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나선 후보들이 토론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첫 자리에서 윤상현 후보가 물었다. “문자 논란과 관련해 입장이 매번 달라진다. 총선 패배 책임을 인정한다면 문자에 답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어리석었다고 한마디 하고 끝내는 게 맞지 않겠나.”
한동훈 후보가 답했다. “여러 통로를 통해 김 여사께서 실제 사과 의사가 없다는 걸 전달받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사적인 연락에 응했다면 더 문제가 됐을 것이다.”
다섯 통의 문자와 그 문자를 ‘읽씹(읽고 무시)’한 것을 두고 여당 지지자들은 균열의 틈이 심각하게 벌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7월 9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자 간 TV토론회에서는 다른 어떤 토론 주제보다 김건희 여사의 문자를 각 후보가 어떻게 해석할지가 관심사였다. 김건희 여사는 1월 15·19·23·25일 한 후보에게 문자를 다섯 번 보냈다. 당시는 ‘디올백 수수 의혹’으로 여당이 여론전에서 위기로 내몰린 상황이었다. 김 여사는 ‘대국민 사과 의향’ 등을 문자에 담아 보냈지만 한 후보는 모두 답하지 않았다.
윤·한·김 갈라 놓은 ‘읽씹’ 전당대회
문자를 보내던 그 기간은 ‘윤·한 갈등’이 언론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때다. 지난 1월 21일 이관섭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한 후보에게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틀 뒤인 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을 만난 한 후보는 허리를 숙이며 악수했고 갈등은 봉합된 듯 보였지만 이번 ‘문자 내란’은 그때의 봉합이 미봉(彌縫)이었다는 걸 보여준다.
문자 내란은 투트랙으로 굴러간다. 하나, ‘읽씹’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분위기가 있다. 둘, 문자가 공개된 시기의 문제다. 이번 문자 공개는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 벌어졌다. 4명의 당대표 후보 중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는 한 후보가 이 문자의 이해당사자다. 한 후보를 상대로 부정적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 정보를 흘린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사건이다. 그리고 시기상 전당대회 당락에 이 문자가 변수를 만들길 원했다고 봐야 한다.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퍼트린 쪽에서 한동훈은 절대 안 된다는 사인을 낸 것”이라고 했다. “한 후보를 향한 배신자 프레임을 강화하는 증거로 활용하려고 한 것 같은데 정치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수용하는 당원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번 일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한 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배신자 프레임을 더 강하게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크게 영향 안 받는다. 봐라. 판 뒤흔다고 한 건데, 판이 흔들렸나.”
판이 흔들리지 않은 이유로 문자를 보낸 당사자를 꼽는 의견이 많다. 문자에 등장한 인물은 김 여사다. 이 때문에 여당 내에서는 이번 문자 사태를 ‘김 여사의 전면 등장’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간 김 여사는 주로 비공식적 영역에서 언급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김 여사를 통해 그 어떤 결정들이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고 ‘디올백 논란’도 그중 하나였다.
한 후보는 김 여사의 문자를 무시했다는 주장에 대해 “총선 기간 동안 대통령실과 공적 통로를 통해서 소통했다”고 해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공적’이라는 단어다. 김 여사가 안고 있는 ‘비공식적 행보’ 리스크와 정반대 지점을 강조했다. 앞선 당직자는 “대통령 부인의 문자에 답조차 하지 않은 게 너무하지 않느냐는 불경(不敬)이나 정무적 판단의 미숙이라는 지적이 먹힐 법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김 여사의 비호감 게이지가 너무 많이 쌓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출범 이후 ‘윤석열·김건희·한동훈’ 3인 체제는 공고했다. 시작부터 함께였고 대오가 흩어지면 정권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공동의 이해를 가진 관계로 주변에서는 바라봤다. 이 때문에 종종 불거졌던 ‘윤·한 갈등’은 잘 조율된 기획연출이라는 의심을 받곤 했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일단 한 후보는 윤 대통령이 귀 기울여 의견을 들어주는 존재다. 그리고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어느 정도는 털고 가는 게 총선을 앞두고 반드시 필요했다. 이 대전제에 세 사람이 동의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위원장이 건의하고 윤 대통령이 탐탁지 않더라도 당을 위해 결단을 내리고 이를 김 여사가 받아들이는 그림이 필요했다.
