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100일이 지났다. 대통령 탄핵소추, 체포, 구속수감, 헌법재판소의 심리가 이어졌다. 겨우내 한국 사회는 전례없이 분열됐다. 미증유의 일들이 벌어지는 동안 국민 다수가 보수·진보 양 진영 가운데 하나를 택했다. 국회는 공전하고, 대신 주말마다 광장에서 정치집회가 열리고 있다. 헌재의 탄핵 선고가 임박하며 시위 양상도 더욱 격해지고 있다. 표면적 의제는 계엄 사태의 직접적 원인, 대통령 탄핵에 대한 찬반이다. 하지만 광장의 언어는 ‘친일매국’ ‘반중’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따위의 이념적 구호들로 물들어 있다. 때문에 지금의 분열상은 ‘진영 갈등’ 같은 범속한 표현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신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표현이 있다. ‘체제 전쟁’.
전한길과 황현필. 두 사람이 이 전쟁의 키 플레이어로 떠올랐다. 이들은 역사학자가 아닌 역사 ‘강사’로, 모두 공무원 수험시장에서 역사 과목을 강의하며 이름을 알려 대중에게 친숙하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이들은 역사를 매개로 각각 양 진영의 스피커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자가 아닌 ‘커뮤니케이터’에 가까운 이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생경한 일이다. 그러나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이후 이념과 역사관에 근거한 뿌리 깊은 갈등의 연장선이 오늘날 한국의 ‘체제 전쟁’이라면, 역사를 적당히 다루면서 언변에 능한 이 두 사람은 양 진영의 무엇보다 훌륭한 도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실증적으로 접근해야 할 역사를 프로파간다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기독교 보수’ 표상, 전한길은 누구인가
전한길씨는 계엄 정국이 낳은 보수진영의 스타다. 자신의 유튜브를 통해 선거관리위원회와 사법부, 언론을 전방위적으로 저격하더니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매주 반탄집회 ‘세이브코리아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25일 집회에서 “역사적으로 군주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켰다는 사례는 없다”고 말하며 계엄을 옹호하는가 하면, 윤 대통령의 탄핵 가결에 찬성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두곤 “배신자”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전씨는 좀처럼 정치적 발언을 하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상계엄 직후에는 유튜브 영상을 통해 계엄을 ‘미친 짓’이라고 비판했었다. 강의에서는 전봉준이 좌파·민중적 색채가 있어 저평가를 받는다거나, TK(대구경북) 지역의 ‘맹목적 여당 지지’를 비판하는 등의 발언도 했다고 알려졌다. 애초 전씨가 인기를 끈 것은 정치적 발언이 아닌 스토리와 강의력 때문이었다. 경북 경산시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공무원 역사 강의 시장을 석권했다는 입지전적 스토리로 유명해진 것이다. 경북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사학 석사과정을 수료한 그는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특유의 암기비법이 수험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7급 공무원 한국사 시험이 지엽적 출제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 전씨를 끌어당긴 것은 세이브코리아 집회를 주도하는 손현보 부산세계로교회 목사다. 전씨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손 목사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전씨와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작년 이맘때쯤, 우리 교회가 세울 예정이던 대안학교(올해 개교한 부산세계로우남기독아카데미)에서 일할 역사 선생님들을 찾다 만났다. 당시 황현필 같은 좌파 선생들이 역사를 완전히 왜곡하고 있는데, 우리가 일어나서 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유했다. 그해 여름엔 우리 교회에서 청소년을 모아 집회할 때 초청해서 강사로 서 주었다. 이후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영상을 찍어주기도 했다.”
차별금지법 반대 영상이란 손 목사가 지난해 10월 27일 연 집회인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에 전씨가 보낸 것을 말한다. 경찰 추산 23만명이 모인 해당 집회는 동성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손 목사는 전씨가 탄핵 반대 집회에 나오기 시작한 것도 자신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전씨가) 주저하기도 했지만, 세상이 바뀌는 것은 민중이 아스팔트에 나왔을 때였다고 설득해 의기투합했다. 3월이 넘어갈 줄은 몰랐는데, 앞으로도 (헌재) 결론이 날 때까지 집회는 계속된다. 전씨도 토요일(3월 8일) 여의도에 나온다.”
