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찾은 국회 세종의사당 부지 입구. 쌓인 모래더미 위에 삽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지 안쪽의 홍보 패널에 다가가는데 패널 뒤 풀숲에서 대여섯 마리의 동물이 일제히 겅중겅중 뛰면서 멀어졌다. 고라니였다. 까치 세 마리도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날아갔다. 전월산과 국립세종수목원 사이에 확보된 세종의사당 부지는 63만1000㎡에 달한다. 여의도 국회 부지(33만㎡)의 약 2배 면적이다. 아직 첫삽도 뜨지 못한 이 부지는 고라니와 까치의 쉼터로 쓰이고 있었다.
방치돼 있다시피 한 부지가 다시 관심을 끈 이유는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쏘아올린 국회 이전 공약 때문이다.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던 한 위원장은 총선을 2주 앞두고 ‘여의도 정치’를 청산하겠다며 ‘국회의사당 세종 완전 이전’ 카드를 꺼냈다. 국회 세종 이전은 2002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후 야권에서 주도해왔다. 그런데 4·10 총선을 앞두고 보수 진영에서 화두를 던지면서 여야가 모두 찬성하는 의제가 됐다.
지난 3월 27일 한 위원장은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은 분절된 국회가 아닌 완전한 국회를 세종으로 이전해서 세종을 정치 행정의 수도로 완성하고 기존 국회 공간은 문화와 금융의 공간으로 바꿔서 동료 시민들께 돌려드릴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실도 같은 날 “국회 세종의사당 개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라며 대통령 제2집무실 세종시 설치에 속도를 내겠다고 화답했다.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은 다음날 국회 세종시 완전 이전을 명문화하는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특별법’, 국회법 개정안,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 3개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어서 한 위원장은 지난 4월 2일 세종을 찾아 “국회가 완전히 이전되면 (세종이) 진짜 대한민국의 워싱턴DC가 된다”며 “여의도 구태 정치를 완전히 해소하고 새로 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모든 것을 방해했던 민주당이 이거 옮긴다고 했을 때 순순히 협조할 것 같냐”며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선택해야 세종으로 국회의사당이 완전히 이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동훈이 쏘아올린 ‘세종 정치’ 시대
진보 진영이 주도해온 의제임에도 한 위원장이 ‘함께 하겠다’가 아니라 ‘국민의힘이 하겠다’고 국회 세종 이전을 내세운 것은 총선을 앞두고 ‘스윙보터’인 충청 표심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의힘이 밀리는 상황에서 충청 표심을 흔들기에 좋은 카드였다”며 “세종은 진보 성향이 강한 편인데 이를 균열시키는 데도 상당히 괜찮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종갑에선 이영선 민주당 후보가 공천 취소되면서 현재 류제화 국민의힘 후보와 김종민 새로운미래 후보가 양자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이에 갈 곳을 잃은 민주당 표심을 누가 얼마나 가져오는지가 당락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국회 완전 이전’을 꺼낸 건 김종민 후보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사과 메시지를 낸 바로 다음날”이라며 “민주당 표가 김 후보 쪽으로 가는 걸 막으려고 한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세종 국회 이전’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정치권과는 다소 온도차가 났다. 지난 4월 1일 세종에서 만난 주민들은 ‘국회 완전 이전’의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표하며 ‘총선용 공약’이라고 평가했다. 한 60대 주민은 “공약이라 하면 빌 공(空)도 있고 공적인 공(公)도 있지 않느냐”며 “이 앞에 법원·검찰청 예정 부지가 장기간 방치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했다. 2007년 세종시 개발 당시 확보된 약 7만㎡의 법원·검찰청 예정 부지는 현재까지 빈 땅으로 남아 있다.
주민들 “이번에도 선거용 공약 아니냐”
세종의사당 부지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도 “국회 완전 이전 공약으로 인한 부동산 시장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2021년 세종의사당 이야기가 한창 나왔을 때는 눈 뜨고 일어날 때마다 호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당시 5억원짜리가 갑자기 10억원 가까이 됐다”며 “그런데 지금은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경기 침체와 높은 금리로 인해 거래가 없어서 부동산도 문을 닫는 상황”이라며 “세종 시민들은 국회 이전이 언젠가는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10년 후일지 30년 후일지 모르니 선거용 공약에 지치는 것”이라고 했다.
야권은 국회 세종 완전 이전에 찬성하면서도 한 위원장이 내건 공약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야당 공약이기도 했던 만큼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여당이 협조적이지 않을 때 우리가 관련 예산과 법안을 민주당 중심으로 밀어붙여 통과시키기도 했다”며 “현실적 제약 때문에 못하고 있는데, 이런 때는 그런 약속을 할 게 아니라 집행 권력을 가진 정부·여당이 신속히 해치우면 된다”고 말했다.
