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왼쪽)가 지난 2월 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선물받은 사진집을 들어 보이고 있다. photo 뉴시스·AP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야스쿠니 신사 공식 방문.’

가까운 시일 내 목격할지도 모를 도쿄발 브레이킹 뉴스다. 트럼프가 방문한다면 일본 총리가 함께 가는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의 야스쿠니 방문 계획은 20여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일본인 친구로부터 최근 들었다. 그는 일본 신문사 워싱턴특파원 출신으로 미·일 외교 관련 이슈에 밝다. 방문의 내용이 단순 현장방문이 될지, 공물 봉납이나 참배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방문 여부가 확실하지도 않다. 그러나 여러 상황과 환경을 감안할 때, 트럼프의 야스쿠니 방문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일본인 친구는 분석한다.

사실 야스쿠니 문제는 1990년대 초 중국 장쩌민(江澤民) 정부가 반일(反日) 아이콘으로 격상시킨 이슈다. 당시 한국 정부도 중국 측 입장에 동의하면서 이후 야스쿠니는 일본 제국주의와 우익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보면 트럼프의 야스쿠니 참배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일 수 있다. 반면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엄청난 뉴스가 될 것이다. 멀리는 청일전쟁 이후 러일전쟁과 중일전쟁 나아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미국이 일종의 ‘면죄부’를 주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야스쿠니 방문이 실현될 경우 한국과 중국의 야스쿠니 문제에 대한 입장은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으면서 동아시아 내부 역사문제로 취급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방문이 실현된다면 일본의 입장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일본 현역 총리를 비롯한 각료와 입법·사법·행정 나아가 교육계의 야스쿠니 참배가 당연시, 아니 의무화될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이 대규모 반일 시위를 벌여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을 수 있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일본은 더 이상 한국과 중국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야스쿠니 참배 일상화가 시작될 것이다.

“마침내 일본 우익이 트럼프를 이용하는가?” 트럼프가 야스쿠니를 방문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처음 접한 필자가 던진 질문이다. 일본인 친구는 고개를 저으면서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정반대’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 자신이 야스쿠니 방문을 희망한다는 점에 있다. 내 생각이지만, 트럼프의 야스쿠니 방문을 반기는 일본인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반갑지 않은 행보다. 국방비도 왕창 올라가겠지만, 일본의 재무장이 어느 선까지 갈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트럼프가 먼저 야스쿠니 참배를 원한다면 이건 완전히 다른 성격의 문제가 된다. 평화헌법과 전쟁 트라우마에 발목 잡혀 있던 일본이 재무장을 촉진할 발판으로서의 야스쿠니 방문이란 얘기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원폭 기념관 방문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본도 원했던 것이 미국과 세계 지도자의 히로시마 방문이다. 야스쿠니는 히로시마가 아니다. 우물 안 우익 아마추어들이야 박수를 치면서 환호할 것이다. 일단 재무장으로 갈 경우 일본 외교도 강경노선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노리는 것은 트럼프 2.0에 걸맞은 일본 2.0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G7 초청받은 李

이재명 대통령의 캐나다 G7 방문이 확정됐다. 여러가지로 불안하고 불투명한 상태에서 강대국 외교를 통한 대한민국 재건을 기대해본다. 출발이 좋다. 현재 글로벌 차원의 다자간 조직 가운데 G7에 준할 연대 조직 자금을 가진 곳도 없다. 국제연합은 껍데기만 남은 상태고, 세계무역기구(WTO), 세계보건기구(WHO)는 기능정지 상태다. 한때 각광받던 G20이나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이유는 상호 간 불신에 있다. 미국의 참가 의지도 없지만, 회원국들 사이의 이견으로 공동성명서 하나 만들기 어렵다. G7은 그나마 회원국 간의 약속과 신의로 맺어진 세계정치의 코어에 해당한다. 옵저버 자격이라지만, 한국이 G7에 초청받은 것은 천우신조의 기회다.

한국 입장에서 나쁜 뉴스도 있다. 오는 9월 2일 베이징에서 열릴 중국의 항일 반(反)파시스트 전승 80돌 기념식이다. 아마 거창한 열병식과 함께 시진핑 국가주석과 가까운 정상들이 천안문광장 망루에 올라갈 것이다. 과연 이 대통령은 천안문 망루에 올라설까? 사실 이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10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참석한 곳인데 못 갈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할 듯하다.

