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펼쳐진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에 참여한 주한미군. photo 전기병 조선일보 기자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5월 22일(현지시간) 보도한 ‘주한미군 4500명 철수 검토(U.S. Considers Withdrawing Thousands of Troops From South Korea)’ 소식은 우리 사회에 즉각적이고도 광범위한 파장을 일으켰다.

기사의 핵심은 트럼프 행정부가 2만8500명 규모의 주한미군 중에서 4500명(약 16%)을 괌 등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이런 구상은 대북 정책에 대한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보도에 대해 한·미 양국은 이례적으로 신속히 대응했다. 펜타곤은 이와 관련하여 “(보도는) 사실이 아니며,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은 ‘철통같이’ 견고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미국은 정기적으로 글로벌 주둔태세를 검토한다”고 덧붙이며 여운을 남겼다. 한국 국방부·외교부는 “주한미군 철수 관련 한·미 간 논의된 사항은 전혀 없으며, 주한미군이 북한의 침략·도발을 억제함으로써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도록 미국 측과 지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얼핏 보면 WSJ 기사는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한 ‘오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의 입장에 부합하지 않는 보도를 ‘가짜뉴스’로 몰아붙일 때 드러내는 특유의 적대적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부분은 ‘사실’이라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4500명 철수’ 기사의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려면 우선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주한미군 감축의 역사를 일별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기록,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안보 브레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차관의 저서 ‘거부전략(Strategy of Denial)’, 최근 발표된 ‘잠정 국방전략지침’ 등의 점선들을 연결해 보면 보다 명확한 그림이 나타날 것이다.

지난 5월 23일 경기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에 주한미군 헬기와 전술차량들이 계류되어 있다. photo 뉴시스

주한미군 감축의 역사

주한미군(USFK)은 70년 이상 한·미 안보동맹의 핵심으로 작동해왔다. 1953년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공식화된 동맹은 6·25전쟁 직후 최고 32만6863명에서 1960년까지 약 5만5000~6만명으로 감축되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에서 이뤄진 초기의 주둔규모 조정은 중요한 선례를 수립했다. 이런 결정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 대한 한국의 인식보다는 미국 내 정치적 고려, 예산적 필요, 또는 진화하는 글로벌 전략적 요구 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았다. 요컨대 한·미 간 실질적인 사전 협의를 사실상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주한미군 규모가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반복적 패턴이 나타났다.

1960년 이후 주한미군 감축은 대략 네 차례에 걸쳐 추진되었다. 첫째, ‘닉슨 독트린’에 따른 대규모 감축(1969~1972)이다. 1969년 발표된 닉슨 독트린은 미국의 글로벌 공약에 대한 대대적인 재검토를 의미했다. 베트남전쟁으로 인한 대내외적 후유증에 직면하여, 미국은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제한하고 동맹국들이 자국 방위에 일차적 책임을 지도록 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미국은 제7보병사단을 중심으로 약 2만명의 미군을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해 11월 닉슨 대통령은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주한미군의 최대 절반을 철수시키는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비밀해제 문건과 공식 자료 등에 의하면, 이러한 결정은 한국과의 실질적인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드러내며, 측근들에게 “(미국의 결정은) 북한이 다시 침공하면 너희를 구하러 오지 않겠다는 메시지와 같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러한 안보 불안은 한국이 자주국방을 향한 노력을 가속화하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를 계기로 1973년 ‘중화학공업(HCI) 개발 계획’, 1974년 ‘율곡 계획’, 그리고 박정희의 ‘비밀 핵무기 프로그램’ 등이 결정되었다. 닉슨 행정부 기간 중 주한미군은 약 6만3000명에서 4만2000명으로 감축되었다.

둘째, 카터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 ‘미수’ 사건(1977~1979)이다. 인권 문제를 핵심 원칙으로 강조한 카터의 외교 정책은 박정희 정권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으며, 이는 개인적 신념으로 발전했다. 1977년 3월 카터는 “미국 군대(지상군)는 철수될 것이지만… 공군 지원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결정은 국무부·국방부·CIA 등과의 포괄적 협의를 거쳤으나, 한국 정부는 거의 배제되었다. 심지어 먼데일 부통령은 한국에 공식 통보하기 전에 일본 정부에 먼저 알려주는 결례를 범했다. 이 결정은 미국 군부의 강경한 반대, 특히 유엔사령부 참모장이던 싱글러브 장군의 공개적 반대(항명죄로 해임 및 강제전역)에 부딪혔다. 하지만 1978~1979년 북한군 군사력이 종전 추정치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새로운 정보평가가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다. 1979년 7월 20일 카터는 추가 철수를 공식 중단했다. 실제로 철수된 병력은 약 3000명 정도에 불과했으며, 주한미군은 약 3만9000명 수준을 유지했다.

