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신임 최고위원들이 지난 8월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1차 정기전국당원대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이재명 2기 체제가 시작된 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불거진 이슈는 ‘호남 홀대론’이다. 지역 정가에서는 최근 호남의 분위기가 민주당 내 ‘친노패권세력’에 집단적 반발을 보였던 2016년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광주가 지역구인 한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은 생각보다 이런 서운함의 깊이가 만만치 않다고 했다. “최근 광주에 사는 분들이 그런다. 호남 표만 가져가고 낙후로만 보답해준다더라. 경상도와 수도권에는 철도를 잘만 깔아주더니 광주에서는 지하철 2호선도 제대로 못 깔아주는 게 민주당이라고 하더라.”

호남은 민주당 내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 지역이다. 민주당에서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은 호남을 향한 행보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지지는 민주당 내 정통성을 보증해왔다. 이 때문에 민주당 주요 정치인들은 호남을 돌며 지지를 부탁하고 스킨십을 해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의당을 통해 호남 민심을 공략하던 때, 그가 내세운 건 ‘호남의 사위’였다. 호남 출신이거나 호남과 혈연을 통해 가산점을 받으려는 건 호남을 통해 민주당계 정치인이라는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한 시도였다.

‘이재명 2기’에 강화된 영남 라인

이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2기’ 지도부는 영남 라인이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민주당 취약지인 영남 출신 인사가 대거 지도부에 진입했다. 영남 라인 강화를 두고 차기 대선을 위한 포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재명 대표는 경북 안동이 고향이다. 전현희(경남 통영), 김병주(경북 예천), 이언주(부산 영도구) 최고위원도 모두 영남 태생이다. 호남 출신은 한준호(전북 전주) 최고위원이 유일하다. 광주에 지역구를 둔 민형배 의원은 최고위원이 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 전통 지지층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덩달아 나온다. 당내에서는 이런 평가를 두고 정반대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언론의 프레임”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정말 골이 깊다”는 반응도 들린다. 후자에 주목하는 쪽이 조국혁신당이다. 10월 16일 열리는 재보궐선거에는 전남 영광과 곡성군이 포함돼 있다.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가 이때 열리는데 조국혁신당은 후보 출마는 물론 현역 국회의원들이 상주하며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호남 올인 전략이다.

호남 홀대론은 언론의 프레임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주도적으로 제기한 건 호남의 지역 언론들이다. 지난 4월 총선 이후부터 스멀스멀 이런 기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4월 11일 광주·전남 지역 일간지 무등일보는 ‘이제 호남정치력 복원이다… 광주·전남 총선이 남긴 과제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2대 국회에서 호남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다선 의원들의 리더십과 솔선수범, 희생이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 당선된 후보들의 면면과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호남정치력 복원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비관적 전망을 내놨다.

8·18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호남을 두고 “민주당의 심장이라는 건 ‘옛말’ ”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남도일보는 지난 7월 16일 ‘민주당 최고위원 나올지 호남 정치 시험대’라는 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기반이면서 심장부를 자처하는 광주·전남에서 최근 10년 동안 주승용(여수을)·양향자 의원(광주 서구을)만이 최고위원에 당선됐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사실상 호남 정치가 민주당 안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걸 뜻했다.

호남은 민주당 속에서 정말 변방이 됐을까. 이 지점에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논쟁이 벌어진다. 호남이 야권의 주역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누구의 책임인지 따라 물을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답은 크게 두 가지다. 호남 출신 현역 의원들이 중앙정치에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거나, 당내 구조적으로 호남과의 연고가 강점으로 작용하지 못한다로 압축된다.

민주당 출신 한 전직 의원은 전당대회 때 김두관 후보의 발언을 꽤 상징적으로 본다. “김두관 후보가 경기지역 합동연설회에서 우리 당에 이재명 후보 외에도 많은 대선 후보가 있다면서 언급했던 사람이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동연 경기지사, 이탄희 의원 등이었다. 그런데 그중에 호남 후보는 없지 않나. 조국혁신당이라고 다른가. 조국 대표가 부산 출신이다. 지난번 호남 대표선수로는 이낙연 전 대표가 있었지만 본선에도 가지 못했다. 지금처럼 인적 구성이 흘러간다면 앞으로 대선을 두세 번 더 치를 때까지도 민주당에서 호남 후보가 등장할 일은 요원해 보인다.”

호남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앞선 보좌관은 “호남의 서운함을 해소하는 게 지역민에게는 중요한데 그렇다고 호남 정치를 복원하자는 게 수도권 입장에서 보면 구닥다리처럼 느껴질 수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미 전국정당으로 변신했는데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얘기다.

“영남 패권론 나오기 시작하면 곤란”

과거 호남의 이슈는 출향민을 따라 수도권에서도 영향을 끼쳤다는 게 선거판의 정론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루트가 갖는 영향력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호남 출신 부모의 자녀는 호남의 가치가 아닌 자신이 나고 자란 수도권의 가치로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다. 이는 호남의 선택이 갖는 전략적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를 낳는다.

문제는 지금의 홀대론을 호남이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였을 때 내리는 선택지다. ‘미워도 다시 한번’이 아닌 ‘대체재’를 호남이 찾기 시작하는 건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피해야 할 상황이다. 그간 대선에서 민주당에 승리를 가져다줬던 ‘영남후보 필승론’은 호남의 표심을 기본적으로 안고 가는 것이 대전제였다.

친문계 한 인사는 “지도부가 영남 출신이 많아서 혹시나 ‘영남 패권론’ 같은 게 등장하면 상황이 꽤 복잡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남이 민주당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보다 마치 챙겨줘야 할 대상, 배려의 대상이 돼 버리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자존심이 무너진 이유를 민주당 내 영남 패권주의에서 찾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 꽤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국민의당이 과거 호남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영남 정치인들의 패권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호남 정치인들이 뭉쳤다는 명분이 어느 정도 먹혔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이 이런 ‘호남 홀대’ 분위기를 파고들자 민주당 내에서도 호남을 향한 구애 목소리를 점차 내기 시작했다. 지난 8·18 전당대회에서 호남 쪽 경선 투표율이 저조했다는 점, 지난 총선 호남 비례대표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던 점은 지금 호남 민심이 민주당과 살짝 멀어졌다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재명 체제에 갸웃하고 있는 호남의 여론을 계속 지켜봐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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