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2일 네 번째 대국민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발동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을 호소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담화의 상당 부분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비정상’을 주장하는 데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담화 중반 “제가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결단을 내리기까지, 그동안 직접 차마 밝히지 못했던 더 심각한 일들이 많이 있었다”며 선관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지난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되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탄핵표결을 앞둔 상황에서까지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가 평소 우리나라 선거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후 일부 보수 진영에서 주장해 온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진상을 밝히기 위해 물밑에서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작업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 국군방첩사령부(방첩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에서 사실상 해체에 가깝게 손발이 잘렸던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윤석열 정부 들어 방첩사로 이름을 바꿔 부활했다. 기무사 개혁 과정에서 일선 부대로 내쫓긴 1000명에 가까운 요원들이 윤석열 정부에서 복귀했고, 반년 가까이 조직을 복원하는 작업을 벌였다. 이후 방첩사는 기무사 시절보다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3월 22일 윤 대통령이 방첩사를 비공개 방문한 후 약 한 달 만인 4월 18일 방첩사가 ‘부정 선거’ 의혹을 수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대통령령(국군방첩사령부령 대통령령 제33409호 일부개정령)을 시행한 것이다.(12월 9일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 ‘[단독] 尹, 방첩사 방문 후 부정선거 수사 가능하게끔 대통령령 개정’ 참조) 방첩사는 이로부터 1년6개월 후에 벌어진 ‘12·3 비상계엄’ 사태 과정에서 투입한 병력 중 가장 많은 인원을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보내서 부정선거 관련 자료를 확보하려 했는데, 이 개정령에 따른 활동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윤 대통령 방문 직전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방첩사를 방문해 충암고 출신 영관급 장교들과 함께 식사를 했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때 시행된 방첩사 일부개정령에는 방첩사의 주요 직무 중 군 보안 업무에 ‘사이버’ 등에 대한 업무를 새로 포함시켰다. ‘국가사이버보안’과 관련한 일상적인 활동은 ‘정보통신기반 보호법’이나 ‘국가사이버안전관리규정’ 등에 포함되어 있는 관련 개념 정의나 세부 내용들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개정령에는 이런 상위 또는 유관 법령에 따른 근거나 정의 규정조차 전제하지 않은 채, 포괄적인 ‘사이버’ 개념을 넣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이 개정령에서 방첩사의 지원 업무에는 ‘대테러·대간첩 작전 지원’ 조항도 신설됐다.
지난 6월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는 이 조항이 ‘누락된 직무의 수행 근거를 명문화’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이 개정령에 따라 방첩사는 사이버 테러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작전을 수사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전직 국가정보원 인사는 해당 개정령에 대해 “최대한 포괄적으로 개정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등 적성국 공격이라는 명분하에 충분히 선거범죄까지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정 선거를 위해 예컨대 디도스 공격을 했다든지, 선거 전산망에 해킹을 했다든지 하면 사이버 테러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방첩사는 지난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경기도 과천시 소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와 수원 선거연수원에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와 함께 투입됐다. 익명을 요청한 군 관계자에 따르면 “정보사가 체포조 역할을 한다면, 방첩사는 서버 확보 능력을 갖춰 선관위에 더 많이 투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성우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은 지난 12월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 출석해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중앙선관위에 있는 전산실 서버의 복사 및 확보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한 방첩사 내부 행정 규칙 목록에 따르면 2022년 ‘디지털 포렌식 규정’이 새로 제정됐다. 디지털 포렌식 수사규정은 문재인 정부의 ‘국가안보지원사령부(안지사)’ 시절 처음으로 제정됐으나, 윤석열 정부 들어 2번 개정된 바 있다. 2차 개정은 지난 10월 11일 이뤄졌는데, 수사관에 대한 자격과 근거 등 법적 근거를 추가하고 규정을 구체화했다.
개정으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시점에는 방첩사가 ‘국방 기관 최초’로 ‘디지털포렌식’ 국제공인시험기관 인정을 획득해 국제 수사기관과 동일한 증거물 능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디지털포렌식은 PC, 휴대전화 등 저장매체나 인터넷상에 남아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이다. 국내에서 국제공인시험기관 인정을 받은 공공 기관은 경찰청 디지털포렌식센터, 대검찰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부다.
개념 모호한 ‘사이버테러’ 수사 추가
이외에도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해당 개정령은 방첩사의 사령관과 부대장이 직무상 대부분의 군 정보를 관장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장시켰고, 사령부에 두는 군인과 군무원의 정원 비율을 제한하는 규정을 삭제해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출신의 군인들을 대거 복귀시킬 수 있게끔 한 것으로 확인됐다.
우선 이 개정안에 따라 방첩사는 군에 관련한 거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작성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개정 전 방위산업체, 국방과학연구소 등 ‘방위사업’과 ‘국방과학연구’에 관련한 기관에 대한 정보에 한해 방첩사가 수집, 작성, 처리할 수 있었다면, 개정 후에는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각군, 합동부대, 병무청 등 주요 군 기관 또한 그 대상에 포함된 것이다. 국방부는 그 이유에 대해 ‘직무 수행 범위 및 대상을 구체화했다’고 밝혔지만,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없던 대상을 ‘추가’한 것인데 ‘구체화’로 뭉개고 있다”며 “확대했다고 하면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예상돼 그리 작성한 듯하다”고 해석했다.
