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6일 연금 개혁과 관련해 “모수 개혁이 좀 더 손쉽다면 그것부터 먼저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금 모수 개혁과 구조 개혁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는 종전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하는 ‘선(先)모수 개혁’ 수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내주 열리는 여·야·정(與野政) 국정 협의체에서 본격적인 연금 개혁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권 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국회에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우선 급한 보험료율(내는 돈) 13%부터 확정하고, 소득 대체율(받는 돈)도 가급적 빨리 결정해야 한다”며 “그 다음에 본격적인 구조 개혁에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모수 개혁은 국민연금의 ‘내는 돈’과 ‘받는 돈’ 비율을 재조정하자는 것이다. 여야는 지난 21대 국회 막판 보험료율을 종전 9%에서 13%로 올리는 데 합의했다. 소득 대체율도 44%로 조정하는 것으로 의견을 좁혔다. 그러나 막판에 정부·여당에서 “기초·퇴직연금 등과 연계한 구조 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연금법 처리가 무산됐다. 구조 개혁은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제도 전체를 연계해 손보자는 개념으로, 상대적으로 논의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권 위원장이 이날 ‘모수 개혁 우선 처리’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혀 여야가 모수 개혁에 합의를 이룰 가능성이 커졌다.
국민의힘이 모수 개혁부터 논의하자는 쪽으로 선회한 것은 “연금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점에 정부 측과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4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의 비공개 회담에서 ‘2월 내 모수 개혁 마무리’ 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여야 간에 보험료율을 13%로 인상하는 방안에는 이견이 없고, 소득 대체율도 42~44% 사이로 의견이 좁혀진 상태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보험료율 13% 인상에는 민주당도 동의했고, 소득 대체율 또한 절충이 가능한 수준이라 모수 개혁은 단시간 내에 합의될 수도 있다”면서 “다만 구조 개혁의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차차 논의하는 게 좋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국회에서 연금 개혁을 다룰 주체를 어디로 할지를 두고는 여야 의견이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소관 상임위(보건복지위원회)에서 협의하자고 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모수 개혁 입법은 보건복지위에서 빠르게 결론 내리면 될 일”이라며 “(연금개혁특위를 꾸리자는) 국민의힘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반대로 권영세 위원장은 이날 “연금 개혁에는 여러 부처가 관련된 만큼 특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내주 열리는 여·야·정 국정 협의체에서 연금 개혁 문제를 집중 논의하기 위해 민주당과 물밑 실무 협의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연금 개혁에 유연한 입장을 내놓은 것처럼, 향후 정책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했다. 권 위원장도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보수 정당으로서 좌파·중도 쪽으로 간다는 그런 방향성이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다”라며 “정책을 통해서 우리 당이 쇄신된 모습을 보여야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도층과 일반 국민의 요구가 있는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심에) 소구할 것”이라고 했다.
권 위원장은 “경제 민주화보다는 경제 자유화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경제 민주화를 오독(誤讀)하다 보면 지나치게 규제가 많아진다”며 “지금은 대기업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부정 선거 의혹에 대해선 “현재 선거 시스템에 국민이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사전 투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모수 개혁·구조 개혁
모수 개혁은 연금 가입자가 소득 대비 납부하는 보험료 비율(보험료율·내는 돈)과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의 비율(소득 대체율·받는 돈)을 조정하자는 개념이다. 구조 개혁은 국민연금을 기초·퇴직·직역 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금과 연계해 노후 소득 보장 구조를 새로 설계하는 작업이다. 지난해 정부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3%까지 인상하고, 소득 대체율은 42%로 유지하는 내용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