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6일 서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시내 빌라 밀집지역의 모습. 피해 총액이 약 800억원으로 알려진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사건도 이같은 다세대 빌라 밀집지역에서 일어났다. photo 뉴시스

최씨(34)는 한때 경기 수원시 인계동 ‘Y빌딩’의 1억6000만원짜리 전셋집에 살았다. 보증금의 80%는 주택도시기금에서 받은 대출이었다. 이상하게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하는 보증보험에 들 수 없다고 했다. 그 집은 여러 세대에 융자가 묶여 있는 다세대주택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이던 최씨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한 줄 알고 입주해 살고 있었는데, 2년 계약이 끝날 때쯤 ‘보증보험이 되지 않는 다세대주택’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른바 전세사기의 전형적 수법이었다.

그가 입주했던 집은 2023년 말 경기 남부를 뒤흔든 ‘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정태일 일가의 소유였다. 피해액 약 800억원, 피해자는 511명. 최씨는 그 500여명 가운데 하나가 됐다. 최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최씨의 계약은 2023년 12월에 끝났고, 그다음 해 7월에 임차권 등기를 해둔 채 이사를 갔다. 임차권 등기란 보증금을 못 받았는데 이사를 나와야 하는 경우, 대항력(임대차 계약을 제3자에게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최씨는 점유 상태를 인정받기 위해 몇몇 가재도구를 남겨놓았다.

그런데 지난 4월 초 최씨는 정태일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임차권 등기를 해놓은 집, 현관문에 이격이 생겼다. 누가 강제로 열려다 실패한 것처럼.”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바로 그 집들을 누가 열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올 사람이 없었다. 정태일은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구속수감중이기 때문이다.

최씨가 다음날 집을 방문해 보니, 자신의 짐들이 비닐봉투에 싸여 밖에 버려져 있었다. 그곳에는 보증금 없이 ‘깔세’로 들어올 사람들이 입주할 예정이라고 했다. 정태일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한씨가 꾸민 짓이었다. 정씨 일가가 저지른 전세사기에 엮인 매물들이 일종의 불법 단기임대차 사업에 쓰이고 있던 것이다. 이처럼 전세사기 가해자가 세입자들의 주택에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임의로 짐을 꺼내 피해 세입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의 새로운 유형이 등장한 것이다.

S빌딩의 우편함에 전세사기 가해자 정태일씨의 이름이 적힌 우편물이 쌓여 있다. photo 이용규 기자

“풀옵션 단기임대” 멀쩡한 집인 양 홍보

일단 정태일 일당이 2023년 벌였던 전세사기 수법을 먼저 짚어야 한다. 이른바 ‘쪼개기 담보’. 근저당(융자) 비율이 높은 건물, 요컨대 깡통주택은 전세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세입자들도 계약 전 이를 확인하는 것이 안전한데, 건물가액에 비해 융자의 비율이 낮을수록 좋다. 그런데 다세대주택은 이를 제대로 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담보를 쪼개는, 곧 소유권과 등기가 각 호실별로 나뉘어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00세대 가운데 10세대씩 묶어 총 10개의 근저당 설정이 된 경우, 입주한 호실의 등기를 떼 보면 총융자액보다 현저히 적어 보일 수밖에 없다. 모든 호실의 등기를 떼지 않는 이상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정씨 일당은 이런 식으로 다세대, 다가구 주택 800여채를 사들인 뒤 대거 근저당을 설정하고 전세금을 돌려막았다.

이 상황에서 전세금을 떼인 피해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피해주택은 대부분 경매에 넘어가는데, 피해자들에게 부여되는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기 위해 그 집을 깔고 사는 경우다. 본인이 집을 직접 사들이거나, LH가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은 뒤 피해자들에게 임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혼, 이직 등의 이유로 이사를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임차권 등기를 해 놓지만 집은 비어 있다. 정씨 일가는 이 ‘빈집’들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앞선 최씨 역시 그런 사례다. 한데 최씨는 본인의 짐이 비닐봉투에 싸여 밖에 나와 있는 것보다 더 기막힌 사실을 알게 됐다. 최씨의 돈 1억8000만원이 묶여 있는 그 집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멀쩡한 단기임대 매물인 듯 홍보되고 있었다.