전씨는 당초 3월 1일 집회까지만 참여한 뒤 정치활동을 그만두겠다고 했었다. 전씨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삼일절 집회까지만 나온다는 게 가족들과의 약속이었지만 용서를 구하고 한 번 더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에 참석하는 이유에 대해 “민주당, 언론, 여론조사기관이 합작해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지금 대통령 지지율 조사도 하지 않는 이유를 국민들에 알려야 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정지되었을 때도 지지율 조사를 중단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누가 그러냐, 계속 했었다”고 대답했다. 2016년 당시 대표적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 통과 이후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여론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이승만 정부 양민학살은 왜곡”
전씨는 이제 ‘역사 강사답게’ 한국 현대사의 보수우파 인물을 언급하며 지지층을 사로잡고 있다. 지난 1월 5일 부산세계로교회에서 열린 주일오후예배 강연에서는 “대한민국을 여기까지 올라오게 한 것은 역시 위대한, 훌륭한 지도자가 계셨기 때문”이라며 “공산당과 대화가 안 통한다는 것을 선견지명한 이승만, 그 기준 하에 경제성장을 일궈낸 박정희 덕분에 이만큼 먹고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이승만 하면 독재자, 양민학살 전부 다 왜곡된 것들만 부각시킨다”고도 했다.
물론 이승만 전 대통령이 ‘독재자’라는 평가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부산정치파동에 이은 발췌개헌과 사사오입 개헌으로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고, 자유당이 주도한 3·15 부정선거 이후 4·19혁명으로 하야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후방지역에서 공비토벌을 명목으로 한 양민학살이 있었던 것도 대부분 사실로 입증됐다. 다만 3·15 부정선거에 이 전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고 보는 견해는 드물고, 양민학살 또한이 전 대통령의 책임이 있는지는 따로 따져봐야 할 문제다.
전씨가 광장의 스피커로 태세를 전환한 데는 공무원 강의 시장의 퇴조가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공무원의 인기가 사그라들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 역시 대거 줄었다. 지난해 국가직 9급 응시생만 해도 2020년 대비 44% 감소했다. 전씨가 소속되어 있는 ‘메가공무원’도 지난해 말 모회사 메가스터디가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넥스트스터디에 매각됐다. 특히 역사 과목은 타격이 크다. 7급 공무원, 경찰, 계리직 직군의 한국사 과목이 별도 시험인 한국사능력검정시험으로 대체돼 9급 공무원 시험에만 한국사 과목이 남게 됐다. 애초 수능 한국사가 2017년부터 선택과목에서 필수과목이 되면서 난이도가 급전직하해 강사 수요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대형 회사들도 자본유치에 나서야 할 정도로 자금난에 몰렸다”며 “전체 역사 강사 수요도 수능 선택과목 시절에 비하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다만 전씨는 지난해 말 소속 회사와 5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정성’이 정치적 발언을 주저 없이 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6·25는 미국이 기획, 시나리오 쓴 전쟁”
반대로 황현필씨는 이미 진보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명했던 강사다. 자신은 “보수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주장하지만 대체로 진보진영이 선호할 만한 주장을 내놓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5일엔 국회에서 ‘윤석열탄핵국회의원연대’의 초청으로 강연하기도 했다. 황씨는 전남대 사범대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하고 정교사로 근무하다 인터넷 강의 시장에 뛰어들었다. 수능과 공무원 강의 시장에서 전씨처럼 호사가들이 ‘1타 강사’라고 일컫는 반열에는 끼지 못했지만, 역사교양서를 출간하는 등 본인의 역사적 해석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편이다. 전공자가 아닌 전씨와는 다른 부분이다. 황씨는 전씨가 지난 2월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했을 때, 역시 금남로에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 연단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후 “(전씨가) 나한테 좀 열등의식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공무원 강의를 그만둔 황씨가 ‘다른 진영’에 이름을 알린 것은 그의 2009년 발언이 몇 년 전 조명되면서다. 그는 당시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해 “한국전쟁은 미국이 연출, 각본, 시나리오를 다 짰던 전쟁”이라고 주장했었다. 또 “미군이 비행기 타고 가다가 피란행렬 있으면 ‘포 얼마나 잘 떨어지나 볼까’ 하고 뚝뚝 떨어뜨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씨의 이런 견해는 잘 알려진 ‘남침유도설’과 부합한다.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거나 최소 방기했다는 주장으로, 1980년대까지는 힘을 얻었다. 그러나 6·25 관련 소련 문서 등이 공개되면서 김일성이 남침 야욕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현재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주장이다.
