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는 ‘대통령 성공학’의 대가로 불린다. 1975년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을 시작한 이후 상공부를 거쳐 김영삼 정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정책비서관으로 시작해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 대통령의 흥망성쇠를 경험했다. 2001년부터 카이스트에서 경영전략을 강의해온 그는 노무현 정부의 교과서로 평가받은 공저 ‘대통령의 성공조건’에서 대통령 비서실에서 정책실을 분리해야 한다고 처음 주장했다.
지난 5월 27일 서울 교대역 인근에서 만난 이 교수는 지지율 하락과 여소야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한 여러 조언을 했다. 우선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지만 사실 그렇지 못하다”며 “모든 일을 직접 챙기려 하면 부하들 질책하는 데 바빠진다”라고 했다. 특히 레임덕으로 리더십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임기 초 쇠고기 수입 문제로 레임덕을 맞았던 MB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경제 챙기기에 몰두했고 2008년 금융위기를 큰 탈 없이 극복할 수 있었다”며 “(윤 대통령은) 상황과 역량을 감안해 정책을 지혜롭게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법조인 중심의 인사를 비판하며 “법조인을 쓰더라도 제한적으로 쓰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며 “대차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대통령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고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인재풀이 넓어질 수 없다. 이런 인사들을 중용하면 권력을 사유화하긴 쉬워도 성과를 내기 어려운 법이다”라고 조언했다.
- 윤석열 대통령 임기가 3년 남았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변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모든 대통령이 성공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정치·사회적 조건도 좋아야 하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정부 전체를 원팀(one team)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즉 정부 전체의 일하는 역량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위에 자신의 역할을 설정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들은 '만기친람'하고 지시하고 통제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정부의 능력을 크게 줄이는 일이다.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 왜 그런가. "대통령을 미리 해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모든 일을 직접 챙기려 들고 '듣고 생각하기'보다는 '말하고 지시'하는 데 바빠진다. 부하들 동기부여보다 질책하는 데 바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부하들은 문제를 말하기보다 침묵하게 되고, 성과를 내기보다 책임을 면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이러면 국정의 성과가 날 수 없다. 거대한 조직일수록 부하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되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대통령 자신이다. 자신을 절제하여 '할 일과 안 할 일'을 가리고, 자기보다 참모·공직자들이 신나서 춤출 수 있게 해야 한다."
- 이제 정권 중반기다. 과거 3년 차가 지나면 '레임덕'이 찾아왔다. 리더십의 붕괴를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현 정권은 너무 빨리 집권 전반기에 지지율이 떨어진 것이 문제다. 임기 말의 그런 현상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대통령에는 특수한 권위가 있고 사람들은 대통령에 특수한 기대를 한다. 지지율이 빠지면 이런 권위와 기대가 사라지며 국정 동력도 사라지게 된다. 레임덕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지율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무엇인지 정확한 처방이 내려져야 한다."
-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그 처방이 뭔가. "불신의 원인을 찾아 고치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공정과 상식이 문제라면 국민 눈높이에 맞도록 자신을 고쳐야 한다. 고치지 않으면 지지율은 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포퓰리즘을 남발하면 보수층까지 등을 돌리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가중시켜 역사에도 오점을 남기게 된다. 대통령은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당선된다. 설령 레임덕이 오더라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소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상황과 역량을 감안해 정책을 지혜롭게 찾아야 한다. 임기 초 쇠고기 수입 문제로 레임덕을 맞았던 MB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경제 챙기기에 몰두했고 2008년 금융위기를 큰 탈 없이 넘겨서 초기 레임덕을 극복할 수 있었다."
- 정권이 후반기로 가면, 공무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공무원들을 뛰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공직자도 사람이다. 일하게 만들려면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필요하다.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기대가 멀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기대를 유지하려면 정권 재창출의 가능성이 높아지거나, 자신이 합리적이고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 대통령은 그래서 책임감을 고취하는 일을 해야 한다. 후반기로 갈수록 대통령과 장관들의 조직관리 역량이 점점 중요해진다. 공무원들을 다잡는다고 공직기강 점검 같은 조치를 하면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결국 '복지부동'의 강도만 높인다. 하는 척하면서 일은 사실 돌아가지 않게 된다. 관료사회에서는 장관이 중요하다. 장관들이 욕먹지 않고 임기만 무사히 마치려 하면 복지부동은 더 커질 것이다."
- 인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윤석열 정권 전반기 인사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실제 인사가 '만사'다. 그러나 우리 정치사에서 코드·연고인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인사에도 법조인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법조인 중에 훌륭한 인재가 많지만, 법조인으로서의 교육과 경험은 '현상유지적·흑백논리적·독자중립적' 판단을 강화한다. 직업 특성상 '창의적 상상력·다양한 공감력·공동협업적 판단력'이 요구되는 국가 경영 업무에는 부적합한 점이 있다. 그래서 법조인을 쓰더라도 제한적으로 쓰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 내부 상황은 잘 모르지만, 대차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이 대통령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도 아쉬운 대목이라 할 것이다. '레드팀이 사라진 리더십', 그것은 국정의 위기 신호이다."
