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 당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과 헌법재판관들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4월 심판사건 선고에 참석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이틀째가 되던 지난 6월 5일,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헌재가 내린 각하(미검토) 결정, 심판절차 수행의 적정성과 적법성을 일반 국민들이 다시 심의하게 한다는 것이 골자다. 헌법심판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해 사법제도의 신뢰성을 높이고, 국민의 법감정과 헌재의 결정이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입법 의도다.

단순 심의기구라 괜찮다?

장 의원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 9명과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이 발의한 이 법안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심판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국민주권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이 위원회는 심판청구 각하결정과 심판절차 수행의 적정성과 적법성을 주로 심의한다. 기타 헌재소장이 부의하는 사항도 심의할 수 있다. 위원 구성은 ‘만 19세 이상의 건전한 상식과 균형을 갖춘 일반 국민’이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장 의원은 지난 5월 8일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취지 파기환송되자 대법관 수를 현행 14명에서 100명으로 늘리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한 인물이다. 그가 법안 의안원문에서 밝히고 있는 제안 이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 헌법의 전문과 본문에 담긴 최고 이념은 국민주권주의인 바, 헌법재판소 역시 이에 입각해 헌법을 해석하고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된 결정을 내리거나 헌정질서의 수호를 위한 긴요한 사항으로서 헌법적 해명이 요청되는 사건임에도 이를 각하시키는 경우가 있다. 헌재가 내린 각하결정과 헌재가 수행 중인 심판절차를 심의하여 종국에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제도를 확립한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사법부 독립에 대한 독소조항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는 법원의 조직상 독립과 더불어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을 동시에 인정받아야 한다”며 “재판에 어떤 다른 사람들이 관여하겠다는 것이고, 헌재의 결정을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국민주권위원회가 단순한 심의기구라며 선을 그었다. “특별한 권한은 부여하지 않고 그냥 논의를 해서, 어느 정도 일정한 학식을 갖춘 분들이 책임감 있게 한 번 더 살펴보고 의견을 내는 정도다. 특정 안건을 검토했는데 의견을 안 낼 수도 있고, 의견을 내더라도 헌재가 판단해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으로 법적 성격은 없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각하한 사건에 대한 건의 내지는 자문이라면 흔한 심의위원회 수준으로 그다지 문제는 아닐 것 같다”고 했다. 심의기구에 구속력이 없다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장영수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국무회의도 심의기구 아닌가”라며 “사법부 권한을 침해한다는 의심을 받으면서 왜 굳이 별도 위원회를 두는가. 신영철 대법관 사건을 모르는가”라고 했다. ‘신영철 사건’이란 2009년 있던 5차 사법파동을 일컫는다. 당시 신 대법관은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관련 집회시위법 위반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들에게 ‘현행법대로 신속하게 재판하라’는 취지의 메일을 보낸 바 있었다. 해당 법률이 위헌 심판에 걸려 있던 탓에 ‘현행법대로 신속하게’라는 내용이 문제가 됐던 것이다. 장 교수는 “지금 국민주권위는 그보다 특정 사안에 훨씬 더 깊이 관여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덧붙였다.

재판 지연 우려도

장 의원은 헌재에만 별도 심의기구가 없다는 것도 법안 발의 이유로 들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도 권고적 성격을 띠고 있다.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도 있다. 각종 위원회들이 있는데 헌재에만 유일하게 없다. 국민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이 헌재다.” 장 교수는 여기에도 반박했다. “사법부 독립은 행정부 외청인 검찰과는 경우가 다르다”며 “법원도 사법행정회의라는 것을 두어 법관 인사 등을 거기서 하자고 했지만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법안의 요지인 ‘각하 사건 재심의’에 대해서도 “각하는 판결 요지나 내용이 조금 짧거나 간결하다”며 “이 사유가 괜찮은 것인지 국민의 의견을 들어 권고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한상희 교수도 “각하 사건은 소부(재판관 전원이 아닌 일부만 참여하는 지정재판부)에서 판단하는 것이니, 경우에 따라서는 전원합의부에서 더 심의해볼 수 있겠다고 건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헌법재판의 민주성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제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의 생각은 여기에서도 달랐다. “소부에서 판단하는 것을 전부 전원합의체로 옮기면 재판지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지금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을 통해 일부 사건은 본안 판단에 들어가지도 않고 잘라버린다. 그걸 모두 검토하라고 하면 대법 기능이 정지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모든 사건이 아니라 헌법소원만 소부에서 처리한다. 그럴 거라면 헌재가 원활히 기능할 수 있는 다른 조건을 만들어놓고 얘기해야 한다. 이를테면 재판소원까지 인정되는 독일은 헌재 사건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 전체 헌법재판관을 16명 두고 8명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 두 개에서 각각 사건 처리를 한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법적 권한이 없는데 어떻게 개입하나”라며 “국민주권위원회가 논의를 이어가는 동안 재판부의 결정이 금지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재반박했다.

민주당의 ‘국민위원회’ 시리즈

한편 민주당은 이번 대선을 치르면서 이처럼 ‘국민위원회’ 형태의 기구를 곳곳에 설치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대개혁위원회’다. 지난 5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포함한 야5당 원탁회의는 시민사회와 여러 정당이 참여하는 사회대개혁위원회를 출범시킨다는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지난 4월엔 민주당 선대위가 ‘빛의혁명 시민본부’ 등 각종 시민사회단체와 ‘국민공회’와 ‘시민사회위원회’의 설치를 추진하기로 법안 협약서를 맺었다. 국민공회는 500명 이상의 국민이 국가 주요 과제를 논의하고 그 결과를 국회나 정부가 공식 검토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시민사회위원회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이 발의한 시민사회기본법에 기초한다. 시민단체의 활동에 행정안전부 등이 의무적으로 재원을 조달할 수 있도록 만든 법안이다.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도 ‘내란 특별재판소’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난 5월 4일 김민석 당시 민주당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은 “지귀연(윤 전 대통령의 구속취소를 결정한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법원이 풀어주고 대법원이 인증하는 윤석열 내란 무죄 작전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 역시 이재명 당시 후보의 ‘파기환송’을 배경으로 한다.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공직선거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 등 ‘이 대통령 방탄법’과 궤를 같이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다.

정치제도 전문가인 조원빈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사법부에 정치가 개입하는 것은 물론 제도적으로 ‘옥상옥’ 꼴이 되는 것을 우려했다. “민주적 정당성, 국민의 법감정을 중요시하는 건 좋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정부·여당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헌재법 개정안의 경우 심의기구에 불과하다면 이를 굳이 법률로 정하는 것이 중요한가. 헌재 재판은 (사실상 4심인) ‘파이널’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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