황씨는 논란이 확산된 2020년 사과했지만 주장 자체를 굽히지는 않았다. 황씨는 올해 출간한 자신의 저서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를 통해서도 “미국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남침유도설은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정설로 굳어져 반론조차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역사적 개연성 측면에서 6·25전쟁 발발의 책임을 미국에 어디까지 물을지 고민해보자”고 했다. NL운동권과 유사한 시선으로 역사를 다루는 셈인데, 황씨의 6·25 미국 책임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미국이 한반도를 분단시켰고, 냉전이 이미 시작된 시점에서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했다. 남한에 무기를 제공하지 않아 대북 억지력이 약화됐고, 남한의 병력을 10만명 이하로 제한하도록 했다. 극동방어선 ‘애치슨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해 북한의 오판을 유도(방기)했다.’
이 같은 주장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1948년 9월 북한 정권 수립 직후부터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전쟁을 일으키자고 요청했던 사실이 소련의 기밀문서가 공개되며 알려졌기 때문이다. 애치슨 선언 5일 후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 요청을 거절했다는 기록도 있다. 미군의 철수도 전쟁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방부 군사편찬위원회 관계자는 “미국과 소련의 동시철군은 1946~1947년에 걸쳐 소련이 먼저 주장했고, 이후 미군이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오판하며 철수를 결정한 것”이라며 “애치슨라인 역시 해·공군기지를 중심으로 한 대소련 방어 전진기지를 연결하는 안보망의 개념인데, 이 바깥의 국가(남한)가 군사적 공격을 받을 때 각국의 대처에 맡기는 게 아니라 국제 협력으로 격퇴하도록 했다고 봐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김재엽 성균관대 글로벌미래전략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정말 남침을 유도했다면 전쟁 초반 일본에 있다 급파된 스미스 대대와 24사단이 전멸하는 등 고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냉전 당시는 유럽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상황 속, 미국 입장에서는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간과한 오판을 했다고는 말할 수 있다”면서도 “남침유도설은 결코 정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다년간 수능 출제위원으로 선정됐던 익명의 중등 역사교사는 “어떤 사건을 어느 주체가 유도하거나 방기했다고 ‘추론’하는 것 자체가 의도가 담긴 주장”이라며 “베트남전쟁 같은 경우 통킹만사건이라는 명백한 조작이 있었지만, 한국전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학계나 역사교육계에서 (전씨, 황씨) 두 사람 모두 전문가로 보지 않는다”며 “대중적 인지도, 대중적 선동력이 있다는 게 오히려 문제”라고 말했다. 황씨는 남침유도설에 대한 의견을 묻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 응했지만, 통화 내용이 기사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체제 전쟁 총동원령이 낳은 스피커는
학자들은 전씨와 황씨가 체제전쟁 속에서 발견된 ‘신선한 인물’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본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정상적 대의정치가 무너지고 광장의 정치로 돌아간 상황 속, 광장에서 능한 선동가들의 시장이 열려 있는 것”이라며 “청중의 감정적 욕구를 파고드는 연습이 돼 있는 사람들이기에 새로운 유형의 ‘전사’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레거시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도 이들의 목소리 확대에 영향을 끼쳤다고 봤다. 그는 “엘리트가 언론을 독점할 때는 영향력 있는 학자들을 데려왔지만, 유튜브 시대인 지금은 그런 ‘스피커’들이 꼭 학자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도 ‘정치인이 아닌 인물이 이념을 이야기한다’는 지점이 대중에게 호소한다고 봤다. “정치인의 발언은 권력이나 집단적 이익과 연관돼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들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며 “역사는 구체적, 경험적인 분야란 인식이 있으니 그것과 결합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과거에는 연예인들이 동원됐지만, 그들보다 논리적 설득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양 체제, 진영이 총동원령을 내린 상황 속에서 스피커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돋보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역사강사 최태성씨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1타 강사’로 꼽히면서도 강의를 모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그는 최근의 ‘이념 전쟁’에 관한 주간조선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소회로 입장을 갈음한다고 전해왔다.
“자신의 주장을 마음껏 펼치되,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증오’의 언어로 난도질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왕조 국가의 ‘백성’이 아닌 우리 공화국 ‘시민’들은 ‘증오’의 언어로는 선동되지도, 계몽당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사실에 입각해 논리적으로 주장한다면, 다수의 시민들과 어느덧 함께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광장에서 만날 것을 기대하며 아래 문장을 공유합니다. ‘증오’는 지혜를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