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일화 관련해서 ‘쌍권(권영세·권성동)’의 책임이 있지만 문제는 쌍권이 없으면 선거를 도울 사람이 없는 거예요. 김문수 후보 옆에 있는 배지(현역의원)도 많지 않고. 그래서 권성동과 함께 간 건데 선거 유세를 열심히 하니까 손가락질하기도 애매한 겁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막판에는 도와줬거든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비난 대상도 달라지는 거예요. 이제 당권을 두고 춘추전국시대가 벌어지겠죠. 당이 한 번 크게 망해봐야 해요.”
21대 대선에서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패배하자 한 국민의힘 관계자가 한 말이다. 당 지도부를 비롯한 친윤(친윤석열)계 의원들, 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 경선부터 함께한 김문수 캠프 관계자들. 국민의힘은 이렇게 세 갈래로 나뉜 상태로 대선을 치렀다.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을 비롯해 끝내 불발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의 연대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항할 ‘빅텐트’을 꿈꿨던 국민의힘은 사실상 말뿐인 ‘원팀’이었던 셈이다.
후보 확정 이후에도 삐걱댄 국힘
캠프 실무진들 사이에선 한덕수 전 국무총리로의 강제 단일화를 추진했던 당권파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단일화 시도가 실패한 이후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린 국민의힘은 경선부터 함께한 김문수 캠프 관계자들에게 명함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 김문수 캠프 관계자는 “명함 시안을 주면서 알아서 프린트하라고 했다”며 “당에서 광고대행사와 계약을 이미 맺었기 때문에 캠프 홍보팀에는 비용을 집행할 수 없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당 홍보국 관계자에 따르면 대선 기간 계약을 맺은 업체는 ‘액센티브’로 알려졌다.
앞선 캠프 관계자는 “최종 대선 후보가 되면 경선 캠프 홍보팀이 선대위 홍보팀을 진두지휘하게 돼 있는데 그런 게 잘 안됐다”며 “선대위 홍보본부장인 강승규 의원을 캠프 홍보팀이 실제로 본 것도 한 번뿐”이라고 덧붙였다. “일례로 모든 의원과 당협위원장들이 모여서 힘을 내자는 의미로 후보실에서 줌회의를 기획했는데 당에서는 ‘김문수 후보가 피곤하지 않겠냐’고 하고, 조직국에선 ‘이렇고 저래서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핑퐁 돌리기가 계속되면서 결국은 무산됐는데 이렇게 당에서 일하기 싫어한다는 걸 느낀 사례가 많았다.”
선거 기간에는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친한계와 친윤계의 충돌 양상은 지난 6월 4일 진행된 국민의힘 선대위 해단식에서 터져나왔다. 이날 친한계인 조경태 공동선대위원장은 “이준석 후보가 (과거 당에서) 쫓겨나지 않았으면 이런 어려운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며 “제가 의총장에서 발언하면 자기들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발언을 멈추게 하는 반민주주의적 모습들이 보수 분열 행태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해 당권을 쥐고 있는 친윤계를 겨냥한 발언이다.
대선 패배에 가시화된 계파 갈등
권 원내대표는 “여러 패인이 있었겠지만, 우리 당이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나와는 생각이 다르단 이유로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서, 적을 향해 싸워야 하는데 내부를 향해 싸우는 모습은 절대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친한계를 직격했다. 이정현 공동선대위원장도 친한계를 향해 “몇 사람이 당을 좌지우지하고 많은 동지가 전선에 서서 피눈물 나게 뛰는데 뒤에 앉아서 관전평이나 하는 식의 정치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한 전 대표가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맡지 않고 지원 유세에 뒤늦게 나선 것을 지적한 것이다.
사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6·3 대선이 치러진 만큼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은 예정된 결과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정치 전문가들은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반대’ 입장을 선회하지 못하고 윤상현 의원을 선대위원장직에 앉히는 등 윤 전 대통령과 명확하게 절연하지 못한 것에서 ‘대권’에 대한 권력 의지가 애초에 없었다고 본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사전투표가 끝난 뒤인 지난 6월 1일에야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을 채택했던 것은 무효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패배 책임론 공방은 차기 당권 경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당권을 거머쥔 쪽은 내년 지방선거 공천권을 가질 뿐만 아니라 보수 재건의 명분을 쥔다는 점에서 치열한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친한계는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며 전당대회를 빨리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 전까지 ‘관리형 비대위’로 전환하거나 내년 지방선거까지 지금의 비대위를 유지하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5일 권 원내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는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는 향후 지도부 선출 절차와 관련해 “원내대표가 사퇴했지만 대행 제도가 없기 때문에, 다음 원내대표가 선출될 때까지 현재 원내대표가 계속 업무를 한다”고 설명했다.
당 안팎에서는 한 전 대표가 전당대회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대선 유세 현장에서 ‘김문수’가 적힌 선거 운동복을 거의 입지 않고 경선 패배 이후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것이 차기 당권을 노린 행보라는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지난 6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들이 ‘불법계엄’과 ‘불법계엄 세력을 옹호한 구태정치’에 대해 단호한 퇴장명령을 내리신 것이라 생각한다”며 “기득권 정치인들만을 위한 지긋지긋한 구태정치를 완전히 허물고 국민이 먼저인 정치를 바로 세울 마지막 기회”라고 적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대선 직전에 추진한 당헌·당규 개정이 대선 패배 이후의 당권 다툼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5월 31일 국민의힘은 전국위원회를 열고 당내 선거 및 공천, 인사 등 주요 당무에 관해 대통령의 개입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계파 불용’등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의결했다.
‘계파 불용’이 한동훈 견제?
김 위원장은 “대통령의 당무개입 금지 명문화는 정확히 말하면 윤석열 방지 당헌 개정”이라고 했지만 친한계 쪽에서는 ‘계파 불용’을 대선 후 한 전 대표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자신들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관련 개정안을 보면 ‘대통령을 포함하여 특정인이 중심이 되거나 또는 특정 세력이 주축이 되어 당내 민주주의와 당원의 자율성 및 자율경쟁을 훼손하는 행위는 허용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계파만 생존하고 기득권을 누릴 수 있다면 권력을 내줘도 상관없다는 ‘계파주의’가 문제”라며 “보수 정당이 권력 의지가 이렇게 약한 것은 굉장히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짚었다. 장 교수는 “당권 투쟁을 염두에 두고 ‘계파 불용’을 신설한 것이겠지만 계파가 없을 수가 있느냐”며 “민주당이 내란 프레임으로 가듯이 친윤계는 ‘한동훈 책임론’을 내세워 계파 프레임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전직 지도부 관계자도 “한 전 대표 측에서 반발할 여지를 준 것”이라며 “싸움의 단초 역할만 하고 사문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를 안 하고 비대위 상태로 계속 가자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