한다’는 조항도 새로 추가됐다. 근로계약 여부에 국한되지 않고 근로자 범위를 넓게 규정한 것이다. 또 ‘기업’ 위치에 해당하는 ‘사용자’에 대한 개념도 확장했다. 기존 법안에서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볼 수 있다고 규정한 바 있다. 새 개정안에는 여기에 ‘명칭에 관계없이 원사업주가 자신의 업무를 다른 사업주에게 맡기고, 자신의 사업장에서 해당 업무를 이행하도록 하는 경우’ 조항을 추가했다. 원청기업이 단순히 업무를 위탁한 경우에도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결과적으로 원청은 물론 계열사나 모회사 등 수많은 관련 기업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업 등 쟁의행위의 조건을 명시하는 항목도 추가됐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기존 법에서는 ‘근로조건의 결정’ 사안에 대해 차이가 발생할 시 쟁의가 가능하도록 규정했는데, 이번 개정안에는 ‘결정’이라는 단어를 제외했다. 손해배상과 관련해서도 다수 조항이 추가됐다. 기존 노란봉투법은 사용자가 조합원별 귀책에 따라 개별적으로 청구 범위를 정하도록 명시했었다. 새 법안은 이에 더해 ‘노조의 의사 결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노조와 근로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청구 불가’ ‘노무 제공 거부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불가’ ‘노조 존립이 불가능할 때 손해배상 청구 불가’ 등 제한 규정이 추가됐다.
재계 ‘사용자 범위 확대’에 큰 우려
이 같은 변화에 경영계는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우려가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특히 개정안 내용 중 ‘사용자 범위 확대’에 대한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산업 구조상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원청과 하청 관계로 맺어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이 통과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에서 일어나는 모든 근로 문제에 대해 감당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소속 한 관계자는 “‘사용자 범위 확대’ ‘손해배상 책임 제한’ 관련 내용 중 전자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며 “후자는 법원에서의 판결을 통해 결과가 매번 달라질 수 있고 논리적으로 해결 가능성 여지가 있지만, 전자는 산업계 부담이 일방적으로 커진다”고 말했다. 또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데도 교섭을 해야 한다는 것은 법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안 맞는다고 보고 있다”며 “원청에 해당하는 기업들이 하청업체의 쟁의행위까지 커버해야 할 텐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지배 결정’ 범위를 누가 정할지도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경제단체 소속 한 임원 역시 ‘사용자 범위 확대’와 관련해, “노사 관계 근간을 흔들고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인해 현장에서 혼란이 커질 것”이라며 “사실상 노동자들의 불법 파업과 단체행위를 독려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거나 보유하면 사용자’라는 명목으로 바뀌는 부분이 특히 우려된다”며 “기업들은 1년 내내 교섭만 하게 될 것이고, 노동법상 근로계약 관계가 아닌 집단과도 단체교섭으로 인해 생산 감소가 막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에서도 더 강력해진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계 노조 소속 한 관계자는 “노동계에서는 ‘이중 구조 개선’이라면서 원청의 일방적 임금 산정이 불합리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이 행위가 정당성을 얻게 되면 하청업체 경영진은 ‘바지사장’이 돼버린다”고 말했다. ‘손해배상 청구 제한’과 관련해서는 “사업장에서 노조가 손해를 입는 경우의 98% 이상이 불법 점거로 인해 발생한다”며 “노란봉투법이 통과하면 사업장 점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과정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어 “대체 어느 나라에서 불법 점거를 독려하는 법을 만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비노조 근로자 보호부터 신경써야”
전문가들은 이번 법안이 통과되면 조선·철강·자동차 업계 등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업 하나당 수십 개의 하청업체 구조를 토대로 상품을 생산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하청업체들의 원청에 대한 교섭권이 확보될 경우 해당 기업들이 1년 내내 교섭만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이와 맞닿아 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노사 관계 때문에 기업들의 피로도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기업들은 생산 라인을 해외로 돌려서 리스크를 낮추려고 할 것”이라며 “이는 결국 실업률 상승과 국내 경제 위축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고 현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 성장’과는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노조의 불법적 해사(害社)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에도 실질적 손배 청구가 쉽지 않게 되는 점이 걱정된다”며 “협력사의 교섭에도 원청이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기업 경영 본연의 업무에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법안 발의와 개정안이 기업을 포함한 사용자 입장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법무법인 주원 정재욱 변호사는 “사용자 범위 확대에 따른 교섭 대상 증가와 손해배상 청구 권한이 제한되는 상황 등은 일종의 독소조항”이라며 “이번 개정안에서 추가 적용되는 부분들도 그럴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노조는 법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파업을 통해 해결하려는, 사적 구제의 남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말했다. 기존 법에 따르면 쟁의행위 조건은 임금체불 등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사안이 불일치할 경우였는데, 이번 개정안에는 ‘결정’이라는 단어가 제외됐다. 단순 근로 조건에 대해서도 파업 등 행위가 가능해지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특히 이번 법안에 대해 정 변호사는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권리를 강화하지만, 노조가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보호는 약화시키는 한계를 갖고 있다”며 “전체 근로자 집단 중 노조 성립률은 13%에 불과하고 실제로 갖가지 어려움을 겪는 대다수의 비노조 근로자들,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에 대한 대응책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與 “과정이 어떻든 결국 통과될 것”
이러한 논란과 후폭풍에 대한 염려 때문인지 정부는 상법 개정안이나 방송3법과 달리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고심하는 모양새다. 개정안을 발의한 여당 소속 위원들 사이에서는 야당 시절 이전 정부에서 보였던 ‘강행 처리’보다는 ‘속도조절’의 기조를 보이고 있다. 대표발의자 중 한 명인 이용우 의원 측은 “2024년에 발의된 당시의 노조법 개정안이 현 민주당의 당론 그대로”라며 “법안이 통과하려면 해당 당론은 어느 정도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고, 최근 발의된 내용에서 더 수위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용노동부 장관 청문회 이후 어느 정도 각 부처별로 협의가 진행되어야 안전하게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7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지, 그 이후 정기국회를 거칠지는 아직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속도조절 기조를 내비친 문진석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측 역시 “현재 당과 환노위(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은 합리적인 법안 처리를 위해 머리를 쥐어뜯을 정도로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는 “노조법 개정안의 수위 조절 때문에 법안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며 “현재 법안 내용을 약하게 바꾸면 노동계가 반발하고, 강하게 하면 재계의 반발이 커지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이어 그는 “과정이 어떻든 결국 법안은 통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책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 사안에 대한 신중한 접근은 물론, 원점부터 다시 입법 논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변호사 출신의 한 정치평론가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실태 조사 등이 결여된 입법은 노사 관계 분열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노조법을 개정하더라도 법질서에 맞게, 노사 양측의 요구를 최대한 타협하는 방향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노조법 2조와 3조는 각각의 취지와 목적이 다르므로 개별적으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며 “2조 개정안은 현행법상의 교섭 범위, 쟁의 명분, 파업 정당성을 무시하는 방향이므로 헌법상의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속도조절을 거듭하더라도 결국에는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고려대학교 노동연구소 김성희 교수는 “노란봉투법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필수적 입법”이라며 “법안 시행의 속도와 방법을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 역시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들은 이미 다른 산업 정책을 통해 많은 지원을 받고 있으므로 노동자들과 관련한 입법적 조치가 이제는 따라와야 할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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