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지난 1월 15일 체포됐다.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 피의자’는 처음 있는 일이다. 윤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압송돼 조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43일 만이다. 윤 대통령이 피의자로 전환되면서 계엄 이후 전개된 혼돈의 정국은 2막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이제 시선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향한다.
“윤 대통령 체포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린다.”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제 신속하게 헌정 질서를 회복하고 민생과 경제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그간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적대적 공생으로 얽혀왔다. 윤 대통령의 리스크는 이 대표를, 이 대표의 리스크는 윤 대통령을 살렸다. 죽일 듯 서로를 공격하지만 서로를 살리는 ‘역설의 정치’였다.
윤 대통령 체포된 날, ‘이재명 테마주’도 급락
한쪽이 날아갈 위기에 처하면서 둘의 공생 관계도 이제는 끝났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이 시선에서 사라지는 게 이 대표에게 정치적 유리함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지난 1월 15일 이 대표의 테마주들은 일제히 10% 이상 급락했다. 가장 예민하다는 자본의 움직임은 이 대표에게 긍정적이지 않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는 여론조사가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격차가 계엄 전 구도로 돌아왔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한두 개의 조사라면 튀는 거지만 여러 개 조사라면 이건 추세다. 문제는 이런 현상을 두고 하나의 원인으로 딱 짚어 말하는 게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줄어든 정당 지지율 격차를 두고 양당 내에서도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난 1월 10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정당지지도에서 더불어민주당은 36%, 국민의힘은 34%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내 접전이다. 이전 조사였던 12월 셋째 주 때 민주당은 48%, 국민의힘은 24%였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월 9~10일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추이가 관찰된다. 민주당은 42.2%, 국민의힘은 40.8%로 나타났다. 같은 기관 계엄 전 조사(11월 25~29일)에서 양당의 격차는 12.9%(민주당 45.2%, 국민의힘 32.3%)였다. 계엄 전으로 되돌아간 정당 지지율을 두고 양당 모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당지지율이 오른 국민의힘 쪽은 반색할 만한 결과이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들린다. 다만 자신들이 잘해서라기보다, 상대가 못해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힘을 얻는다. 선거 기획에 여러 번 참여했던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흐름은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올라가고 민주당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보수 결집이라고 볼 수 있지만 결집의 계기를 준 건 상대의 실책 때문 아니겠나”라고 봤다. “과표집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갤럽이나 리얼미터나 모두 일정 부분 보정을 하는데 그렇게까지 유의미할까 싶다. 탄핵을 반대하지만 피할 순 없을 것 같다는 체념적 보수 여론들이 그동안 있었다. 이런 여론이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이재명은 안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 일종의 전망적 투표현상을 담는 의견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같은 질문을 민주당 당직자에게 물었다. 그도 그런 흐름은 인정하면서도 “표본 때문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들 중 ‘보수’라고 답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계엄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일이 진행되다 보니 윤석열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의 농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요즘의 여론조사는 단순한 정당지지도가 아니라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진영 간 결집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대표에 대한 반감을 갖는 보수 지지층이 그런 생각을 강하게 조사에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직후, 여론조사기관마다 약간의 오차는 있었지만 탄핵 찬성 비율은 약 80%에 가까웠다. 지금은 이 수치가 떨어졌다. 탄핵이 인용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60%대로 낮아진 경우도 나온다. 어떻게 해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됐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대응을 잘한 걸까. 계엄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사람이 늘어나서일까. 이런 것보다는 민주당의 대응이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앞선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수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것보다 ‘이재명은 안 된다’가 더 폭넓게 자리하고 있는 정서인 것 같다. 민주당의 책임, 이재명의 책임이다라는 시각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서 ‘능력>도덕성’ 증명 못한 민주당
여론조사에서 보수 과표집 현상이 일어났다면 그런 과표집이 왜 일어났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수도권의 한 민주당 초선의원은 “지역에서 당이 대처하는 걸 두고 뭐라고 하시는 분들이 좀 있다”고 말했다. “이분들은 민주당이 과하게 대응했다고 본다. 제가 봐도 지도부가 전략적 인내를 해야 할 장면들이 있었는데 참기보다는 강경 발언이 튀어나왔다. 이성윤 의원이 1차 체포영장 집행이 실패하자 총을 맞더라도 집행하라고 했고 정청래 의원은 윤 대통령이 사형 선고를 받을 거다라고 했는데 굉장히 과한 언어들이다. 탄핵에 찬성하던 중도보수 입장에서는 이재명과 민주당에 안정감을 갖지 못하고 여론조사에서 이탈해 버린 것 같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주간조선은 후보군 10명을 놓고 ‘호감’과 ‘비호감’의 이유를 물었다. 보통 여론조사에서 호감도 조사는 지지율보다 근본적인 선호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이 대표에 대한 호감 이유는 ‘자질과 능력이 뛰어나서’(71.0%)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비율에서 보듯 다른 이유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특히 40~60대에서는 그의 자질과 능력을 호감의 이유로 꼽은 비중이 80% 전후에 달했다.
