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가인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대선 결과에 대해 “득표만 보면 나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얻은 건 없다”며 “그동안 이준석이 왜 비호감도가 높았는지, 왜 ‘싸가지론’이 나왔는지 방송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준석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아들을 겨냥해 내놓은 ‘젓가락 발언’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준석 후보 캠프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공표 금지 기간 전 15%만 넘으면 ‘이재명 대 이준석’의 구도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봤는데, 3차 토론에서 그 발언이 나오는 바람에 흐름을 놓쳤다”며 “최대 14%까지 여론조사가 나오던 시점에서 공세를 강화해야 할 때 방어로 돌아서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해당 장면은 내용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이 후보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극적으로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준석이라는 인물의 개인기로 300만표에 가까운 득표를 했지만, 반대로 후보 자신이 지닌 리스크도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이 후보가 이재명 후보 아들에 대한 자료를 준비시킨 것은 맞는다”면서도 “그 이야기를 그 방식으로 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대위 관계자는 발언 이후 대응 방식도 캠프 내에서 의견이 갈렸다고 했다. “발언이 논란이 되자 비교적 나이가 많은 선대위 관계자들은 이를 대단한 악재라고 보고 사과해야 한다고 봤지만, 젊은 책임자들은 오히려 정면돌파를 할 수 있는 계기라고 보더라. 아마 판결문(이 후보 아들의 여성비하 범죄가 담긴 공소장)을 확보하지 못했던 상태였던 걸로 안다. 종합적 공격이 아니라 응수타진식 공격이 된 셈인데 결국 악수였다.”
캠프 관계자의 말처럼 이른바 ‘젓가락 발언’은 이준석 후보의 상승세가 꺾인 결정타가 됐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오랜 기간 선거를 준비한 이 후보 측에서는 두고두고 아쉬울 지점이다. 이 후보는 조기대선을 가장 발빠르게 준비한 주자였다. 비상계엄이 있던 지난해 연말과 올 1월께 이미 대선 출마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냈다. 거대 양당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전까지 경선을 미루는 사이, 개혁신당은 3월 18일 이 후보를 대선 후보로 지명했다. 국민의힘 본선 후보 선출은 5월 3일이었고 ‘한덕수 단일화’가 무산된 것은 5월 11일이었다. 개혁신당은 국민의힘에 비해 두 달 가까이 시간을 벌었던 셈이다. 단 3석 규모의 작은 정당, 3당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8.34%, 291만7523표. 이 후보가 받아든 성적표는 미묘하다. 양당 소속이 아닌 만 40세의 초선의원이 처음 대선에 출마한 성적표라고 생각하면 매우 높은 득표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이 기대했던 10%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타격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와 개혁신당이 향후 보수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에서 한 축이 되기엔 애매한 성적인 데다, 내년 지방선거를 독자적으로 치를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서울 2030 지지는 확고했다
물론 이 후보가 완주해 성적표를 받았다는 자체로도 얻은 것이 적지 않다. 먼저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별 개표 결과를 보면 이 후보가 가장 높이 득표한 지역은 단연 서울(9.94%)이었다. 세종(9.89%)과 대전(9.76%)에서도 평균을 웃돌았다. 투표소 단위까지 상세히 분석하면 특히 젊은 인구가 사는 지역에서 강세였다.
이 후보의 표가 가장 많이 나온 개표단위(개별 투표소명 생략)는 경기 용인시 기흥구 서농동으로 30.63%였다. 삼성전자와 경희대가 지척에 있어 대학생과 직장인의 몰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와 두원공대가 위치한 경기 파주시 월롱면에서도 29.60%를 받았다. 그 밖에 서울 안암동(고려대), 신촌동(연세대), 휘경동(경희대), 대전 유성구 온천2동(카이스트) 등 대학생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이 후보는 20% 안팎의 지지를 얻은 경우가 있다. 고시촌인 서울 관악구 신림동, 포스코가 있는 전남 광양시 금호동에서도 득표가 높았다.
이 후보는 이처럼 수도권에 거주하는 2030세대에게는 확실한 대안세력임이 확인됐다. 대선 당일 발표된 공중파 3사(KBS, MBC, SBS)의 출구조사 예측 득표율에서도, 이준석 후보는 20대 이하에서 24.3%, 30대에서 17.7%의 지지를 얻었다. 이것이 이른바 ‘이대남’만의 지지라고 볼 수도 없다. 20대 이하 남성이 27.2%, 30대 남성이 25.8%를 지지하며 세대 내 지지율을 견인한 건 맞지만, 동세대 여성(20대 10.3%, 30대 9.3%)에서도 평균 득표율을 웃돌았다. 진보성향의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5.9%, 1.6%)보다도 높은 수치다. 개표 과정에서도 이 후보는 7% 초반 득표에 머물다 관외사전투표함이 개봉되는 후반부에 8%를 넘어섰다. 주소지를 벗어나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젊은 세대가 많은 까닭으로 짐작된다.
선거로 당세가 늘어난 것도 긍정적이다. 개혁신당은 지난해 총선 이후 두 번째 전국단위 선거를 치렀는데, 총선 때(비례 3.61%, 102만5775표)보다 3배 더 많은 표를 받았다. 대통령 파면 이전인 올 3월 6만명대였던 개혁신당 온라인 가입 당원은 6월 4일 기준 11만8613명까지 늘었다. 지출한 선거비용이 적고 흑자를 본 선거라는 점도 건강한 측면으로 평가된다. 이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지출한 선거비용은 40억원가량으로, 선거보조금 15억6500만원과 후원금, 당비를 합치면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조기대선을 시작할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잘해야 2%를 넘지 못했다”면서 “8.34%를 득표했다는 것은 꽤 선전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사표심리 때문에 김문수 후보를 찍은 사람도 많다”며 “그런 반사적 이익 때문에 찍은 표가 아니라는 점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어쩌면 이 후보에게는 이번 선거가 ‘고점’이었을 수도 있다.
보수재편 축 될까
이 후보가 앞으로 있을 범보수 정계 개편에서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김상일 정치평론가의 전망은 밝지 않았다. “이 후보가 10%를 넘기지 못하면서 보수 재편의 종속변수가 아닌 독립변수가 됐다. 국민의힘과 여당의 권력구조에 맞물려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 후보가 받은 지지는 보수만의 지지가 아니라 양당의 후보를 싫어해 정치적 입장을 유보하는 표였다. 10%를 넘었다면 이준석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준석 후보는 일단 국민의힘 대표 경선 결과까지는 지켜봐야 한다. 친윤이 당권을 잡으면 대안세력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면서, 어쩌면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까지도 가능할지 모른다.”
이 후보의 리더십에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평도 있다. 개혁신당 또 다른 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레드팀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데, 특히 토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았다. 방송사에 따라가는 이들이 정책 전문가는 없고 캠프 고위급에 한정돼 있었으니 후보가 무슨 도움을 얻을 수 있었겠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보다 능력 있는 사람을 기용해야 했다.” 김상일 평론가는 “이 후보가 국민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태도와 조급함을 드러내는 교만함을 절제할 수 있다면 다시 충분한 기회가 올 수 있다”면서 “그만한 서사를 이번 선거에서 남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