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3월 31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가 마땅히 예우해야 할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개인의 억울함을 넘어, 국가의 정체성과 품격이 손상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랑스러워야 할 선택을 한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런 사람들을 국가가 어떻게 기억하고 예우하느냐가 앞으로 공동체가 위기를 이겨내는 힘이 된다고 강조했다.
제10회 서해수호의 날 직후 서울 상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한 전 대표는 제1연평해전 PTSD(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국가유공자 예우 문제를 거론하며 “당시엔 PTSD라는 개념조차 없었지만, 전투에 참여한 이들이 외상을 겪지 않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런 선택을 한 분들에겐 과할 정도의 예우가 필요하다”면서, 단지 제도를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기준을 세우느냐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인터뷰는 주간조선이 제1연평해전 참전 장병 8인의 사연을 보도한 후, 한 전 대표 측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하면서 성사됐다. 인터뷰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선고 기일이 잡히기 전 이뤄졌다. 그는 정치적 언급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제한 채 보훈과 안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 입장을 밝혔다.
- 검사 시절에는 형사부보다는 특수부에서 오래 있었는데, 장관 시절부터 보훈이나 안보 문제에 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근래 인터뷰를 보면 ‘억울함을 풀겠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던데, 그런 이유가 있나. “정치하는 사람이 당연히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거다. 그건 일의 내용하고 관련 있는 건 아니다. 기자 한다고 모두가 억울함에 몰두하진 않지 않나? 어릴 때부터 공공선을 추구하고 싶었다. 보훈에서의 ‘억울함’은 제가 그동안 언급했던 ‘억울함’하고는 좀 다르다. 자랑스러워야 할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분들(제1연평해전 참전장병)은 개인적으로는 억울하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동시에 나라가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공식적으로 기억하느냐는 게 곧 국가가 지향하는 지점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 우리는 대단히 훌륭하고 헌신적이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한 많은 영웅들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고 있지 않나. 저는 우리나라의 수준이나 격에 비해 영웅들에게 걸맞은 예우를 못 하고 있는 것이 나라 차원에서 억울하다고 생각한다.”
- 제1연평해전 국가유공자 인정 문제를 취재하면서 왜 이분들 이야기가 그동안 단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을까 의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고 하더라. 영웅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에 소홀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사실 그걸 몰랐고, 주간조선 단독 기사를 보고 알았다. 참 문제라고 생각했고, 반성을 많이 했다. 제1연평해전이 승리한 전투기 때문에 그럴 거다. 우리는 자꾸 공격당한 사건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안보와 보훈에는 이기는 역사도 중요하다. 승전한 영웅들도 기려야 한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도 ‘알아서 해라’ 이런 식이었고, 사회적으로도 잘 조명되지 않았다.”
- 나라 차원에서 억울하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그분들은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실 텐데, 그분들로 인해 나라가 분명히 더 안전해졌다. 당연히 해야 할 보답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전투가 시작됐을 때 인생에서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맞게 되셨던 것 아닌가? 그 순간 본인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남은 가족들의 생계나 생활고까지도 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나’를 먼저 생각한 게 아니라 국민을,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선택했다. 그런 선택들이 쌓여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우리 공동체가 위기를 겪게 될 텐데, 그때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오려면, 그런 선택을 했던 분들을 얼마나 잘 기억하고 예우하느냐가 결정적이라고 본다.”
- ‘공동체’ ‘동료시민’ 같은 단어를 자주 쓰는 것도 연장선상인가. “진영을 막론하고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용어 아닌가?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자체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 그게 저는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일상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생활인이다. 그런 생활인의 입장에서 애국심이나 사회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하면 그게 공동체고 동료시민에 대한 애정이다.”