2015년 9월 2일의 반파시스트 전승 70돌 기념식을 기억할 것이다. 세계 독재자들 사이에 끼어 박근혜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서 중국군에게 경의를 표했던 날이다. 망루외교의 결과는 무엇인가? 박 전 대통령은 한때 ‘퍄오다제(朴大姐·박근혜 누님)’라 불렸던 ‘중국 인민’의 친구이기도 했다. 중국어도 능통하고 중국 시도 읊으며 친중정책에 올인했다. 그러나 결론은 ‘팽(烹)’이다. 관심 속에서 사라지면서 버려졌다는 의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중국과 틀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중국 공산당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북한이 핵개발로 나서는 판인데 무대책으로 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진핑이 불만이 있다면 한국이 아니라 핵 장난을 하는 김정은을 타깃으로 해야 한다. 사드는 표면적 이유일 뿐, 한·중 불협화음은 망루외교 이전부터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을 뿐이다. 공산 중국과 자유 한국은 애초부터 물과 불의 관계다. 애초부터 중국은 북한 편이다. 이념도 다르고 한국이 미국과 동맹이란 점에서 결론은 ‘항상’ 파국이다.

6월 15일부터 3일간 열릴 G7 의제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사회와 공동체 보호, 둘째 디지털 시대 확립과 에너지 안전보장, 셋째 미래의 공고한 파트너십 확립.

필자는 이번 의제가 1975년 G7 출범 이래 가장 어정쩡한 주제라고 느껴진다. 이런저런 수식어로 채워져 있지만, 사실상 올해 G7의 실제 핵심주제는 트럼프 관세문제다. 이미 협상을 끝낸 영국을 제외한 참가국 모두가 관세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캐나다 G7은 그 같은 당면과제 논의의 장이 될 것이다.

당연하지만 참가국 정상 모두 트럼프와의 1대 1 협상에 목을 맬 것이다. 트럼프 2.0 시대의 국제정치 관점에서 볼 때 친미는 곧 반중으로 표현할 수 있다. 군사안보 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 반중정책이다. 이념이나 고집으로 세상을 보면 눈앞에 드러난 사실도 부정하고, 멀리하게 된다. 리버럴 미디어의 반트럼프 보도로 트럼프가 세계를 향한 관세전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같이 착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트럼프의 말 한마디에 전 세계가 들썩인다.

한반도도 마찬가지다. 시진핑이 한국을 맹공격해도 한반도 운명과 무관하다. 트럼프는 다르다. 한반도 전체를 대재앙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인물이 트럼프다. ‘맛이 간 꼰대’라는 듯 트럼프를 공격해도 이는 4년마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미국민에게나 어울릴 말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나라의 운명을 뒤흔들 저승사자’라 볼 수도 있다. 싫고 좋고와 무관하다.

2025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반중이다. 반중이란 키워드 없이는 글로벌 정세를 이해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미국 우선주의로 간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을 무작정 내버려두면서 아메리카 퍼스트만 외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당연시하던 부분들이 중국에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과 적당한 타협을 통해 공생할 것이란 생각이 한국 내에서 일고 있다. 너무도 순진하고 위험하다. 멀리로는 17세기 명청(明淸)전쟁 이래, 청일전쟁, 러일전쟁 심지어 미·일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지식인은 대부분 오판했다. 투철한 과거지향적 쇄국정신으로 인해 누가 이기고 질지에 대한 기본적인 판단조차 못 내린다.

1930년대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이 동맹을 맺었지만, 미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나서지 않았다. 평화론자들이 나서 전쟁 확산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유럽 하나만으로도 휘청거리는 상황에서, 일본과 전쟁에 나설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여론이 미국을 지배했다. 일본의 야욕이 중국 전체로 확산되고 동남아시아까지 넘나들 때도, 경제제재로만 갈 뿐 전쟁은 부정했다.

반전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사건에서 시작됐다. 일본 수뇌부는 미국이 전쟁을 원치 않을 것이란 확신하에 진주만을 공격했다. 일본은 기습공격에 놀란 미국이 적당한 선에서 휴전에 들어가면, 중국과 아시아를 적당히 나눠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줄곧 확전론에 반대하던 미국이었지만, 막상 진주만 기습이 벌어지자 돌변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대일 전면전 선포가 이뤄졌다. 단기간이 아닌, 일본이 망하는 마지막 날까지 싸우겠다는 결의가 미국 전역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일본이 내심 믿었던, 아시아 전쟁 불개입 평화론자들의 목소리는 한순간 사라진다.

한반도 운명 쥔 트럼프

2025년 상황도 1941년 당시와 똑같다. 평화론자들이 득세하고 미·중 협상을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미국을 종이호랑이로 보면서 결국 중국이 이길 것이란 얘기가 곳곳에 넘실댄다. 한국에서 접하는 트럼프와 미국은 500년 쇄국 조선 역사 속의 국제정세관과 너무도 닮아 있다. 미국의 압승은 어렵다 해도, 중국의 승리는 더더욱 불가능하다.