셋째, 냉전 종식에 따른 부분 감축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1년 소련 해체는 글로벌 전략 지형을 재편했다. 미국이 ‘평화 배당금(peace dividend)’에 대한 국내 요구에 직면하자, 의회는 ‘넌·워너 수정안’을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미군의 구조 조정을 추진했다. 특히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은 1990~1992년 약 7000명의 감축을 목표로 했다. 한국은 계획된 병력 감축과 방어 책임의 증가를 수용하였고, 평시 작전통제권(OPCON)이 1994년 12월 한국군으로 이양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북한 핵 위기의 등장으로 EASI의 추가 단계는 중단되었다. 딕 체니 국방장관은 북핵 문제 해결 전까지 추가 시행을 공식 동결했다. EASI로 인해 주한미군은 약 4만3000명에서 3만6000명 남짓으로 줄었다.

넷째, ‘글로벌 대테러 전쟁’을 계기로 다시금 주한미군이 줄었다. 9·11테러 공격은 미국의 국가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주도한 ‘해외주둔군 재검토(GPR)’는 미군을 보다 유연하고, 신속하게, 전개가능한 부대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때부터 ‘전략적 유연성’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주한미군은 기지 통합, 한강 남쪽으로의 이전, 전략적 유연성 강화를 추진했다. 당시에 철수 또는 재배치된 인원은 약 1만2000명이었다. 일부는 이라크 작전에 파견되었다. 미국과 한국은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FOTA)’과 ‘한·미 안보정책구상(SPI)’을 통해 광범위한 협상을 진행했다. 2006년 1월 한·미 공동성명에서 ‘전략적 유연성’ 문제가 공식 의제에 포함되었다. 진보 진영은 한국이 원치 않는 지역 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했고, 보수 세력은 미국의 한반도 방어 의지 약화를 우려했다. 부시 행정부 초기 주한미군은 약 3만7500명에서 2만8500명으로 감축되었고, 이 수준은 지금까지 15년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한편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시작으로 대(對)중국 견제를 본격화하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2017~2020)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동맹관계에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상당한 추가적인 재정 기여를 요구했다. 트럼프 2기에서도 이러한 기조는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오늘날 전략환경의 제1 화두는 ‘강대국 패권 경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미국의 제1 적대국(America’s number one adversary)’으로로 지목했다.

미국 필요에 의해 주한미군 철수

WSJ에 보도된 ‘주한미군 부분 감축’ 기사는 지난 70년 이상에 걸쳐 추진되어온 역사적 맥락에서 조망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증거는 명확한 패턴을 보여준다. 닉슨 시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주요 철수 결정은 미국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각각 경우에서 미국 내 정치적 필요성, 예산 제약, 또는 글로벌 전략 재편 등이 주요 요인이었다. 한국과의 ‘협의’는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사후 설명이나 실행과 관련된 세부사항(‘지엽말단적’) 협상에 그쳤다.

과거 70년 이상에 걸쳐 주한미군 규모 조정은 언제나 미 국방정책의 중대한 변화와 그 시점이 일치했다. 트럼프 2기 국방정책의 핵심은 ‘거부전략’이다. 펜타곤의 3인자이자 국방차관인 엘브리지 콜비에 의하면, 미국의 최우선 목표는 ‘중국의 지역 패권 거부’다. 이를 위해 대만 방어와 제1도련선(일본·대만·필리핀) 강화에 군사력을 집중하고, 한국과 같은 동맹국은 북한 등 지역적 위협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콜비는 “미국이 중국과의 대만 전쟁과 동시에 다른 시나리오에 대응하기 위해 군사력을 조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주한미군 2만8500명 중 4500명 감축(만일 그것이 실제로 추진된다면)은 ‘단순 철수’가 아닌 ‘전략적 재배치’다. 한반도에서 빼낸 병력은 괌 등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여 중국 A2/AD(반접근·지역거부) 위협에 대응하는 “분산되고 탄력적인 태세”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미국이 보기에 괌은 서태평양 작전의 ‘창끝 전력(tip of the spear)’이다.