반면 비호감 이유도 압도적이다. ‘도덕적이지 않고 청렴하지 않아서’(59.3%)였다. 연령·지역·이념·지지정당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에서 비호감의 원인을 이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 대표와 도덕성 논란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이 대표를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도덕성 논란을 현실화했다. 이 대표를 향한 내외의 불신은 여기서 비롯된다.
비호감을 줄일 수 없다면 호감을 증폭시켜야 한다. 탄핵 정국에서 민주당이 정책 역량과 국정운영 역량을 제대로 보여 능력이 우위에 서면 됐다. 당의 역량은 곧 대표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런데 민주당의 움직임이 과연 그러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우상호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는 탄핵과 특검 등을 모두 이끌어냈다. 당시를 기억하는 민주당 당직자는 “우 의원이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촛불집회 속도에 맞춰 강경하게 나가면 무위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진영 대결로 가면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당시는 의석 수가 지금보다 적었을 때라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키려면 새누리당에서 40석 정도를 합류시켜야 했다. 그러려면 그쪽도 납득할 수 있는 정도의 안이 필요했다. 진영 대결이 되면 비박계가 넘어오기 어렵지 않겠나. 우 의원이 진영 대결 인상을 피하기 위해 당시 유력주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 측에도 한발 물러서 계시라고 요청했고 그쪽도 이를 수용했다.”
반면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은 의회의 영역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많다. 이번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현실적으로 특검법들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실질적으로 윤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수사를 통해서 밝혀지도록 해야 했다. 이는 협상의 기술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1차 특검법은 국회에서 부결되고 말았다. 박찬대 원내대표와 박성준 수석부대표는 대표적 친명계 인사다. 이들은 협상보다 강경일변도 전략을 펼쳤고 국민의힘은 자기 방어 기제를 작동시켰다. 내란 동조 세력이나 방조 세력이라는 단어가 쏟아지는데 협상이 이루어지긴 어렵다. 당 일각에서는 “원내 지도부가 아니라 대변인처럼 행동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빠른 심리를 이유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한 것도 논란을 낳았다. 탄핵 반대 세력에 명분을 제공하며 결집할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줬다. 내란 특검법에는 외환죄를 추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했는데 이 때문에 국민의힘 내 이탈표를 차단해버린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협상과 합의가 사라지면서 불안정한 정국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피로감은 여론에 반영됐다.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 평가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탄핵 찬성자 중 절반만 이재명 지지
최근 불거진 카톡 관련 논란은 실효성을 떠나서 과연 바람직한가의 문제를 따져봐야 한다. ‘내란 선전’ 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퍼나르는 것은 나쁜 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헌법의 취지를 침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실의 보좌관은 “온 국민이 쓰는 카톡이다 보니 국민들의 예민함이 매우 큰 게 문제다. 이걸 바로잡지도 않고 거둬들이지도 않는다. 검열은 나쁘지만 내가 하는 검열은 괜찮다로 이해되는 것 아닌가. 내가 하는 건 더 선하다는 의식이 민주당이 매번 받는 비판인데 그 부분을 또 자극해버렸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이 대표의 지지율은 압도적이다. 다만 의아스러운 부분도 있다. 이번 한국갤럽 조사 중 ‘장래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대표는 32%를 얻어 독주체제를 갖췄다. 차기로 거론되는 여야 후보들 중 이 대표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선호도를 얻은 이는 김문수 노동부 장관인데 8%를 얻는 데 그쳤다. 반면 탄핵 국면 속 야당의 대표 주자인데, 탄핵 찬성의 지지를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위험신호다.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은 64%였다. 그런데 탄핵 찬성 응답자 중 49%만이 이 대표를 지지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으로 탄핵됐다면 윤 대통령은 불법 계엄에 의한 내란 혐의를 받고 있다. 체감에서 후자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런데도 탄핵 찬성 그룹의 절반만 지지자로 흡수했을 뿐, 절반은 이 대표의 바깥에서 존재한다.
