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5개월이 됐으나 여야는 여전히 사안마다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여야가 공교롭게도 액상형 전자담배와 관련해서는 비슷한 내용의 입법안을 내놓아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조~3조원에 달하는 액상 전자담배 시장은 현재 95% 이상이 중국산 불법 니코틴을 사용한 액상담배가 장악하면서 탈세의 온상으로 꼽힌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유해성 검증을 거쳐 금연보조제로 다뤄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담배’란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문제는 관계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가 이어지면서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했다는 점이다. 그동안 감사원이 이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으나 여전히 시장 자체가 혼탁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의원들이 합성니코틴도 담배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하지만 혼탁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규제하려는 이 법안들이 KT&G 같은 대기업의 배만 불리는 법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간조선 취재에 따르면 지난 7월 15일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시작으로 김태년, 남인순, 전진숙 의원(이상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김선민 의원,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 등이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각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의 핵심은 ‘연초의 잎’으로만 정의하던 담배에 ‘니코틴’이라는 용어도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코틴을 담배로 정의해 규제해야”
우선 담배사업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현재는 ‘‘담배’란 연초(煙草)의 잎을 원료의 전부 또는 일부로 하여 피우거나, 빨거나, 증기로 흡입하거나, 씹거나, 냄새 맡기에 적합한 상태로 제조한 것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이에 박성훈 의원은 ‘연초의 잎’을 ‘연초 및 니코틴’으로 개정하는 내용을 발의했다. 다른 의원들도 박 의원의 개정안과 비슷한 맥락이다. 김태년 의원은 기존 법안에 ‘원소·화합물 및 그에 인위적인 반응을 일으켜 얻어진 물질을 합성하여 인공적으로 제조한 니코틴’ 또는 ‘니코틴 이외의 물질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제안했다. 김선민 의원의 경우 ‘연초의 잎’을 ‘연초나 니코틴’으로 하도록 발의했으며, 한지아 의원은 ‘연초의 잎, 줄기, 뿌리 등 또는 니코틴’으로 법안을 제출했다. 남인순 의원은 ‘연초 또는 니코틴(원소·화합물 및 그에 인위적인 반응을 일으켜 얻어진 물질을 합성하여 인공적으로 제조한 니코틴을 말한다)’으로 제안했으며, 전진숙 의원 역시 ‘잎, 줄기, 뿌리 등 연초나 니코틴’이라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모두가 하나같이 담배를 정의하는 데 니코틴을 포함시킨 것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원들이 니코틴을 담배 정의에 넣으려는 것은 ‘합성 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담배는 ‘연초의 잎’을 원료로 포함한 것만 인정된다. 따라서 화학물질로 만든 ‘합성 니코틴’ 담배는 법적으로 담배가 아니다. 이렇다 보니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액상형 전자담배의 경우 규제에서 벗어나 젊은 층과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면적으로 이들 법안의 목적은 과세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합성 니코틴 담배는 법적으로 담배가 아니기 때문에 과세가 되지 않는다. 반면 담배로 분류되는 ‘천연 니코틴’ 액상의 경우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국민건강증진부담금, 개별소비세 등 1㎖당 1800원 수준의 세금이 부과된다. 소비자들이 가장 흔하게 찾는 30㎖ 크기의 니코틴 액상을 기준으로 하면 약 5만원 이상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다.
합성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에도 제대로 과세할 경우 수조원에 달하는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0월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송언석 의원이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식약처, 전자담배협회에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합성 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에 부과하지 못한 제세 부담금은 2022년 9891억원, 2023년 1조1249억원, 2024년(8월 기준) 7397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전자담배용 합성 니코틴 용액과 원액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제세 부담금 추정치다. 이런 상황에서 업체들은 탈세를 노리고 천연 니코틴을 합성 니코틴으로 저렴하게 속여서 판매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국내 업체들의 꼼수는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업체들은 과세당국의 추징을 벗어나기 위해 천연 니코틴을 ‘연초 줄기’ 또는 ‘뿌리’ 니코틴으로 속여 과세 대상에서 벗어났다. 즉 ‘연초 잎에서 추출한 니코틴만 담배’라는 정의를 악용해 ‘줄기 니코틴’이란 단어를 만들어 이를 시장에 내다팔았다. 그러나 그동안 감사원과 경찰, 국립과학수사원,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의 검사에서는 줄기에서 추출한 니코틴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과세 위기에 몰린 업체들은 이후 줄기 니코틴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합성 니코틴이란 단어를 사용해 소비자들에게 팔았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합성 니코틴 중 식약처의 유해성 검사를 통과한 제품은 특허를 받은 곳에서 파는 제품 하나뿐이다. 하지만 업체들이 유해성 검사도 통과하지 않은 가짜 합성 니코틴을 시장에 마구 출시하면서 액상 전자담배 시장을 대부분 가짜 제품이 장악해버렸다. 액상 전자담배 업계 모 관계자는 주간조선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젠 ‘합성 니코틴으로 속여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다’는 범죄의식이 만연해진 수준”이라고 말했다.