- 최근 윤 대통령에 대한 '정체성' 논란도 있었다. 윤 대통령이 진보 정권에서 활동하던 인사들을 영입하는 탕평인사를 하려고 해도, 보수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정체성을 지키면서 상대방도 배려하는 인사가 가능할까. "보수층으로서는 대통령이 보수의 이익과 생각을 대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클 것이다. 하지만 선출되는 순간 자신이 뽑아준 진영의 대표라기보다 국민 전체의 대표가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 대통령이라도 진보 진영의 사람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이고 지켜야 할 상식이 있다. 다른 '결'의 사람을 쓰려면 국정운영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써야 한다고 본다. 정치적으로 몰리고 있을 때 상대 진영의 사람을 쓰면 보수의 자존심을 상처 내는 일이 될 수 있다. 또한 쓰게 되더라도 왜 그럴 필요성이 있는지 논리적 타당성을 갖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대통령은 자신의 비전과 가치로 당선된 것이다. 이를 국민이 선택한 것이다. 그 비전과 가치에 충실해야 할 의무 또한 대통령의 몫이다. 인사는 그런 비전과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 윤 대통령이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되는 보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자유란 공기와 같다. 있을 땐 그 가치를 모르나 없어지면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 보수의 이념적 정체성은 자유민주주의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 공정, 상식을 강조하는데, 그 표현에 동의한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개인, 자유롭고 혁신적인 시장이 한 축이라면 법과 권력 앞에 만인이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와 분배가 이뤄지는 질서가 다른 한 축이다. 원칙이 존중되면서 다양성을 포용하는 공감의 원리가 상식으로 인정되는 것 또한 다른 한 축이다. 자유민주주의 역시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포용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포용적 성장'론, '따뜻한 보수'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포용은 사회발전에 있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원칙으로 존중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보완적 시스템으로서의 포용이어야 한다."
- 윤석열 정부의 '인재풀' 자체가 적다는 비판도 있다. 과감하게 우수한 인재들을 정부에 영입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 "사심이 없어야 한다. 추천하는 사람이 자기 사람 심는 기회로 추천을 활용한다면 인재가 들어오기 어렵다. 인재를 구하는 대통령의 태도도 중요하다. 대통령이 특정 이념 진영이나 연고를 선호하면 인재풀이 그 선호의 벽을 넘기 어렵다. 이념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확증편향적 사고에 갇힌 사람들이 많아지고, 연고에 기댄 출세주의자들만 넘쳐나게 된다. 대통령이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느냐는 것도 인재풀을 결정하는 요소다. 듣기 좋은 말을 좋아하고,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사람만 가까이 하면 인재풀이 넓어질 수 없다. 이런 인사들을 중용하면 권력을 사유화하긴 쉬워도 성과를 내긴 어려운 법이다. 인재풀을 넓히려면 이런 장애들을 제거해야 한다."
- 윤 대통령은 노동·연금·교육·의료 4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개혁에 저항도 상당하다.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 "개혁은 정치적 이익이나 인기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지속시키기 위해 해야 하는 당위적 과제다. 개혁은 기존 질서의 개편을 초래하기에 기득권 향유층은 개혁을 거부하기 쉽다. 기득권이 클수록, 개혁이 중요할수록 그 저항은 커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민주화 시대가 되면서 이런 저항이 더욱더 커졌으나 정부의 능력은 점점 작아져 왔다는 것이다."
- 그럼 해결책이 뭔가. "개혁에는 문제의 파악, 대안의 기획, 대안의 공론화와 설득, 이해관계인의 협상과 조정, 대안정책의 제도화, 개혁성과의 분석 및 평가라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의 파악엔 이념이나 정파의 인지적 편견이 작용하게 되고, 대안의 기획은 문제가 고도화, 복잡화함에 따라 바람직한 정책대안 도출이 쉽지 않게 되었다. 공론화 과정에선 다양한 언론, 시민단체, 이익단체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협상의 조정 또한 더 어려워졌다. 이렇게 개혁이 어렵지만 정부의 추진 능력은 과거보다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설득과 공론화에 있어 취약함을 보이고 있다. 개혁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책임 추궁을 당하는 일이 늘어나니 개혁이라 하면 뒷걸음치는 심리도 만연되어 있다."
이 교수는 “지금처럼 대통령의 지지율이 낮고 여소야대인 정치 상황에서 개혁을 지속하려면 야당이 상대적으로 거부하기 어려운 것 중심으로 대상을 선택하고 대안을 다듬어야 한다”며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 연금, 교육, 의료 개혁 중 비교적 이에 가까운 개혁은 연금과 의료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정권 하반기 개혁 전략은 보수의 기본 원칙을 건드리지 않고 야당의 시각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