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월 27일 임시공휴일을 포함한 설 명절 연휴를 앞두고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일부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민생지원금 명목의 지역화폐를 살포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특히 나이나 소득에 따른 구분 없이 지역민들에게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는 일부 지자체 가운데는 지난해 재정자립도가 10%가 채 안 되는 곳도 상당수인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히 다른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왜 남의 동네 주민들이 낸 혈세로 자기 동네 주민들에게 뿌리느냐’란 볼멘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에서는 ‘세금을 많이 내는 동네는 왜 지원금을 안 주느냐’라는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설 연휴에 앞서 1인당 20만원을 ‘민생안정지원금’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전북 진안군은 지난해 재정자립도가 6.69%에 불과했다. 1인당 각각 30만원씩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전남 보성군의 재정자립도는 7.61%, 전북 남원시의 재정자립도는 8.68%, 전북 정읍시의 재정자립도는 9.69%에 불과하다.
1인당 50만원을 ‘일상회복지원금’ 명목으로 지급하기로 한 전북 김제시의 지난해 재정자립도 역시 10.02%로 10%에 겨우 턱걸이했다. 전북특별자치도에 속한 이들 4개 시군(진안·남원·정읍·김제)의 재정자립도는 전북 전체 재정자립도(23.51%)에 비해서도 낮다.
심지어 재정자립도가 11.72%에 그치는 전남 영광군은 설 명절을 앞두고 50만원을 지급하고, 오는 추석 명절에도 50만원을 별도 지급하기로 했다. 전남에 속한 나주시(16.79%), 영광군(11.72%), 보성군(7.61%)의 재정자립도 역시 전남 전체 재정자립도(24.4%)보다 낮은 수준이다.
재정자립도 6.69%인데 1인당 20만원
지방에 있는 이들 지자체보다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양호한 경기도 광명시와 파주시 역시 각각 1인당 10만원의 지원금을 설 연휴를 앞두고 주민들한테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광명시와 파주시의 재정자립도는 각각 34.75%와 29.71%로 지원금을 뿌리는 전남북 소속 지자체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경기도 전체 재정자립도(55.09%)에는 못 미친다.
다만 이들 수도권 지자체는 인구 등을 감안해 지원금 액수를 1인당 10만원 수준으로 결정했다. 파주시와 광명시의 인구는 각각 51만명과 27만명에 달한다. 만약 51만명에게 1인당 10만원씩을 지급할 경우, 줄잡아 510억원이란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간다. 설과 추석을 통틀어 1인당 100만원씩 지급하는 영광군(인구 5만2000여명)과 비슷한 돈이 한 번에 들어가는 셈이다.
이들 지자체가 지역 주민들에게 지원금을 주며 내세우는 명분은 ‘민생회복’ ‘일상안정’ 등 제각각이다. 아울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4월 총선 때부터 줄기차게 주장한 ‘전 국민 1인당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공약에도 보조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설 명절 지원금을 살포하는 지자체장들은 모두 민주당 소속 초·재선 기초지자체장으로 파악됐다. 자연히 ‘집안살림 파악도 하기 전에 돈부터 쓰고 본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특히 설과 추석 명절을 합쳐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장세일 전남 영광군수는 지난해 10월 16일 재보궐선거를 통해 군수에 당선된 지 불과 100일도 채 안 된 상태에서 설과 추석 명절에 100만원이란 거금을 주민들에게 지급하기로 하는 ‘통 큰’ 결정을 내렸다. 이에 ‘당선축하금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반면 지자체장 3선 연임 제한에 걸려 오는 2026년 지방선거에 출마가 불가한 3선 지자체장 가운데 설 지원금 살포 대열에 합류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들 민주당 지자체장들은 이재명 대표의 대표정책인 ‘지역화폐’ 공약에 맞춰 대부분 지역으로만 용처가 제한된 ‘지역화폐’ 형태로 지원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이에 차기 지방선거 재공천을 노린 포석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올해 예산안에 1조원가량의 지역화폐 반영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지난 1월 22일 지역화폐에 정부 재정 지원을 의무화한 법안을 재차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지자체 마음대로 발행하고 용처조차 제한된 지역화폐를 정부가 왜 재정으로 보조해야 하는지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은 아직까지 못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자체장이 자기 주머니 속 쌈짓돈처럼 나눠주는 지원금이 오는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매수를 노린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4월 총선 직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발표해 총선에서 톡톡한 효과를 본 적이 있다. 그나마 당시는 코로나19 팬데믹이란 특수상황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당시도 유권자 매수 논란이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됐었다.
석종근 한국선거행정사협회장은 “공직선거법상에는 선거운동기간 중에는 기공식조차 못하게 한다(제86조)”라며 “대상, 방법,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한 조례가 없다면 명백한 기부행위”라고 지적했다.
지자체 파산제 검토해야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장이 자기 주머니 쌈짓돈처럼 세금을 쓰는 방만한 재정운영을 막기 위해서라도 ‘지방자치제’의 도입 취지에 부합하는 ‘지자체 파산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지자체가 파산할 경우, 상하수도 등 최소한의 공공서비스만 남기고 해당 지자체의 공무원 등을 감원해야 한다.
설 연휴를 앞두고 지원금을 지급하는 일부 지자체 가운데는 서울의 1개 아파트 단지보다 못한 인구를 거느리고 있는 곳들도 허다하다. 1인당 20만원을 지급하는 전북 진안군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인구가 2만4000여명에 불과하다. 전국 최대 읍으로 쌍벽을 이루는 경남 양산시 물금읍(11만여명)이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11만여명)의 5분의1
가량이다. 설과 추석을 합쳐 주민 1인당 100만원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전남 영광군의 인구 역시 5만2000여명에 불과하다. 이 정도 인구면 인근 기초지자체와 통폐합해 읍이나 면으로 격하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셈이다.
하지만 군(郡)이라는 이유로 매번 지방선거 때마다 군수와 군의원을 따로 뽑는 등 과도한 대표권을 누리는 데 따른 상당한 선거비용과 행정비용을 치르는 실정이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과)는 “도대체 설 명절 지원금 재원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며 “각 지자체가 선심성 예산편성을 못하도록 행정안전부나 각 정당에서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