“본질은 법 개정이 아닌 단속”
합성 니코틴으로 둔갑시켜 탈세를 통해 큰 수익을 얻는 현상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논리는 매우 그럴싸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충분히 단속할 수 있었는데도 제대로 행정 절차를 집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특히 천연 니코틴을 외국에서 들여오는 통관 절차에서부터 환경부에 화학물질을 신고하는 절차, 소비자에게 최종 유통하는 과정까지 충분히 적발하고 처벌할 수 있었는데도 제대로 단속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이제 와서야 니코틴 전체를 담배로 정의해 제약을 가하는 것은 이제껏 국가기관과 경찰이 무책임하게 일관해 온 태도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니코틴 수입 과정 단속과 관리 부실에 대한 지적은 감사원이 2019년 발표한 ‘연초 줄기·뿌리 추출 전자담배 니코틴 용액의 수입 및 관리 실태’를 통해 이미 공개된 바 있다. 당시 감사원 보고서에는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합성 니코틴이 대부분 천연 니코틴, 즉 사실상의 담배라는 내용이 담겼고 이에 따른 관련 기관의 시정 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내용도 함께 담겼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국세청, 관세청, 환경부 등 관련 부처들은 모두 감사원 감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현재와 같이 시장이 혼탁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간조선이 확인한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관세청과 환경부, 그리고 보건복지부까지 관련 부처들은 모두 니코틴 수입 및 관리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우선 관세청은 관계 법령에 따라 세관장이 신고·납부한 세액에 과부족이 있는 경우 그 세액을 경정해야 하며, 수출입업자에 대해 구체적인 탈세 제보가 있는 경우 관세자료 또는 물품을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업체들이 연초 줄기나 뿌리에서 추출한 니코틴을 수입 신고 과정에서 사실과 다르게 신고한 경우에도 관세청은 별다른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업체들을 대상으로 허위 신고 및 탈세 여부를 조사해 조치하는 등의 방안이 미흡했던 것이다.
관세청을 속여 니코틴이 국내 반입에 성공한 경우라도 환경부가 통제할 수 있었다. 화학물질 관리 등의 업무를 담당 및 총괄하는 환경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니코틴과 그 염류 및 그중 하나가 1% 이상 함유된 혼합물에 대해 유독물질로 지정 및 고시할 수 있다. 따라서 화학물질 제조 및 수입 업체는 해당 화학물질이나 그 성분이 유독물질에 해당하는지 등을 확인하고, 관련 내용이 포함된 확인명세서를 환경부에 제출해야 한다. 감사 당시 줄기 니코틴을 1% 미만으로 함유했다고 표기한 10종의 용액을 임의로 선정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5개 제품에서 1%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관련 업체들을 대상으로 관계 법령 위반 여부를 조사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앞서 액상 전자담배 업계 관계자는 “니코틴을 처음 수입할 때 거치는 관세청부터 허위 서류를 통해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혹여나 이렇게 들어온 니코틴에 대해서도 환경부에 화학물질관리법 등으로 신고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피해가는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2019년 이 같은 감사 결과 보고서가 나오자 관세청과 환경부, 보건복지부 등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자 업체들 역시 새로운 ‘꼼수’를 강구했다. 이번엔 화학물질을 혼합해서 만드는 합성 니코틴을 수입한다는 방식으로 선회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모 관계자는 “(업자들은) 2016년부터 8년 넘게 줄기 니코틴으로 속여 왔으며, 2021년 즈음부터는 합성 니코틴으로 속이고 있다”면서 “근본적으로 (탈세를 위해 합성 니코틴으로 속이는 행위 등을) 단속하면 될 문제”라고 꼬집었다.
최근에야 이 문제에 대해 경찰이 수사하면서 문제점이 하나둘 확인되고 있다. 이 사안과 관련해 동시다발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해 말 액상 전자담배 유통업체 3곳 관계자들을 입건해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후 액상 담배 제조업계 1위로 알려진 A사 제품 등에 대해 국과수에 성분 분석을 맡긴 결과, 52개 제품 가운데 50개에서 천연 니코틴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국과수 분석 결과를 토대로 A사 등 합성 니코틴 액상 제조업체 4곳을 지난 9월에도 압수수색했다.
니코틴이 법에 들어가면?
그동안 관련 기관의 단속과 처벌이 거의 전무했던 상황에서 국회가 합성 니코틴도 담배로 보는 법안을 개정하면 국내의 금연보조제는 사실상 판매가 어렵게 된다. 현재 여러 지자체를 포함해 금연클리닉 등에서는 니코틴 껌과 니코틴 패치 등 니코틴 대체재인 금연보조제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니코틴이 담배에 포함되면서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는 뜻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결과적으로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 확장을 꿈꾸는 KT&G나 브리티쉬토바코 같은 대기업 및 해외기업들은 유리해진다. 담배 제조회사가 금연보조제도 함께 판매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셈이다. 물론 KT&G는 현재도 천연 니코틴만이 들어간 담배를 제조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의하는 담배는 ‘연초 잎을 원료의 일부 또는 전부로 한 것’으로 한국의 현행법과 같은 맥락이다. 유럽의 담배 제품에 대한 규제(TPD·Tobacco Product Directive) 역시 담배를 담배식물로부터 제조된 것으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합성 니코틴은 담배 제품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영국이나 뉴질랜드의 경우 애초에 ‘액상 담배’를 금연도구로 권장하기도 한다.
미국은 담배의 정의와는 별개로 주마다 합성 니코틴에 대한 과세를 달리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식품의약국(FDA)이 담배의 소관부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은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담배의 소관부처이고, 환경부가 합성 니코틴을 관리하는 주체로서 분리돼 있다. 하지만 미국은 FDA가 담배의 제조와 유통을 포함해 종합적인 관리를 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