그런데 ‘윤·한 갈등’에 ‘김·한 갈등’까지 덧대며 3인 체제는 무너졌다. 사실상 3인 관계가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약속대련이 아니라면 단 하나의 가능성이 남는다. 한 위원장의 퇴장인데, 이는 거부당했다. “권력의 정점을 윤 대통령이라고 했을 때 정점의 배우자와 2인자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면 2인자가 절대 이길 수 없다. 결국 내쳐지는데, 이번 전당대회에 한 후보가 등판한 건 그 내쳐짐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홀로서기 선언을 넘어 생존 투쟁에 가깝다”(국민의힘 수도권 원외 위원장)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3인의 공고했던 관계에 변화가 생기면서 여당 내부 구성원들은 엄청난 변화를 맞았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지형 변화는 ‘한동훈 대 반(反)한동훈’ 구도로 공고화되는 분위기다. 친윤 쪽의 반격이 있지만 연판장 사태의 불발에서 보듯 구심력이 예전만 못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김 여사가 직접 등판했다. 오히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지적이 많다. 또다시 등장한 ‘당무개입’ 논란 탓이다.
“한의 당선은 윤에게 ‘삼전도의 굴욕’”
정치권에서 ‘개입’은 무시무시한 단어다. 이미 민주당 내에서는 “선출된 권력이 아닌 영부인이 여당 비대위원장과 선거 관련 대화를 나눈 것 자체가 당무 개입”이라는 입장을 내고 있다. 후보 간 공방이 대통령실의 당무 개입으로 연결된다면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형을 받았던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당 내에 있다.
만약 지금의 흐름이 유지돼 한 후보가 당대표가 된다면 국민의힘과 용산과의 관계에서 주도권은 한 후보가 쥐게 된다. ‘읽씹’을 둘러싼 논란을 겪은 한 후보다.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한 시선이 이전보다 더 냉랭해질 가능성이 커진 지금이다. 이런 태도는 윤 대통령과의 분리를 더 가속화하는 동력이 된다. 이 때문에 거꾸로 당의 화학적 결합의 키를 윤 대통령이 쥘 수도 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당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과는 별도로 윤 대통령의 현실 인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윤 대통령 기준으로 볼 때 한 위원장이 당대표가 되는 건 삼전도의 굴욕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본인이 권력이 이렇게 작동한다는 걸 알게 되면서 현실감을 갖추고 이전과 같은 거친 방식의 간섭 대신 협력을 위해 순응해야 한다. 미래 권력이 출발점에 서는 시점이 숙명적으로 다가올 거라는 걸 알아야 한다.”
이미 심리적 분당 상황이라는 말까지 돈다. 전당대회 이후에도 내부 분열은 물론이고 당정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거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 후보는 “당대표가 돼도 영부인과 당무와 관련해서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거리감을 둘 것이라는 메시지다.
반대로 여당 내에서는 한동훈 체제가 들어서도 3개월, 혹은 6개월짜리라는 말이 돈다. 과거 이준석 대표 때처럼 친윤이 흔들기에 나설 거라는 얘기다. 한 후보가 당대표로 선출될 경우 그는 내년 9월에 사퇴할 가능성이 있다. 대선 후보를 염두에 둔 당대표는 당권·대권 분리 원칙에 따라 내년 9월 사퇴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문자 내란으로 윤 대통령과의 손절 가능성이 커지고 더불어민주당처럼 당헌·당규 개정을 꾀할 수도 있어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한동훈 캠프 관계자는 “우리도 그런 이야기가 도는 걸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80만명 당원과 일부 국민들이 경선이라는 공적인 절차를 통해 투표한다. 우리가 승리할 경우 대통령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시점에서 일종의 정풍 운동이 성공하는, 집권당에서 처음 있는 일이 생기는 거다. 자율성이 지금처럼 낮은 여당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주류가 찍어누르는 게 쉽지 않을 거다.”