콜비는 ‘거부전략’에서 여러 차례 한국의 독자적 방위능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에 지출하고, 선진 군사력을 보유하여 “미국의 핵우산하에서 북한의 재래식 침략을 거의 확실하게 혼자서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 이후에 자원을 전환하여 한국 방어를 도울 수 있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한마디로 유사시 미국의 한국 지원은 모두 ‘조건부’라는 의미다.

첫째, 미국 핵우산(확장억제)의 문제다. ‘거부전략’은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이 ‘조건부’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북한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서울이나 도쿄를 협박한다면,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한국과 일본을 방어하는 이익과 핵 공격을 피해야 할 막대한 이익을 비교 검토해야 한다.” 콜비는 다른 계기에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미국이 북한의 핵공격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즉 한국 안보를 위해 미국이 핵공격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비합리적(즉 미친 짓)’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핵우산은 미 본토가 북한의 핵공격을 받지 않는 ‘안전한 상황’에서만 제공될 것이다.

둘째, 유사시 한국에 대한 지원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다음”에라야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과의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 그럴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므로 미국의 한국 지원 여부도 중국과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

주한미군 감축이 한국 입장에서는 ‘손실’이지만, 미국의 관점에서는 대만 방어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유는 한국에 고정된 재래식 병력은 대만해협 위기 시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어렵지만, 이를 괌이나 오키나와로 재배치하면 제1도련선의 ‘거부방어’ 태세가 강화된다. 이미 패트리어트와 사드 같은 미사일 방어 자산들이 한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 규모 조정의 또 다른 목표다. 한반도에 고정된 병력을 지역 내에서 신속히 전개가능한 형태로 전환하여, 중국의 위협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는 것이다. 이는 냉전시대의 ‘고정 배치’에서 21세기형 ‘유연 대응’ 체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안은 콜비의 거부전략을 실행하는 구체적 조치로 볼 수 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 견제라는 핵심 목표에 군사력을 집중하면서 동맹국들에는 더 많은 방위 책임을 요구하는 전략적 재편의 신호탄이다.

‘주한미군 부분 감축설’의 진정한 노림수

WSJ 기사와 관련, 미 고위 당국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과 미국의 군사지원 지속 여부가 명확이 결정된 이후에야 주한미군 병력 수준에 대한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말하는 소위 ‘역(逆)키신저 전략’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기 출범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측근들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빨리 끝내고, 미국의 군사력을 중국에 명시적으로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일 그것이 진정한 목표라면 설령 콜비의 ‘거부전략’과 구체적 콘텐츠가 약간 다르더라도, 대만 방어와 대중국 견제를 위한 동맹국들의 역량을 보완·강화·업그레이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례로 대만과 1도련선에 대한 ‘거부억제’ 강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주한미군 일부를 (비록 역내라고는 하지만) 타 지역으로 이전하려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혹자는 주한미군을 가리켜 “중국의 목줄을 겨누는 비수”로 표현한다. 따라서 주한미군 감축은 이런 칼날을 무디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만 방어를 위한 미국의 부분 감축은 ‘앞문 떼어 뒷문 달기’와 다를 바 없다.

또 다른 의문은 이렇다. “왜 하필 시점이 지금인가?”이다. 지금까지 주한미군 감축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미국은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여 병력 축소(채찍)로 인한 한국의 안보 불안 해소(당근)를 위해 나름의 보상 또는 유인책을 제시했다. 한국군 현대화, 최신 무기 제공 및 판매, 방위산업 기술 협력, 주한미군 전력 증강, 패트리어트·사드 배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된 이후라야 주한미군 규모가 최종 결정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 4월 10일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과 새뮤얼 퍼파로 인도·태평양사령관은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철수·감축이 대북 억제력을 약화시키고,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한국을 ‘돈버는 기계’로 간주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철수·감축’을 ‘보호비(protection money)’ 또는 비용분담 명목으로 한국에서 최대한 돈을 많이 뜯어내기 위한 카드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70년 이상 미국은 미군 감축의 후유증 최소화를 위해 각종 유인책을 제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근’은 고사하고, 또 다른 ‘몽둥이’를 휘두를 참이다. 따라서 6월에 들어설 한국의 신정부가 당면하게 될 제1의 과제는 ‘트럼프 리스크’가 될 공산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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