정씨 일가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한씨는 올 1월 말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 ‘집만’이라는 단기임대 매물 홍보채널을 개설해 전세사기 주택을 내놓고 있다. 최씨를 포함해 이렇게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는 이들이 문제를 인지한 시점은 4월 초인데, 이 사이에 실질적 ‘빈집’을 물색하고 다녔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채널들은 최씨가 살던 집을 ‘풀옵션 단기임대방’ 따위의 문구로 홍보하고 있었다. 누군가 직접 집을 둘러보듯 촬영한 영상에 자막이 흘러나온다. “없는 게 없는 집입니다, 역대급 수원 하이앤드 풀옵션 원룸! 수원 인계동 무보증 월세, 예치금 50/80만원, 풀옵션(영상시청 필수).” 더 기가 차는 것은 최씨가 남겨둔 세간을 자신들이 마련한 ‘옵션’인 양 홍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최씨는 기자와 홍보영상을 함께 보다 “여기 보이는 침대나 이불은 내가 사둔 것”이라며 “빼기 쉬운 짐만 빼고, 옵션이 될 만한 것은 놔둔 것 같다”고 했다. 기자가 “영상 초반에 보이는 탁자 위 고데기도 본인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그렇네요….”

“임차인, 이거라도 받으실래요?”

이씨(35) 역시 수원 세류동에 위치한 정태일 소유의 A빌라에 살았다. 이씨는 2021년 4월 전세 계약을 맺고 살다, 2023년 4월 집주인인 정씨에게 이사를 통보하며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이때 정씨는 보증금을 준비한다며 3개월만 더 살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보증금 대부분이 대출이었기 때문에 정씨는 3개월치 이자를 지원해주겠다고까지 했고,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 전화해 보니 보증금을 못 돌려주겠더란다. 이씨는 곧바로 임차권 설정을 하고 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내 이겼다. 하지만 전세보증금 1억8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정씨에게 잡혀 있는 재산이 없어 실제 집행할 수 있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실은 재산이 남지 않은 정씨는 민사 소송에 무변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씨는 하는 수 없이 집을 나간 상태였다. 그런데 지난 4월 18일 옆집 이웃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집을 정리하는 것이냐, 빈집에서 입주청소를 하고 있는데 무슨 일이냐?” 누가 이씨의 짐을 정리해서 밖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 며칠 전부터 피해자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이런 일들이 알려진 상태였다는 것이 떠올랐다. ‘당했구나.’ 방문해 보니 이씨가 살던 집에는 이미 ‘단기’ 임차인이 들어와 있었다. 집 비밀번호도 바뀌어 있었다.

“내가 살던 집에 들어간 임차인을 만났더니 인스타그램으로 매물을 보고 들어왔다고 하더라. 월세를 80만원씩 3개월치, 계약금 명목의 50만원을 포함해 290만원가량을 한 번에 내고 들어왔다. 대리인 한씨를 통해 직접 계약했다고 했다. 임차인에게 듣기로 한씨는 건물주의 부동산 대리인을 자처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건물은 집주인과 건물주가 사이가 안 좋아서 압류, 경매에 들어간 상태다. 경매가 개시되기 전까지 이렇게 단기임대로 내놓고 있다.’ 물론 전세사기 매물인 것은 숨긴 것 같다. 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 무슨 개인사무실 같은 데서 렌트 계약서를 썼다고 한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 한씨라는 인물은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재임대해 일부 수익을 피해자들에게 되돌려주려고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씨는 “한씨에게 전화가 와서 받아 보니, 자기네들이 확인해 보니 이렇게 단기임대를 놓는 게 불법이 아니라고 확인을 받아 진행하는 거라더라”며 “단기임대로 집을 내놓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부를 받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식으로 회유했다”고 전했다.

한씨가 이 2차 피해자들에게 제시하는 금액도 각각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월 10만원씩 주겠다’, 누군가에게는 ‘월세 수익의 절반을 주겠다’는 식이었다. 물론 임차인에게 이를 미리 고지한 것도 아니다. 임차인들의 항의가 들어오자 ‘임기응변’한 것에 가깝다.

법적인 문제는 없는 것일까. 권지웅 경기도 전세피해지원센터장은 “재임대를 할 수는 있지만 점유자의 동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며 “보증금 반환과 주택의 인도는 동시이행 관계인데, 보증금 반환이 안 되었다면 주택은 여전히 임차인 점유인 상태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정도의 한지연 변호사도 “임차인이 임차권 등기만 해놓고 임대인에게 주택을 인도해주지 않았다면, 이는 임차인의 점유하에 있는 건물”이라며 “짐 일부를 무단으로 내놓고 주거침입해 새로운 단기임대차 계약을 체결했다면 당연히 형사상 주거침입죄, 손괴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정씨 일가와 한씨가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한 변호사는 두 가지가 의심된다고 했다. “해당 사례들을 보면, 대리인이 ‘월세를 받겠느냐’고 묻는 것은 민사상 사후 동의를 받고 싶은 것으로 보인다. 주거침입이든 손괴든 임차인의 승낙을 받았다는 뉘앙스를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또 형사사건 측면에서는 ‘나는 이렇게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다. 피해자들에게 입금한 금액 내역 등을 제출해 양형에 반영하라고 주장할 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4월 28일 정태일 일가가 소유한 건물에 임차권등기를 설정한 최씨의 짐이 무단으로 밖에 내어져 있다. photo 이용규 기자