“TK, 한동훈 차기정권 위한 도구로 생각”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5만명을 넘기면 국회 소관위원회에서 심사를 해야 한다. 여당 앞에는 ‘윤석열 탄핵 청원’이라는 변수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놓였다. 청원인 숫자는 130만명이 넘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심사에 앞서 청문회를 7월 19일과 26일 두 차례 열기로 했다. 여기에는 총 39명의 증인이 채택됐는데 김건희 여사와 윤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이 포함됐다. 국민의힘은 “이번 청문회는 탄핵 예비 절차나 다름없다”며 반발했다.
‘탄핵’은 정부와 여당 앞에 등장한 실존적 위협이다. 이 자체가 보수 정치에는 트라우마이자 하나의 큰 위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통한 교훈도 이미 얻었다. 보수 정치의 공멸을 막기 위해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지금의 윤·한 갈등에서 양자를 결합시켜줄 수 있는 최대 연결고리가 ‘탄핵’이다. 청문회가 아니라 특검으로 가는 문이 열리더라도 이후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특검을 하게 되면 탄핵으로 간다”(인요한 최고위원 후보)는 아우성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한 친박계 인사는 최근 TK 쪽에서 느끼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이 지역에 있는 당원들이 윤 대통령과 보수 정치를 분리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윤석열’이라는 분위기가 아니다. 탄핵 이야기가 총선 이후로 계속되면서 보수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지금 이들의 공통분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정권만은 민주당에 넘겨주면 안 된다는 거다. 그리고 그런 최악의 상황을 저지하기 위한 후보가 누구냐고 봤을 때 한동훈이라는 거다. 일종의 도구로서 한동훈을 활용한다.” 한 후보도 이런 지점을 알고 있다. “진짜 배신은 정권을 잃는 것이고 지는 것”이라며 “정권을 잃지 않고 승리하기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고, 민심에 따르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는데 이는 당원들의 요구와 맞닿은 발언이다.
이 인사는 “지금의 상황이 이명박 정부 시절과 닮았다”고 봤다. “이명박 정부 탄생은 당시 수도권과 30~40대의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다. 기존 보수세력에 이전 민주당을 찍던 이들의 지지가 정권 창출의 기반이 됐다. 윤 대통령이 승리한 기반과 비슷하다. 그런데 MB가 실정을 거듭하고 국정 지지도가 추락하자 이러다 함께 죽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보수 진영 내에서 커졌다. 박 전 대통령으로 당내 흐름이 일찍부터 이동한 건 정권 재창출을 위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이 처한 상황과 비슷한데 두 사람 간 차이는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보수의 대주주였지만 한 위원장은 지분이 없다.”
대선 경쟁력이 당내 분란 잠재울까
박 전 대통령이 정권을 지키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강력한 보수 지지 기반을 등에 업은 채 꾀했던 중도 확장 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의제를 선점해 과거 보수 후보와는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반면 한 후보는 쉽사리 중도 확장을 꾀할 수 없는 포지션이다. 앞선 인사는 “한 후보의 그간 발언을 보면 수도권 진출과 중도 확장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보수 핵심 당원들에게 정체성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상황에서 왼쪽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며 “윤 대통령에게 실망해 한 후보로 넘어간 감성적 지지층이 TK에 많은데 이들이 이성적으로도 한 후보를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 중도 확장은 오히려 갸우뚱거리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후보의 경쟁력 중에는 윤 대통령이 못했던 외연 확장에 대한 기대가 일정 부분 포함돼 있다. 그런 점에서 오른쪽과 중간 지점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중요한 건 한 후보를 지금의 위치로 밀어올린 것이 바로 ‘경쟁력’이라서다.
반(反)한동훈 진영은 최근 배신자론과 별도로 ‘좌파 프레임’을 확산시키고자 한다. 한 후보의 경쟁력 약화를 노리는 공략법이다. 한 후보는 최근 “주변 조언 그룹들이 좌파다”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집토끼의 의구심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당대표를 노리는 한 후보 입장에서 경쟁력 유지는 전당대회 이후의 흐름과 연계된다. 한 후보 캠프 관계자는 “후보의 지지도가 높으면 눈덩이처럼 세를 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도 “보수 정당은 대세 추종주의가 강한 편”이라고 했다. 결국 누가 차기 당권을 쥐든, 대선 경쟁력이 강한 후보가 당대표가 되면 균형추가 쏠릴 것이고 당의 분란도 잠재울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