김종민 후보는 “국회 완전 이전을 통한 세종 행정수도 완성은 노무현 대통령 (집권) 이래 일관된 주장이었고, 제가 민주당 소속으로 있던 8년간 줄기차게 주장한 내용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행정수도 이전의 발목을 잡아온 것이 바로 국민의힘”이라며 “민주당 후보가 공천 취소된 세종에서 1석을 얻어 보려고 하는 꼼수라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을 처음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때부터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노 전 대통령은 주요 행정부처를 포함해 청와대와 국회를 모두 세종으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행정수도 이전을 담은 ‘신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은 2003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국회 완전 이전’이 좌절됐다. 헌재는 ‘서울=수도’가 관습헌법이고, 관습헌법의 효력은 성문헌법과 동일하기 때문에 관습헌법을 변경하려면 헌법개정절차를 따라야 한다며 법률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헌법 제130조 제2항이 규정하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후속 대책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 설립이 추진되면서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가 만들어졌다. 이후 이춘희 전 세종시장이 세종 국회 분원 설치를 처음 제안한 데 이어 2016년 이해찬 당시 의원이 세종 분원 설치를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국회에서 4년간 계류되다 자동 폐기됐다. 2018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수도를 법률로 정하자는 개헌안을 내놓았지만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반대로 무산됐다. 2020년 7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는 김태년 전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 세종시 완전 이전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지부진했던 국회 세종 이전 논의는 20대 대선에서 양당 후보가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공약으로 꺼내들면서 재점화됐다. 2021년 9월 세종시에 국회의사당 분원을 설치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국회 상임위원회 12개를 세종의사당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규칙안이 처리됐다. 이에 따라 세종으로 정무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등을 비롯해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 국회사무처 일부 등을 옮기는 것이 결정됐다. 서울에는 운영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6개 상임위와 본회의장, 국회의장실이 남는다.
세종 분원에 12개 상임위만 이전 결정
그런데 위 규칙안 제4조 2항은 (예결위를 제외한) “11개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사무실은 국회세종의사당에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회상임위원회 위원 정수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이전 대상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은 총 243명이다. 전체 국회의원 수가 300명이니 대부분의 의원이 세종 분원으로 옮겨 가는 셈이다. 국회사무처 국회세종의사당추진단 관계자는 ‘세종에서 243명의 의원이 다 근무할 수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의원실은 200개 조금 넘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 부지가 여의도의 2배인 만큼, 국회의원 300명의 의원실을 두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이에 세종의사당이 완공되는 때에 국회 완전 이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국회세종의사당추진단은 2031년 전후로 세종의사당이 완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지역 균형발전이 중요하게 다뤄지고, 여야가 모두 찬성하는 상황에서 공개적인 반대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며 “분원이 완공되는 시점에 사실상 본원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세종 완전 이전을 위해선 ‘국회 분원으로 세종의사당을 둔다’고 명시한 국회법을 ‘본원’으로 개정하고 12개 상임위 이전을 담은 규칙안도 바꿔야 한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회법과 규칙안 개정 등의 법률적인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세종의사당이 분원 형태로 추진된 이유도 (국회 완전 이전이) 관습헌법에 위배될 수 있다는 2004년의 판례 때문”이라고 말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원 설치와 달리 국회 전체를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수도 이전”이라며 “헌재 판례를 변경하지 않는 한 개헌 사항이기 때문에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개헌 필요성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인 정주백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를 세종시로 완전 이전할 때 “개헌하지 않아도 된다”며 “헌재가 다시 이 문제를 마주하더라도 위헌 판결을 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심판 형식은 ‘헌법 소원’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가 침해된 경우에만 인용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당시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 위반 때문이 아니라 헌법개정사항인 수도 이전을 단순법률 형태로 실현시켜 헌법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민투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의 제정으로 국민투표 없이 상위법인 헌법이 개정됐다는 당시 헌재의 논리를 따른다면 신행정수도법은 이미 헌법을 ‘대한민국의 수도는 대전광역시·충청북도 및 충청남도 일원이다’라고 개정해버린 것이다. 헌재의 관습헌법이론과 국민투표권 침해 논리를 받아들이면 신행정수도법이 위헌이더라도 대전광역시·충청북도 및 충청남도 일원을 수도로 하는 새로운 불문헌법이 형성된 것을 부정하기 어려워진다.”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는 모양새지만 속내는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국회의 모든 기능을 세종으로 가져가는 것에 찬성하는 의원은 실상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며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 지역구를 둔 의원도 마찬가지인데 교통 여건상 세종에 가는 것이 서울 가는 것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야권 관계자도 “지금 여의도에서 잘 있는 국회의원들이 굳이 세종으로 가고 싶겠느냐”며 국회 세종 완전 이전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해묵은 의제를 한 위원장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국회 완전 이전’의 공은 국민의힘에 넘어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총선 이후에도 국민의힘이 강하게 끌고 간다면 논의가 진전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민주당이 먼저 꺼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원래 누구의 공약이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만약 이 공약을 실천한다면 주도권은 예산을 움직이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집권당, 결국 국민의힘이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