“LH가 집 못 보면 구제책 날아가는데…”

수원 인계동의 또 다른 정씨 소유 ‘S빌딩’ 세입자였던 김씨(35) 역시 최씨와 이씨처럼 뒤늦게 2차 피해 사실을 알아차렸다. 김씨는 정씨가 수감된 수원구치소에 ‘해당 임차 목적물을 정당한 권리행사의 일환으로서 재점유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런데 정씨의 대리인인 한씨는 그 이틀 뒤 해당 주택을 방문한 김씨의 재점유를 막아서며 ‘단기임대차계약이 체결되었으니 점유할 수 없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씨가 마스터키를 사용해 그 집의 비밀번호를 바꾼 상태였기 때문에, 열쇠공과 증인 몇 명을 대동해 집을 재점유하려고 방문했다. 그런데 한씨가 집 안에 있었다. 실랑이 끝에 부른 경찰은 ‘지금 당신(김씨)이 여기 살고 잊는 게 맞느냐’는 얘기만 하면서 임차권이 설정되어 있는 나를 집 안으로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한씨는 ‘단기임대 수익의 얼마를 당신이 꼭 받았으면 좋겠다’는 얘기만 했다.”

그런데 김씨는 사정이 약간 복잡하게 됐다. 1억4000만원에 달하는 전세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것, 그리고 김씨가 살던 집에서 단기임대차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임대인에게 ‘점유권 이전’이 완료된 상황으로 해석돼 임대인의 자의적 단기임대차 행위를 막기 어려운 것이다. 김씨도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소송을 내 승소했는데, 이때 ‘동시이행으로 반환’이 아닌 ‘점유 인도 이후 연 12% 이자 청구’를 택했기 때문이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본래 임차인의 퇴거와 동시에 보증금의 반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김씨가 실제 해당 집에 살고 있고 보증금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인정된다면 정씨 일가의 단기임대차는 불법이 된다. 앞선 최씨와 이씨가 빈집에 ‘짐’을 남겨놓은 이유도 그것이다.

그런데 김씨가 택한 방식은 ‘퇴거를 분명히 했지만 보증금을 받지 못한 상황’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만 연 12% 이자 청구가 가능하다. 이것이 점유하고 있는 이가 없는 상황으로 해석돼 단기임대가 불법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김씨가 이처럼 2차 피해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경우,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받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구제책인 ‘우선매수권’ 행사가 불투명해진다. 경매에 나온 해당 주택을 LH가 매수해 임차인에게 재임대하는 것이다. LH가 피해주택을 낙찰받으면 피해자는 감정가와 낙찰가의 차익으로 임대료를 지원받거나 차익을 받고 퇴거할 수 있다. 이것이 실제 점유를 근거로 하는 조항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LH가 해당 주택 매입심사를 하려면 감정을 위한 실사를 나와야 한다. 다른 이가 살고 있는 까닭에 실사가 무산되면 구제책 자체가 날아가는 셈이다.

김씨는 “LH는 ‘실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매입이 거절될 수 있다’고 공문에 써 놓았더라”며 “2~3주 안에 실사가 나올 예정인데, 다른 사람이 이미 들어가 있는 상태에 이게 가능할지 너무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정씨 입장에서는 이렇게 경매가 성사돼도 얻을 것이 없고, 지금처럼 단기임대를 통해 몇 푼의 수익이라도 얻는 게 이득인 것이 사실이다.

정태일 일가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한모씨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유튜브 채널. 해당 영상에서 실제 전세사기 피해가 일어났던 매물을 정상 매물인 양 소개하고 있다. photo 유튜브 캡쳐

이처럼 ‘불법단기임대차’ 피해를 본 이들은 5월 9일 금요일 열리는 정태일 일가의 2심 공판기일에서 재판절차 진술권을 요청, 해당 사실에 대해 재판장에 소명하고 양형에 적극적으로 반영해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다. 이른바 대리인인 한씨는 주간조선의 반론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권지웅 센터장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돌려줘야 할 보증금을 돌려주기는커녕 임차인이 점유하는 집에 동의 없이 침입했다는 것은 명백한 주거침입으로 현행범으로 처벌할 죄”라며 “수사기관은 즉각 전세 사기 피해자의 동의 없이 피해주택에 침입하거나 재임대하려는 시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고 임대인이 소유권을 제한 없이 활용할 수 있는 현행 제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임대인의 소유권(수익권) 일부를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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