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2020년 10월 당시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이 최근 5년간 적발한 군사기밀 누설 사건을 공개하며 ‘주중 한국대사관 무관부의 군사기밀 누설’을 사례로 언급했다. 국정원이 수사한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군사기밀을 빼돌린 전 북파공작원 사건’으로 보도됐다.

실제 국군정보사 북파공작원 팀장 출신 전직 대령이 군사기밀을 빼돌렸다면 아마도 광복 이후 최대 간첩 사건이라 할 것이다. 애초 이 사건은 주중 한국대사관에서 국방무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정규필 대령이 중국과 북측에 군사기밀을 넘겼다는 의심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혐의는 모두 무혐의로 결론났다. 그는 그 후 별건 사건으로 기소돼 자신의 컴퓨터 외장하드에 군사기밀이 있었다는 이유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된 상태다.

‘정규필 사건’이 현재 관심을 끄는 이유는 과거 진보 정권에서 엉뚱한 혐의를 씌워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오히려 대북 정보라인이 무너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른바 북한 내부 정보를 수집하던 휴민트(인적정보)가 붕괴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23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정규필 예비역 대령 역시 “내가 왜 수사받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진짜 간첩을 잡아본 일이 없으니, 무리하게 수사해 성과를 내려 한 것 같다”며 “막상 수사해보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당황해 무죄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건을 밀고 나갔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 2019년 5월 갑작스러운 압수수색을 당했다. 무슨 근거로 수사가 시작되었나. "아직도 모르겠다. 2019년 5월 14일 갑자기 국정원 직원 21명이 집에 들어왔다. 영장을 내밀면서 막무가내로 군사기밀 누설 혐의가 있다면서 수색을 시작했다. 군 공작관이 군사기밀을 누설하면 간첩죄가 된다.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그날 아침 7시50분부터 시작된 수색은 다음날 오전 6시까지 22시간 동안 이어졌다. 내가 메일주소, 비밀번호 이런 것 다 알려주고 확인해 보라고 하였다."

- 왜 본인이 수사 대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나. "전역하고 1개월이 지난 시점에 갑자기 압수수색을 당했는데 군인 신분이었으면 당연히 기무사가 수사했을 것이다. 나의 전역을 기다린 것 같았다. 영장 내용을 보니 '내사를 통해 국방정보본부, 주중 한국대사관 육군 무관으로 활동하면서 취득한 군사기밀을 중국인, 재중 북한대사관 소속 2인 등에 누설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거래하는 등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범죄를 저질렀다'고 적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혐의다. 만약 이러한 혐의가 사실이라면 광복 이후 최대의 간첩 사건이다. 무슨 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모두 추정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혐의는 모두 무혐의 처리되었다."

- 왜 의심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나. "나는 대한민국을 위해 일했지 어느 정부를 위해 일하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정부는 계속 바뀌었으나 나는 나의 일을 했을 뿐이다. 과거 천안함 사건으로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이 예상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 북측의 여러 비선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 적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나에게 상을 주면 주었지 이런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실제 북측 비선과 접촉을 해왔나. "나는 북한, 중국 고위층을 비공식 루트로 접촉하면 당연히 모두 보고했다. 나의 이러한 보고를 보고 누군가 의심을 한 것 같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슨 근거나 증거를 가지고 수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냥 의심, 추정만 있었다. 조작의 냄새가 너무나 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박지원 국정원장이 '간첩 잡는 것이 국정원의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짜 간첩을 잡아본 일이 없으니, 무리하게 수사해 성과를 내려 한 것 같다. 제2의 유우성 사건이라 볼 수 있지만, 그 사건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 나는 대한민국 육군 대령이요 호국의 최일선에 있던 특수임무 요원이었다."

- 서훈·박지원 원장 시절 벌어진 일인데 정치적 배경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서훈·박지원 원장이 직접 이런 일을 지시하거나 주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간의 국장급이 과잉 충성하다가 사건 조작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검찰에 청탁해 기소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누구에게 보복받을 위치도 아니고 정치적 편향도 없다. 단지 국가 안위의 최일선에서 개인의 영달이나 이익, 진급의 영예도 포기하면서 충성한 죄밖에 없다. 조사받을 때 '내가 만약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고 반역하였다면 광화문 광장에서 할복해서 그 결백을 증명하겠다'고 했었다."

- 별건 수사로 기소되었는데 원래 혐의에서는 최종적으로 벗어났나. "군사기밀을 누설한 혐의는 결국 무혐의 처분되었다. 그러자 일부 군사기밀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며 별건 기소했다. 그건 컴퓨터에서 자동 생성된 변형 파일, 이미 삭제된 파일,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평문을 억지로 3급 비밀이라고 우긴 것이다. 이것은 애초에 국정원이 수사할 사항이 아니다. 막상 수사해보니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당황해 일단 무죄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건을 밀고 나갔다고 생각한다."

- 지난 정권에서 대북 '휴민트'가 붕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생존이 걱정된다. 국정원·기무사·정보사 '3대 정보 축'이 무너졌다. 2017년 국정원이 무너지니 2018년 기무사가 해체되었고 이어 2019년 초부터 군 정보(휴민트) 조직을 무너뜨렸다. 과거 같으면 국정원이 정보사를 큰 틀에서 감싸고 지켜주면서 방패막이 역할을 해줬을 텐데, 오히려 나와 정보사의 공작관들을 국정원이 나서서 짓밟았다."

- 현재 별건 기소에 대한 재판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대법원에 억울하다고 상고한 상황이다. 처음에는 엄청난 간첩 사건으로 만들더니 결국 외장하드에 이미 삭제되어 있던 문건을 복원해 군사기밀 누설이라고 뒤집어씌운 사건이다. 내가 평생 국가를 위해 노력했는데 너무 억울하다. 끝까지 싸우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대법원은 공정한 판단을 해줄 것으로 매일 기도한다."

- 대북 공작은 왜 필요한가. "과거 모든 정부가 북한 김씨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일관된 정책을 유지했더라면 (북한 붕괴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본다. '파괴'가 아니라 '녹이는' 전략을 썼으면 됐다. (적의) 생각을 녹이고 사상을 무력화해야 했는데 오히려 적을 지원해 핵과 미사일을 강화시켜 주었다. 결국 우리가 적으로부터 녹아내렸다. 경제력으로 공작했으면 통일 또는 그에 버금가는 단계에 이미 왔을 것이다."

- 지금의 남북관계를 볼 때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 다만 뒷걸음치면 문다.' 이것이 개의 속성이다. 남북이 갈라진 후 줄곧 그러했다. 결국 우리의 태세에 따라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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