올해 G7은 관세협상과 반중전선의 연장선에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G7 참가국 가운데 가장 불투명한 위치에 서 있다. 천안문 망루 행사 참가 문제에서 보듯, G7 참가국 가운데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가 한국이다. 미국과의 관세협상도 G7 참가국 가운데 가장 늦다. 이 대통령은 관세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공동이익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약탈’ 협상이 될 것이란 도전적 단어도 던졌다. 관세협상에 임하는 나라의 성공과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내자는 것이 이 대통령의 생각인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늦어질 경우 한층 더 큰 피해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만 한다. 트럼프가 대중 관세협상에 만족하지 못할 경우 만만한 나라에 분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만만한 나라 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봐야 한다.

애초부터 트럼프 관세협상의 최종 타깃은 중국이다. 지난해 3000억달러에 달했던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뿐 아니라, 중국 경제 전체를 미국 이하로 떨어뜨리자는 것이 트럼프의 생각이다. 따라서 한국이나 일본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지난 6월 초까지의 상황이었지만, 원래 일본은 G7 회의기간 도중 관세협상의 큰그림에 합의한 뒤, 곧바로 미국에 가서 최종합의서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변수가 돌발적으로 튀어나오면서 미·일 관세협상이 뒤로 밀리고 있다. 런던에서 미·중 제2차 관세협상이 6월 11일 끝났다. 희귀자원 수출재개와 22만 중국 유학생 미국 비자허가가 결론이다. 미중이 윈-윈한 것으로 보이지만, 눈앞의 현안 처리일 뿐 관세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미국 언론들은 희토류 문제가 재발할 것이라 보도했다. 아직 미중 관세협상의 갈 길이 멀고도 멀다.

미·일 관세협상의 교훈

미·중 관세협상이 시작되면서 미·일 관세협상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일본은 자동차 관세 25% 폐지가 제1 조건이다. 제로는 아니더라도 영국처럼 10% 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트럼프에게 자동차 관세는 아메리카 퍼스트를 위한 핵심요소다. 미국 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외국 자동차 가격을 터무니없이 올려야만 한다.

미·중 관세협상도 있지만, 자동차 문제로 꼼짝달싹 못하는 것이 일본이다. 과연 어떻게 난국을 뚫고 나가고 있을까? 일본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 한마디에 답이 있다. “시련이야말로 찬스다.” 놀랍게도 현재 일본이 내세우는 최대의 협상카드는 중국발 반사이익이다. 미국을 곤란하게 만드는 중국을 일본이 처리하겠다는 것이 미·일 관세협상에서의 주된 카드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희귀자원 미·일 공동개발과 서플라이 체인 결성.

둘째 중국에 의한 미국 국채 대량방출 시 협력.

셋째 중국 수출이 금지된 반도체 전면수입.

중국 문제 ‘해결사’라고나 할까? 한국 미디어를 보면 중국의 희토류 협상카드 위력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지금 당장은 힘을 발휘하겠지만, 길어야 3년 뒤 상황은 반전될 것이다. 일본이 대체자원을 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개발된 것도 있지만,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가격을 낮춘 뒤 중국을 향한 비수로 변할 것이다. 희토류 가치 자체를 떨어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중국산 희토류 사용 제품의 전면 수입금지도 가능하다. 중국이 미국 공격용으로 사용한 카드를 주워 담아, 다시 미·일 관세협상 카드로 쓴다는 것이 일본 측 전략이다.

한·미 관세협상은 한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중국과 일본의 협상이 끝난 이후가 될 전망이다. 늦게 이뤄질 경우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유리한 관세협상 결과를 만들어낼 최우선 조건은 한국만의 카드 유무에 달려 있다. 조선, 반도체, 방위산업 알래스카 개발 천연가스(LNG) 수입 같은 것들이 떠오르지만, 한국만의 독자적인 카드는 아니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품으로 포장된 부분도 적지 않다.

G7 주인공은 트럼프, 중심 의제는 관세와 반중이다. 트럼프 2.0과 함께 반중 재무장 일본 2.0도 머지않았다. 한국 이재명 정부는 미·일·중·러 중립외교와 실리외교 전도사를 지향한다고 한다. 한국 국민으로서 잘 도길 바란다. 한순간 사라질 한여름밤의 폭죽이 아닌, 어두운 밤 내내 밝혀줄 등불로서의 한국 외교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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