- 이재명 대표가 최근에 “안보·경제는 보수정책으로, 사회·문화 영역은 진보적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 이런 발언은 어떻게 보셨나. “정치인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 그동안 해왔던 정치를 보면 된다. 중요한 시점에 어떤 말을 해왔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가 그 사람이 어떤 정책을 펼지 보여주는 거다. 이재명 대표가 보훈과 안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려면, 그동안 실제로 해왔던 걸 보면 된다. 연평도 폭격 관련해서 ‘꽃게’ 이야기를 했었고, 사드 배치 반대하면서 국익에 반한다고 했고, 미군을 점령군이라고 표현한 적도 있다. 그게 본성이다. 감추려고 해도 툭툭 튀어나온다. 결국은 친북·친중·친러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중도’ 이런 건 말장난이다. 그리고 분야를 분리해서 얘기하는데, 분리되질 않는다. 경제 분야의 경우, 지금 세계는 완연하게 북·중·러, 한·일 등등 블록화돼서 하는 전쟁 같은 국면이다. 크게 말하면 저는 한·미·일 경제를 하겠다는 거고, 이재명 대표는 북·중·러 경제를 하겠다는 거다. 그게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 문제인가?”
- 민주화운동에 비해 안보 분야에 더 엄격한 보훈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다는 비판도 있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려야 한다. 민주화운동도 그런 차원이다. 하지만 영역이 다르다. 민주화운동은 분명히 고마운 역사다. 저도 유치원 다니고 있을 때 이루어진 일이니까 고마움을 느낀다. 5·18 항쟁, 4·19혁명 모두 역사의 한 장면이고 고마운 일이지만, 왜 그게 부채 의식처럼 작용하는지는 모르겠다. 86세대들이 충분히 보상받지 않았나? 민주화운동은 시민 모두가 함께 이룬 성과다. 시대 역사를 좀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부채 의식에서 벗어나는 세대가 나라를 이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원에서 천안함이라든가 연평해전이라든가 이 나라를 위해서 몸 바친 분들이 계셨다. 너무 고맙지 않나? 뭐가 다른가? 오롯이 희생하신 것 아닌가? 오히려 이분들은 덜 주목받고 있고 국가가 직접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정치 세력화되기가 어렵다. 저는 그런 분들의 희생을 정말 국가가 예외적으로라도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외적인 대우는 어떻게 해야하나. “제가 법무부 장관 할 때부터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위한 몇 가지 법을 만들었다. 복무 중 급성백혈병을 호소하다 늑장대응으로 사망한 홍정기 일병과 관련해 국가배상법을 개정했고, 제2연평해전 전사자 한상국 상사의 부인 김한나씨를 직접 면담하고 추서계급 인정을 연금까지 반영되게 했다. 둘 다 소급효(법률의 효력이나 법률 요건의 효력이 법률이 시행되기 전 또는 법률 요건이 성립되기 전으로 거슬러올라가 미치게 하는 일)를 붙였다. 법조계에선 소급을 싫어한다. 근데 전 다르게 생각한다. 이건 예외적인 분들이니까, 법이 예외를 허용해야 한다. 그게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생존장병들의 PTSD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2021년부터다. 제1연평해전 참전 장병들도 소급 적용해야 한다. 그런 분들 때문에 우리가 산다.”
- 국가유공자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제1연평해전 사례 외에도 미처 기억되지 못한 분들이 너무 많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곧 국가유공자다. 선택의 순간에서 공동체를 위해 용기와 헌신을 보여준 사람들이다. 아까 정치인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저는 실제로 현장에서 바꿀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고민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처음으로 교정직 공무원 이야기에 대한 추도사를 쓰고 기념비를 세웠다. 6·25전쟁 당시 형무소와 교도소를 지키다가 순직하신 분들이 167명이다. 그런데 한번도 그 이름들을 모은 적이 없더라. 그분들 대부분이 20대 초반이었다. 도망가실 수도 있었다. 그런데 끝까지 그 자리에 남아 수감자를 보호하고, 교정 시설을 방어했다. 그런 기록을 남기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미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이 특히 제복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항상 나온다. “일제시대를 겪었고 제복문화나 권위주의에 대해 반감이 있을수 있다. 미국은 시민들부터 제복입은 영웅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도 항상 강조한다. 이제 우리 정부도 영웅들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우 해야 한다.”