정보 관장 직무에 대한 방첩사령관의 권한 또한 신설됐다. 방첩사령관은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동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과 같은 역할이라 볼 수 있다. 사령관은 개정령에 따라 직무 범위 내의 직무 수행에 필요한 자료 제출을 언제든지 대부분의 군기관에 요청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 권한을 가지게 된 인물에는 사령관뿐만 아니라 사령부 내 사령관의 업무를 보좌하기 위한 사령관 소속 부대 및 기관의 부대장도 포함된다. 국방부 본부 및 국방부 직할부대·기관의 국군방첩부대, 합동참모본부 및 각 군 본부의 국군방첩부대, 국방부장관이 정하는 부대의 국군방첩부대, 정보보호부대, 방위사업청의 국군방첩부대 소속 부대장에게 직무범위 내 정보 수집 작성 처리 권한이 주어지게 됐다.
직무 중 軍 정보 관장 가능하게 돼
특히 개정 전에는 대통령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군 정보를 대통령실이 요청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개정령에는 방첩사의 직무 중 ‘공공기관의 장이 법령에 근거하여 요청한 사실의 확인을 위한 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또한 신설됐다. 지난 6월 부승찬 의원실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또 다른 자료에 따르면, 이 신설조항에 근거해 대통령실은 군 관련 자료를 받았다. 국방부는 자료에서 “대통령실(공직기강비서관실)로부터 장군 진급 및 주요 보직 예정자 등 대통령 임명 직위 인사 검증을 위한 군 관련 자료를 요청받아 회신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방부는 개정 이유에 대해 “누락된 직무 수행의 근거를 명문화”한다고 밝혔지만, 앞서의 전직 국정원 인사는 “국정원을 포함한 국내 어느 조직도 군 관련 업무를 요청할 수 없도록 문재인 정부에서 막아놨었는데, 이것을 다시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의 전직 국가정보원 인사는 “(해당 개정안이 사령관의 업무 등 여러 조항을 신설한 것은) 감옥에 안 가려고 명문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방첩사의 전신인) 기무사가 기존에 수십 년간 해왔던 업무들도 포함돼 있고 (규정에 없는 내용도 수행하기 때문에) 방첩사의 직무에 대해 규정만을 보고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아예 법으로 돼 있으면 (계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에) 빨리 만들자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기무사 출신 군인 대거 복귀
개정령에 따라 방첩사령부에 두는 군인의 구성 및 정원 또한 국방부 장관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게 됐다. 방첩사령부에 두는 군인과 군무원의 정원 비율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국방부는 ‘효율적 인력운영이 가능하도록 정원 규정을 개정했다’고 밝혔지만, 개정으로부터 열흘 정도 지난 시점인 2023년 4월 18일, 문재인 정부에서 불법사찰 등의 논란으로 쫓겨났던 기무사 출신 현역 군인들이 방첩사로 대거 돌아왔다.
한상희 교수는 “민간인 신분으로 군대 업무를 수행하는 군무원을 법에 따라 일정 비율로 두게 만든 것은 방첩사의 권력에 대한 내부적인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수단이었다. 군인만으로 구성이 되면 상명하복 체계에서 방첩사의 권력이 밀실성을 갖추고 강화된다. 그래서 외부 인사가 들어가게 만듦으로써 미약하나마 좀 견제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든 건데 그걸 없애버린 거다”라고 해석했다.
이 개정령이 2022년 11월 입법 예고되었을 당시 ‘민관 사찰이 부활할 가능성’ ‘군의 정치 개입이 합법화될 가능성’ 등이 제기되며 논란이 됐다. 그러나 국방부는 “신기술 도입에 따른 직무수행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직무 범위를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며, 3불 원칙(△정치관여 행위 △직무를 벗어난 민간사찰 △권한 오·남용 금지)은 변함없이 유지할 것”이라고 논란을 일축했다.
이 개정령 시행 한 달 전인 2023년 3월 윤석열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31년 만에 방첩사를 비공개 방문했다. 이때 방첩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초의 일이었다. 3월은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우종수 국가수사본부장이 방첩사를 방문해 업무협력을 하기로 했고, 충암고 일부 영관급 장교들과 함께 식사를 한 시점으로도 알려져 있다. 개정령 시행 한 달 후인 2023년 5월 16일에는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계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이끄는 대통령 경호처가 경호 업무를 수행하는 군경찰을 관계기관의 장과 협의해 지휘, 감독할 수 있게 하는 ‘대통령경호법 시행령’이 공포됐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주간조선에 “정보·수사 국가기관 중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기관은 방첩사령부뿐이다. 게다가 방첩사 시행령 직무는 역시 시행령인 방첩업무 규정에서 규율하고 있어 법과 국회의 통제가 미치지 못했다”라며 “이 법적 미비에 기대어 보안사·기무사 그리고 방첩사까지 대부분 사령관들은 이른바 ‘통수권 보좌’라는 미명하에 대통령과 특수관계를 맺고 수없이 정치개입과 불법행위를 자행해 왔다. 이 관계를 끊을 수 있는 개혁이 이번에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