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국민의힘 당시 대선 후보(왼쪽)가 지난 5월 26일 서울 도봉구 방학사거리 인근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손을 맞잡고 있다. photo 뉴시스

2016년 20대 국회 개원 때 새누리당에서 일을 시작했던 한 9년차 국민의힘 의원실 보좌진은 지금의 당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21대 총선 때 이렇게까지 망할 수 있을까 싶었다. 바닥을 찍었으니 앞으로는 반등할 일만 남았겠지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하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어디가 바닥인지도 모르겠다.”

새누리당에서 미래통합당, 국민의힘으로 이어져온 보수 정당은 20대부터 22대 총선까지 내리 참패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10년도 안 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위헌정당해산 심판 청구’ 얘기가 나올 정도로 보수 정당은 위기에 봉착했지만, 국민의힘이 김문수 전 대선 후보의 40% 득표율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평가하며 위안삼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월 16일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 결과를 두고 국민의힘이 개혁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줬다는 평가가 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송언석(3선·경북 김천) 의원은 총투표수 106표 가운데 60표를 얻어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김성원(3선·경기 동두천) 의원과 이헌승(4선·부산 부산진구) 의원은 각각 30표, 16표를 득표했다. 이 의원이 송 의원의 표를 갉아먹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지난해 12월 2파전으로 치러진 원내대표 선거 결과와 비교할 때 친윤계와 비윤(비윤석열)계의 비율은 달라진 바가 없다. 당시 권성동(5선·강원 강릉) 의원은 72표, 김태호(4선·경남 양산을) 의원은 34표를 얻었다.

이를 두고 신지호 국민의힘 전략기획부총장은 “윤 전 대통령은 정치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친윤은 건재하다”고 표현했다. 양향자 전 공동선대위원장은 “원내대표 경선은 반혁신·반쇄신 선거”라며 “이제 우리 당은 계엄의 늪으로, 다시 탄핵의 강으로, 도로 경북당으로 퇴행했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탈당했는데 친윤은 그대로인 이유가 무엇일까. 한 전직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일 때는 친윤들의 이해관계가 거기 있으니까 모인 것이지 구심점이 없어졌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좇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유리하다 싶으면 거기로 다 모인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특히 영남권 의원들은 공천만 받으면 바로 당선되니까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오히려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그런 사람들을 뽑아주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배신자로 낙인찍는 유권자들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구심점 사라진 친윤 건재한 이유

한 국민의힘 TK 지역구 의원은 “TK는 공천만 되면 굉장히 쉬운 곳 아니냐고 하는데, 당에서 최종 후보가 되기까지 굉장히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한다”며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내놓은 5대 혁신안은 ‘반성안’으로, 앞으로 어떻게 당이 쇄신하고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의원은 “밖에서 자꾸 친윤이니 친한이니 나누며 계파 갈등으로 몰아가다 보니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려는 의원들이 위축돼서 못 하는 경우도 많다”며 “지금처럼 시간만 보내면 소모전만 이어질 뿐이니 최대한 빨리 전당대회를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당대표 선거로 모아지고 있다. 대선 때부터 당원 가입을 독려했던 한 전 대표와 당 대선 후보로 이재명 대통령과 겨뤘던 김문수 전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얼굴 마담이 없는 친윤계가 한 전 대표를 견제하기 위해 김문수 전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김 전 후보는 대선 후보였고 40%를 득표했다. 김 전 후보는 당내 세력이 없다. 이 같은 서로에 대한 필요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든다. 지금이 서로에게 상한가이다.”

대선 때 김문수 캠프에서 활동했던 핵심 관계자는 “김문수 전 후보를 지지했던 현역 의원 단체 채팅방이 있는데,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 중 송 의원만 들어와 있다”며 “송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되면서 김 전 후보가 당대표 선거에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전체 지역구 의석(90석) 중 영남권 의석은 59석으로 약 66%를 차지한다. TK 지역구 의원은 25명, 부·울·경(PK) 지역구 의원은 34명이다. 장우영 교수는 “지역구가 수도권인 김성원 의원의 득표율이 얼마나 되느냐가 이번 원대대표 선거의 관전 포인트였다”라며 “송 의원과 김 의원의 득표율이 6 대 4 정도로 나온다면 비영남권은 한동훈으로 응집됐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남권을 비영남권이 포위하는 구조가 형성되면 당대표 선거는 한 전 대표에게 유리한 흐름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6월 14일부터 16일까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8명을 대상으로 ‘차기 당대표 적임자’를 물은 결과, 김 전 후보(20.3%)와 한 전 대표(16.3%)는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안철수 의원(9.6%),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6.1%), 나경원 의원(5.3%) 순으로 뒤를 이었다.(유선 전화면접 4.8%, 무선 ARS 95.2% 방식으로 실시됐으며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한편 김 전 후보와 한 전 대표가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고, 젊은 정치인 등의 제3자가 당대표로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에 당대표가 되면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쥐게 되는데, 지금의 당 상황으로는 지선에서 패배할 확률이 높다. 당대표가 그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1년짜리 당대표’의 득실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이에 친한계 인사들은 한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두고 ‘신중론’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윤·친한 휴전 가능성?

일각에서는 한 전 대표가 내년 지선과 함께 치러지는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 출범 및 내각 인선에 따라 현역 국회의원이 자리를 비운 지역구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한다면 한 전 대표가 이번 전당대회에 나가서 당권을 잡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이 같은 시나리오를 “한 전 대표만 살고 친한계는 죽는 방식”이라며 “핵심은 총선 공천권”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정치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내년 지선은 의원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는 2028년 총선을 앞두고 당권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한 전 대표 입장에선 총선과 멀리 떨어진 때에 당대표를 했다가 지선 패배 책임을 명분으로 물러나라고 한다면 위험하지 않겠나. 친윤계 입장에선 자신들을 한 번 배신한 김문수 전 대선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 불안할 것이다. 이에 아예 젊은 정치인으로 포장지를 바꿔서 분위기를 쇄신하고 본격적인 당권 경쟁은 지선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 지선까지 일종의 휴전 상태로 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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