- 최근엔 개헌 얘기도 꺼냈는데 헌법상의 한계 때문에 보훈 관련해서도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게 어떤 취지인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 치자. 그러면 일반적인 사고를 겪으신 국민 보다 덜 대우받아야 하나, 더 대우받아야 하나?우리는 덜 준다. 파격적으로 덜 준다. 상식적이지 않은 건데, 그게 헌법으로 돼 있다. 이중배상금지라는 원칙이다. 앞서 말씀드렸던 국가배상법 개정은 헌법의 한계 내에서, 본인에게는 못 주니까 위자료를 유가족에게 주라고 한 거다. 그런 식의 개정은 일종의 편법이고, 한계가 있다.”
- 그 헌법 조항이 언제 생겼나. “이게 1967년에 만들어졌다. 그땐 우리가 정말 못살았다. 국민들이 베트남전 파병도 가고 몸 바쳐서 나라를 일굴 정도였다.많이 배상해 줄 수가 없었다. 대법원에서 이걸 위헌이라고 했다. 그때는 헌법재판소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했냐면, 위헌 나온 그 내용을 그냥 헌법에다 넣어버린 거다. 그렇게 이중배상금지 조항이 헌법이 됐다. 그런데 지금은 선진국 아닌가. 1960~1970년대에 있었던 그 정신을 지금까지 헌법에 담고 있다. 바꿔야 한다. 단순히 돈 더 주고 덜 주고의 문제가 아니다. 저는 이건 안보·보훈의 철학 문제라고 생각한다. 희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고, 우리 헌법 정신의 철학이 잘못돼 있다. 이게 87년 체제다. 유신헌법에서는 직선제 조항만 바꾸고 나머지는 나중에 바꾸자고 했는데, 그 나중이 지금까지 왔다. 거의 40년이 넘었다. 저는 이번 개헌이 단순히 권력구조 개편만이 아니라, 나라의 철학을 바로잡는 기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안보와 보훈 규정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 군 복무 환경 개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군 복무와 관련해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는 문제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처우 문제가 있다. 우선 직업군인들 급여가 지금 사병 급여와 큰 차이가 안 나게 됐다. 사병 급여가 많이 올라갔다. 그렇다 보니 직업군인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전역자 수도 많아졌다. 특히 비상계엄 때 국회에 투입된 707특임단 같은 경우는 이번 계엄사태 이후 전역자가 예년보다 엄청 많아졌다고 하더라. 급여 문제는 공무원 전체의 그것과 연동돼 있어서 무턱대고 올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본봉은 못 올려도 수당은 올릴 수 있다. 지금 군 당직수당이 굉장히 낮다. 평일 2만원, 휴일 4만원이다. 소방공무원은 평일 5만원, 휴일 10만원 정도 받는다.(2024년 기준) 이건 사회적 합의도 가능한 사안이고, 법적 제약도 없다. 당장 고칠 수 있다.
또 하나는 계급정년 문제다. 정년이 너무 빠르다. 중령 53세, 대령 56세, 상사 53세, 원사가 55세다. 53세 정년이면 그 뒤가 너무 불안정하지 않겠는가. 일반 사회에선 60세 정년을 65세로 늘리자는 논의도 하고 있는데, 군은 거꾸로 너무 이른 나이에 전역하게 된다.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라고 본다.”
- 안보와 보훈이라는 이슈에 있어 다른 정치인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점이 있나. “저는 국가의 제1 임무는 안보라고 생각한다. 지금 국민들이 겪는 불안감이 있다. 계엄 상황도 있고, 트럼프 얘기도 나오고, 이런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나라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느냐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이게 안보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와도 연결돼 있다. 북·중·러와 한·미·일이 갈라지고 있고, 이건 외교나 군사 문제를 넘어서 경제 문제로 직결된다. 궐기대회처럼 하자는 게 아니라, 펜을 들고 현장을 다니면서 구체적으로 뭐가 필요한지 챙기는 게 정치라고 생각한다. 디테일 하나하나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