이슈와 구도는 유리해도 더욱 커진 리스크는 이 대표의 확장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8년 전 문재인 후보는 발목을 잡던 ‘친문 패권’ 프레임을 해소하기 위해 비문계 인사들을 캠프에 대거 합류시켰다. 이 대표도 친명계 ‘일극’이라는 지적이 확장성을 가로막는다. 지지자들에겐 상관없는 이 문제는 중도층에게 ‘독주’ 이미지를 심고 있다. 다만 8년 전 민주당은 계파 연합이 가능한 구조였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비명계가 설 자리를 잃은 상태다. 포용 의지가 있어도 표용의 대상이 마땅치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거 문재인 후보에게 없던 사법리스크가 이 대표에게는 상수라는 점이다. 이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선거법에서는 항소심과 최종심을 각각 3개월 안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2심 판결은 2월, 최종 판결은 5월까지 선고돼야 한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1월 15일, 이날 법원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사건을 맡은 재판부에 새로운 사건을 배당하지 않기로 했다. 재판의 속도전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 대표가 확장을 꾀하는, 선거 승리에 필수적인 중도 유권자들은 ‘심판 선거’ 속성이 강하다. 이들은 스윙보터로 분류되지만 그들을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동력은 이전 정부의 잘못에 대한 심판이다.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상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야당 후보를 지지할 준비가 된 그룹이지만 재판 중인 후보가 야당의 간판이 되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민주당은 이런 현실적 불안감을 안고 대선 레이스에 나서야 한다. 한 야권 관계자는 “나는 이 대표가 만약 후보가 아니라면 민주당이 더 압승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보지만 그게 어디 쉽겠나”라고 말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정치외교)는 “민주당 입장에서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이 대표가 선거법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안타깝지만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자고 나서는 경우”라며 “친명 체제를 극복하자며 권력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여럿 나서는 그림이 가장 좋지만 그러기엔 너무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2심 판결 뒤 중도 민심의 움직임이 관건
민주당 안팎에서는 2심 이후 나올 대응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대응 정도에 따라 중도 민심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서다. 친명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 판결 자체에 부담은 있지만 이 대표의 연성 이미지화가 필요하다. 과한 걱정을 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중립 성향의 한 관계자는 “1심 선거법 판결 때처럼 판결을 강하게 부정하는 일들이 벌어지면 자칫 선별적 법치 거부로 비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의 법치 무시와 오버랩되는 건 최악의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민주당의 이 대표 지키기는 오히려 국민의힘의 활로가 될 수 있는 역설적 상황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여당이 기대고 있는 지점이다. 국민의힘의 한 전략통은 “선거법 2심 판결이 나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선거법은 판례가 엄청나게 많아서 앞선 판결이 잘 엎어지지 않는다. 2심에서도 유죄가 나올 경우 지금 이 대표 쪽에 몰려있는 중도·무당층의 지지가 떨어져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 유권자 중 정치인의 흠결에 가장 냉소적이고 사법적 판단을 존중하는 경향이 강한 그룹이 중도·무당층이다. 2심 판결에 따라 중도층이 민주당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소속 의원들에게 ‘조기 대선’에 관한 언급을 자제하라고 요청했다. 대선의 ‘ㄷ’도 꺼내지 말라는 얘기였다.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기 대선을 언급하는 순간 오만과 독주의 프레임에 걸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런 자제령 속에 다른 주자들이 출발을 머뭇거리는 동안 이 대표의 대선 준비는 차근차근 속도를 내고 있다. 총선과 전당대회 등 여러 선거에서 ‘이재명 친위대’로 불리던 더민주혁신회의도 전국 조직을 구축 중이다. 지난 1월 11일에는 부산에서, 다음 날인 12일에는 전북에서 지역 출범식을 열고 조기 대선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이 대표는 중도의 불신을 극복할 수 있을까. 윤 대통령과의 공생 관계가 청산된 뒤 남은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